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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Dec 02. 2019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탐방기

독일 프랑크푸르트, 로텐부르크, 뉘른베르크, 쾰른, 그리고 베를린

기나긴 겨울밤이란 무엇인지를 절감할 수 있는 중북부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정말 소중한 명절이다. 4시를 넘으면 어두워지는 12월, 크리스마스는 절묘하게도 밤이 가장 긴 동지 직후다. 성탄 장식으로 빛나는 거리와 광장이 아니었다면 길고 어두운 12월 겨울밤은 암울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긴 밤을 설렘과 즐거움으로 채워주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중심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유럽 도시마다 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심지어 한국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테마로 하는 시즌 장터가 생길 정도로 확산되었다. 그래도 역시 원조격인 독일의 마켓들이 유명하다. 유명 도시마다 주요 광장에서 11월 말, 이르면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마켓 개장을 알린다. 조금 이른 종강을 맞은 12월 초, 가족과 연말을 보내러 한국에 방문하기 전까지 두 주 정도 시간을 냈다. 유럽의 성탄 시즌을 맘대로 돌아다닐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비행기와 기차 일정을 열심히 검색해서 루트를 짰다. 크리스마스 마켓 탐방을 구실삼은 독일 겨울 여행은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로텐부르크, 뉘른베르크, 쾰른과 뒤셀도르프까지, 그리고 그다음 해 겨울에 베를린까지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 

Frankfurt am Main, Römerberg - "화려한 연말 백화점"


프랑크푸르트가 시작과 끝이 된 건 순전히 항공편 때문이었다. 리투아니아에서 출발한 저가항공 라이언에어는 시내에서 아주 먼 Hahn 공항에 내린다. Bohr 버스로 시내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다. 비행보다 길었던 버스노선에 지쳐 시내에 짐을 풀자마자 짧은 낮이 저물기 시작했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크리스마스 마켓보다는 유럽중앙은행을 비롯한 초현대식 빌딩 숲과 항공,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그래도 돈과 사람이 모이는 도시답게 구시가지의 뢰머광장을 중심으로 들어서는 마켓도 꽤 명성이 있었다. 


뢰머 광장은 유리로 된 모던한 빌딩 숲 사이로 갑자기 나타난다. 대도시의 광장 치고는 크지 않은 편인데, 그 광장이 터져 나갈 것처럼 빛과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상시 사진을 보면 가운데 저울을 든 여신상을 중심으로 컬러풀한 중세 독일식 건물로 둘러싸진 꽤 여유로운 광장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변모한 시즌에는 여신상이나 시청사, 니콜라이 교회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임시 상점과 장식들이 겹겹이 들어서서 화려한 빛을 뿜어댔다. 막연히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이라 하면 상상할 수 있을 만한 모든 것을 좁은 공간에 다 갖춰놓았다. 중앙에서 좀 빗겨 나 서 있는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는 놀랍게도 진짜 나무를 쓰고 있었다. 똑같이 생긴 부스는 하나도 없고 각자 개성을 살린 크고 작은 부스들이 겹겹의 골목을 만들었다. 그 촘촘한 와중에 여기저기 공연도 한다. 영화에서 본 듯한 2층 회전목마는 황금빛 거대 장난감 같았는데 꽤 빠르게 돈다. 혼자 와서 외로울까 했던 걱정은 날아가고 이곳을 샅샅이 구경하며 즐겨보리라 투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입구에서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장 화려한 연말 백화점의 바겐세일에 줄 선 기분으로 일단 글뤼바인(따뜻한 와인)을 사러 입구와 가까운 매장에 겨우 접근했다. 평소 줄 잘서는 독일인들이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나머지 질서가 무너졌는데 그마저도 다들 즐겁다. 3유로에 컵 보증금 3유로를 추가로 받는 글뤼바인 한잔을 사들고 사람들을 비집고 다녔다. 해마다 디자인이 달라지는 머그컵은 안 돌려주고 가지면 3유로짜리 멋진 기념품이 된다. 교통의 요지답게 외국인 관광객도 많고 국적도 다양했다. 먹거리 부스 메뉴도 다국적이었는데, 그래도 독일 음식을 찾다가 사과잼을 곁들인 감자전을 만나 희한한 조화를 경험했다. 비행기 때문에 여행 말미에 다시 들렀을 때는 여기서 스위스 치즈 퐁듀를 먹었다. 


감자전 부스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주민인 듯, 해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즐기기가 힘들다며 자랑 섞인 푸념을 했다. 크리스마스 마켓들을 여행한다고 했더니 아마 이곳이 제일 멋질 거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멋지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행 말미에 느낀 결론은 프랑크푸르트 마켓은 제일 화려하고 국제적인 백화점 같은 마켓이라는 거였다. 면적에 비해 사람이 제일 많아서 더 그런 느낌이었다. 뢰머 광장을 벗어나도 번화한 쇼핑거리마다 전부 금빛으로 장식해서 크리스마스 마켓과 같은 빛을 냈다. 곳곳에 스타벅스를 비롯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동참하고 있는 그런 마켓이었다.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2016)


로텐부르크 마르크트 광장 

Rothenbrug ob der Tauber, Marktplatz - "중세 마을 상설시장"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출발, 목적지인 로텐부르크로 가는 길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ICE 열차로 출발했으나 뷔르츠부르크에서 지역 열차로 환승, 슈타이나흐트에서 더 작은 열차로 갈아타야 했다. 환승 간격이 15분 정도였는데 10분 정도씩 전부 연착해서 5분 내로 뛰어 타는 모험 같은 과정이었다. 그렇게 현대에서 중세로 시간 이동을 했다. 이 교통도 불편하고 작은 지방 도시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해서 전 세계 관광객을 모으고 있으니 그것도 참 대단하다. 가까이 갈수록 한중일 동아시아 관광객 비율이 높아졌다. 안개가 깔려 뿌연 오전 시간에 도착했는데, 시골길의 눈꽃 경치와 함께 구름에 싸인 듯한 작은 중세도시가 나타났다. 크리스마스 마켓도 그 성벽 안에서 비교적 조용히 성업 중이었다. 


로텐부르크는 독일에서도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예쁜 도시로 유명하고, 꼭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더라도 사시사철 크리스마스가 있는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산타도 쇼핑하러 온다는 크리스마스 선물가게 케테 볼파르트(Käthe Wohlfahrt) 본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가게들도 사시사철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용품을 만들고 파는 곳들이 많다. 꼭 광장에 가설되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아니더라도 중세 분위기 넘치는 골목들이 전부 상설 크리스마스 쇼핑 천국이다. 막상 시청사 앞 마르크트 광장의 마켓은 규모도 작고 상업성이 거의 없이 조용하고 전통적인 분위기만 났다. 뭔가 여기가 원조이고 전통이라는 자존심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회전목마도 프랑크푸르트의 휘황찬란하던 2층짜리에 비하면 단층에다 플라스틱이 드러나 보이는 낡은 유원지에 있을 법한 거였다. 가판대의 수공예품도 진짜 손으로 만든 티가 나는 투박한 것들이 있었다. 광장의 마켓은 그저 정겨운 동네 분위기만 내고, 막상 사고파는 것은 사시사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상설매장들이었다. 대목을 맞은 장식품 가게, 장난감 가게들은 디스플레이가 대단히 다채로웠다. 


케테 볼파르트 본점은 거대한 매장과 박물관까지 갖춘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시즌이기도 하니 안 가볼 수는 없었다. 조용하고 아담한 중세도시 골목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겉만 다른 건물들을 몇 채나 이어서 합쳤고, 지하와 지상을 넘나들게 되어 있다. 거대한 사차원 세계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상업성이 대단하고 엄청나게 체계적이다. 전 세계 택배 가능, 세금 환급 완벽 지원. 정해진 루트에 따라 테마별로 아이디어 넘치는 장식품 나라를 둘러둘러 출구 쪽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손에는 중간 어디쯤부터 강림한 지름신이 쥐어준 장식품과 선물들이 들려있다. 전부 수제품이라는 홍보에 걸맞게 작고 똑같은 장식품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여러 개 같이 모아 보면 정말 예쁘지만, 그렇게 여러 개 사려면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대표상품이자 부피가 클 수밖에 없는 크리스마스 촛대(Christkindle)나 호두까기 인형 시리즈 같은 큰 세트 옆에는 안전하게 전 세계로 택배가 된다는 친절한 문구가 모든 가족 단위 손님을 유혹하고 있었다. 쇼핑에 인색한 편인 나조차도 친구네 집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몇 개 사다 보니 한국에 가져갈 장식품도 또 몇 개 집어 들고 말았다. 크리스마스 쇼핑이 무섭다더니, 흡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텐부르크 광장의 소박한 크리스마스 마켓(2016) - 중세도시 골목마다 모두 크리스마스다.
산타도 쇼핑하러 온다는 로텐부르크의 케테 볼파르트 본점


뉘른베르크 중앙광장

Nuremberg, Hauptmarkt - "초대형 국제 박람회장"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른바 원조 "Christkindlesmarkt"를 자부하는, 독일은 물론이고 세계 최대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웬만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드는 크리스마스 마켓 랭킹에서 항상 상위에 있다. 베를린이나 뮌헨 같은 대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마켓들을 합친다면 물론 더 클 수도 있겠지만, 단일 구역에 펼쳐지는 장터는 여기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구시가 중앙광장을 꽉 채우고 넘쳐서 바로 인접한 좀 작은 공간과 큰길까지 모두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한 덩어리가 된다. 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 구시가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는데, 광장을 향하는 도로부터 마켓 표시를 크게 걸고 크고 작은 공터마다 부스가 줄지어 있었다. 구시가 전체를 작정하고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변신시킨 것 같았다. 여기서 처음 크리스마스 마켓을 지키는 군용차를 마주했다. 탱크는 아니었지만 무장한 군인과 군용차(장갑차)다. 내가 방문한 해는 2016년이다. 직전 9월에 니스에서 트럭이 보행로로 돌진하는 테러가 발생했다. 크리스마스 마켓도 타깃이 되리라는 우려가 많았고, 실제로 베를린에서 트럭 테러가 발생했다. 뉘른베르크도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차량통제는 원래 했겠지만, 그 통제를 군인과 거대한 군용 차량이 하고 있었다. 


군인 통제선을 지나 많은 부스와 인파를 헤치고 도착한 중앙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했다. 뉘른베르크, 하면 2차 대전 때 나치의 본거지여서 폭격으로 전소된 후 재건한 것으로 유명하고, 전범재판소가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중세풍의 로텐부르크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현대식이라고 해야 할까? 엄청난 규모이지만 부스는 모두 일정한 모양과 색깔로 정비되어서 한 세트로 보인다. 질서 정연하게 직선 정렬 배치되어 광장을 가득 메웠다. 평소 광장의 주인공인 프라우엔 교회(Frauen Kirche) 근처의 식당 2층에 난간이 있어서 잠깐 올라가서 내려다보았는데, 흰색과 빨간색의 줄무늬로 전부 통일한 가설 부스 지붕들이 바둑판처럼 열 맞춰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질서 있고 체계적이어서 경이롭기도 했지만 살짝 재미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려함의 극치였던 프랑크푸르트와 중세 분위기의 로텐부르크를 보고 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잘 정돈된 부스 사이로 구경을 다니다 보니 공예품 부스들의 범위는 국제박람회 수준이었다. 터키 등잔, 일본 팬시용품까지 다양한 국적의 장식품과 선물용품이 줄지어 등장했다. 아예 부스에 상표를 명시하고 업체들이 임시 지점을 차린 경우가 많았다. 로텐부르크에서 본 케터 볼파르트는 여기저기 부스를 몇 개나 운영 중이었고, 지역을 불문하고 다른 메이커들도 많이 들어와 있었다. 반면에 음식은 빵에 끼워주는 소시지로 하는 게 규칙인가 싶을 정도로 소시지빵 일색이었다. 물론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의 시그니처 메뉴는 소시지빵이지만, 유난히 다른 메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정면의 시청사 앞에 설치한 무대에는 정한 순서대로 합창이나 합주 공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상품은 만국박람회처럼 개방하고 음식은 단일화하고 공연은 무대에서만 하자는 듯, 뭔가 질서를 잘 잡아놓은 듯한 마켓이었다. 뉘른베르크라는 도시의 특성일 것이다. 이쯤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의 소시지빵에 물려서 결국 광장 주변 쇼핑가의 스타벅스로 가고 말았다. 

뉘른베르크 중앙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2016)


쾰른 대성당 광장과 옛 시장 광장

Cologne, Roncalliplatz (Kölner Dom), Alter Martk and Heumarkt - "럭셔리 마을 축제"


쾰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그중에 어디가 대표 마켓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인터넷 사이트들의 랭킹전에서는 수위에 들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다시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아 독일에 간다면 쾰른을 갈 거다. 곳곳의 마켓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원조'나 '대표'를 정하지 않고 광장마다 개성을 잘 발휘해서 꾸미고 즐기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직전에 뉘른베르크에서 너무나 질서 정연하게 운영되는 초대형 마켓을 보고 와서, 자유롭고 다양한 분위기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글뤼바인을 파는 컵도 다른 도시들은 하나로 통일하기 때문에 기념품이 하나만 생긴다. 쾰른은 와인 파는 곳마다 다른 컵을 쓰고 있었다. 개중 예쁜 것만 골랐는데도 세 개나 챙겼다.  


누가 원조랄 것은 없지만 그 유명한 대성당을 배경으로 하는 성당 옆 광장의 마켓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쾰른의 크리스마스 마켓들을 홍보하는 사이트에서도 일단 성당 옆 광장의 마켓을 메인 화면으로 하고 있다. 물론 다른 광장의 마켓들도 대성당을 배경으로 하는 포토스폿이 아닐 뿐, 나름대로의 스타일과 매력을 갖추고 성업 중이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대성당을 보고 나서 마켓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화려함으로는 조명을 비춘 대성당의 야경에도 뒤지지 않는다. 대성당 광장 마켓은 커다란 트리를 중심으로 부스를 배치한 전통적인 형태였는데, 소품도 있었지만 먹거리가 더 많고 종류도 다채로웠다. 동부의 뉘른베르크와 모든 것이 달랐지만 특히 먹거리가 많이 차이가 난다. 확실히 서부 독일은 벨기에나 프랑스식이 섞여서 디저트 종류가 훨씬 다양하고 맛있다. 치즈나 초콜릿이 많이 들어간 디저트의 유혹은 굉장했다. 몇 번 글뤼바인을 리필해가며 달콤한 간식에 계속 지갑을 열었다.


대성당과 떨어진 루돌프 광장이나 신 시장에도 매우 트렌디한 마켓이 선다고 한다. 하룻밤에 거기까진 엄두를 못 내고, 대성당 가까이에 이어지다시피 하는 옛 시장과 호이 마켓(건초 시장?)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교적 전통적인 대성당 옆 광장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전통적인 트리보다는 전구를 활용한 디자인 장식이 많고 다양한 조형물로 다채롭게 장식했다. 꽤 넓게 아이스링크를 만들고, 먹거리 상점도 2층까지 올린 규모 있는 임시 건물로 되어 있었다. 아이스링크를 내려다보면서 구름다리처럼 건너갈 수도 있을 정도로 크게 만든 2층짜리 나무 건물 전체가 카페와 바, 재즈공연장이었다. 시설들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이런 게 하나도 없을 평소의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야외공연을 위한 가설무대도 곳곳에 있었고 매년 한다는 듯 익숙해 보이는 연주단들이 다들 잘 아는 듯한 레퍼토리로 환호를 받았다. 


꼭 마켓이 아니더라도 쾰른 구시가지 일대에 넓게 퍼진 쇼핑가 골목마다 개성 넘치는 성탄 장식과 행사가 가득해서 아무리 걸어 다녀도 지치지 않았다. 지하수 수질이 좋기로 유명한 쾰른은 맥주(쾰쉬 맥주)나 향수(4711 코롱)도 유명한 관광 상품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까지 겹쳐서 관광객도 많았지만, 독일 현지인들이 너무나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왠지 서비스도 훨씬 친절하게 느껴졌고 같은 소시지와 커리부어스트조차 여기가 더 맛있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야경도 볼 겸 호엔촐레른 다리를 건너 대성당 야경 포인트까지 걸어서 다녀오기까지 했다. 글뤼바인을 홀짝이며 혼다 다녀오는 길도 계속 밝은 조명과 즐거운 사람들을 마주쳐서 시간이 늦었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았다. 다리 이편과 저편의 강변에도 소담하고 나름 고급스러운 크리스마스 부스들이 늦게까지 영업을 했다. 대표 마켓을 집중 육성하지 않아서 국제적인 명성은 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쾰른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장 추천한다. 

쾰른 대성당 옆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2016) - 성당 배경으로 이미 만족이다.
쾰른 옛 시장과 호이마켓의 크리스마스 마켓 (2016) - 강 건너 성당 야경까지

뒤셀도르프 시청사 광장과 주변 거리

Düsseldorf, Marktplatz and theme markets - "크리스마스 테마의 명동 거리"


쾰른과 가까운 뒤셀도르프는 큰 도시지만 관광보다는 산업도시다. 나도 구경보다는 주재원으로 와있던 친한 선배 가족을 만나러 일정에 넣은 거였다. 도시마다 소시지를 먹느라 살짝 질렸던 입맛을 여기서 만난 한국식당에서 달랬다. 각국 주재원이 많아서 한국 식당이나 상점도 많고, 도시도 훨씬 서울에 가까운 느낌이다. 여기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고 홍보도 하고 있었다. 구시가지 여러 곳에 테마별로 만들었으니 걸어 다니며 구경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곧 유명세를 탈 만한 규모나 전통의 마켓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장 중심이 되는 마켓을 따지자면 옛 시청사가 있는 구시가지 광장의 마켓이다. 숙소에서 구시가로 걸어가는 길부터 아기자기하게 거리마다 장식이 많이 되어 있었다. 라인강에서 지류를 끌어들인 작은 운하인 쾨니히살레는 천변과 다리에 전구로 아치를 만들다시피 했다. 산업도시인만큼 명품거리는 휘황찬란했고, 그 사이사이에 야외 마켓을 꾸민 하이네 거리 등이 연달아 나온다. 그런데 다른 도시들이 각자의 개성과 특색이 있게 느껴졌다면, 뒤셀도르프의 마켓과 거리들은 왠지 서울에도 있을 법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대형 트리 높이의 크리스마스 촛대(Christkindle) 모형처럼 독일 특유의 장식도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 조형물이나 부스 장식, 판매 스타일이 매우 현대적이고 깔끔해서 명동 거리나 코엑스, 여의도에도 맘먹고 좀 꾸미면 비슷한 분위기가 충분히 나올 거 같았다. 산업과 무역이 발달한 도시답게 현대화된 글로벌 감각이었다고 해야 할까? 자꾸만 연말 명동 거리 - 강남보다는 강북의 번화가 느낌 - 생각이 났다.


뒤셀도르프 크리스마스 마켓의 메인이라 할 구 시청사(rathouse) 앞의 시장은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이게 다야"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담했다. 주위 건물들이 안보였던 다른 도시 마켓들에 비하면 옛 시청사 건물이 아주 잘 보이고 단층의 소박한 부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전구와 조명도 상대적으로 어두워서 밤이라는 게 느껴졌다. 편안한 분위기였다는 걸 장점으로 꼽을 수는 있겠다. 결과적으로 크리스마스 마켓보다는 부유한 산업도시답게 즐비한 명품 매장과 잘 갖추어진 쇼핑몰, 화려한 레스토랑들이 더 돋보였다. 복잡한 구시가의 끝으로 나가면 넓게 트인 라인 강변을 만날 수 있다. 강변을 따라 길게 걸을 수 있는 공원이고, 커다란 대관람차가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강변을 따라 부스가 설치되었고 관람차도 색색으로 불빛을 내고 있어서 시내보다는 여기가 더 도시의 특색이 드러나는 마켓 같았다. 마침 흐리고 축축해진 날씨를 핑계로 마켓보다는 실내인 스타벅스나 유명 체인 카페를 찾아서 서울 느낌으로 밤을 마무리했다. 

뒤셀도르프 곳곳의 크리스마스 마켓 (2016)


베를린 잔다르망 광장, 포츠담 광장, 시청사와 알렉산더 광장

Berlin, Gendarmenmarkt, Potsdamer Platz, Town Hall and Alexanderplatz - "대목 맞은 장날"


베를린은 한 해 뒤인 2017년 연말에 따로 방문했다. 2016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서베를린의 유명한 쿠담 거리에서 열린 마켓에 트럭이 돌진하는 테러가 발생해서 사상자가 많았던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한 해 뒤에 다른 기회로 찾은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여전할까 살짝 궁금했었다. 테러로 위축되기보다는 그 기억을 씻고 더 당당하려는 듯 화려한 마켓과 거리가 연말을 밝히고 있었다. 수도이자 대도시답게 도시 곳곳에서 상당한 규모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성업 중이라, 어디 한 곳을 집어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관광객이라면 많이 지나다닐 수밖에 없는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보리수나무 아래) 거리의 잔다르망 마르크트와 포츠담 광장, 숙소를 잡았던 동쪽 알렉산더 광장의 마켓을 들러보았다. 


독일 통일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동쪽으로 뻗은 운터 덴 린덴 거리는 다 걷기에는 꽤 길지만, 볼만한 곳이 연달아 나타나서 결국 박물관 섬까지 걸어가게 되곤 한다. 그 중간에 나오는 명소 중 하나인 잔다르망 마르크트에 잘 꾸민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라 불어 발음으로 부른다는 광장의 마켓은 그래서인지 왠지 좀 더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쌍둥이 같은 프랑스 교회와 독일 교회 돔이 마주 보고 있고 가운데 콘서트홀도 있는 직사각형 광장의 시장은 테두리를 명확히 치고 출입을 통제했다. 크리스마스 마켓 탐방을 하면서 만난 마켓 중 유일하게 여기는 입장료를 1유로씩 받고 있었다. 마켓에서 입장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는데, 질서 있는 운영이나 보안상의 이유, 또는 기부 명목으로 그 정도 입장료를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 분위기도 좀 더 고급스럽다고 할지, 차분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젊은 학생들이나 관광객보다는 조금 연령층이 높고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았다. 


하얀 부스에 별 장식으로 통일해서 어두워지는 저녁 빛깔이 예뻤던 잔다르망 마켓은 부스마다 파는 상품 종류와 스타일이 서로 비슷한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선물용품을 파는 부스도 많았지만, 그냥 생활소품이나 의류, 잡화도 많아서 대목을 앞둔 장날 같았다. 로텐부르크의 케테 볼파르트는 여기서도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줄 서서 들어갈 만큼 인기가 있었다. 부스 여러 개를 이어서 큰 매장을 만들고 아예 유리벽을 둘러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점을 차리고 있었다. 많은 마켓들이 그렇듯 가운데쯤에 마구간과 동물들, 마리아 요셉과 예수님의 말구유 장식도 있었다. 마켓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성탄절 전까지 말구유에 예수님이 없는 경우도 많은데, 여기 예수님이 있을 뿐 아니라 본 중에서 가장 노안이었다. 아기 인형 치고는 얼굴이 스무 살쯤 되어 보였다. 콘서트홀 앞의 가설무대도 꽤나 규모가 컸고, 한쪽으로 먹거리 부스들이 모여 있었는데 군것질 수준이 아니었다. 메뉴판을 걸고 그릴을 제대로 펼치고, 안쪽에 좌석도 마련한 식당들이다.

베를린 운터 덴 린덴 중간의 잔다르망 마르크트 크리스마스 마켓 (2017)

이튿날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예매한 김에 조금 일찍 가서 포츠담 광장을 둘러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포츠담 광장의 마켓은 '조금 일찍' 가지고는 절대 다 돌아볼 수 없었다. 포츠담 광장과 기차역, 소니센터를 포함한 주면의 고층빌딩 블록을 둘러싼 거리 전체를 부스가 둘러치듯 포진해 있었다. 장벽이 헐린 후에 워낙 초현대식으로 조성된 곳이라 전통적인 옛날 분위기가 나지는 않고 잘 꾸민 요즘 장터에 가깝지만 나름대로 질서와 개성을 잘 살리고 있었다. 공간이 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트리나 성탄 촛대 장식, 또는 미끄럼틀 같은 놀이기구가 설치되었고 골목마다 모두 마켓이었다. 무엇보다도 워낙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화려한 연말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골목마다 조명 스타일이나 색깔을 다르게 맞춰서 개성을 살렸는데, 그래서 어느 골목은 더 흥청망청해 보이고 어느 골목은 상대적으로 소박하기도 했다. 고층 유리빌딩들도 로비나 입구를 장식한 곳이 많아서 화려함을 더했고, 원래 있는 쇼핑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마켓이 엄청 확장되어 보였다. 


포츠담 광장과 가까워서 걷다 보면 가게 되는 소니 센터는 그중에서도 백미가 되는 곳이다. 지금이야 회사로서의 소니가 예전 같지 않지만, 잘 나갈 때 좋은 장소를 후원하고 이름 붙이는 것도 참 중요한 마케팅인 것 같다. 우산 모양 천정이 원래 유명한데, 거기서 쏟아질 듯 조명 장식을 달고 가운데 분수를 화려하게 해 놓으니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렸다. 심지어 분수대에서 날개옷 입은 요정이 나오는 레이저쇼까지 하고 있었다. 포츠담 광장과 가깝고 공간 자체는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시의 크리스마스 마켓 소개에는 소니 센터의 마켓이 따로 안내될 정도로 독보적인 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화려한 초현대식의 장식이 높이 걸린 소니 센터와 포츠담 광장에 비하면, 동베를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시청사 광장과 알렉산더 광장의 마켓은 광장 넓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 소박하게 느껴졌다. 박물관섬을 지나 동쪽으로 치우친 곳이지만 상해 동방명주 탑을 연상시키는 TV타워(Berliner Fernsehturm)도 있어서 거기도 화려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시청사 광장 앞 넵튠 분수를 둘러싼 마켓은 나지막하고 상대적으로 조용한 전통적인 분위기였고, TV타워 뒤쪽으로 기차역을 끼고 넓게 펼쳐진 알렉산더 광장도 부스들이 그리 화려하거나 개성이 있지는 않았다. 초저녁까지는 진짜 한산하다가, 부스별로 조명이 두드러지는 늦은 밤에야 사람들이 꽤 모여서 먹거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저렴한 숙소가 많고 모든 것이 좀 저렴한 동쪽이어서 수요층도 상대적으로 젊고 학생이 많아 보였다. 사실 바로 근처에 할인매장을 내세운 초대형 아웃렛 쇼핑몰들이 들어서 있어서 굳이 부스에서 쇼핑을 할 필요는 없었다. 가족단위 쇼핑보다는 저녁을 즐기는 바처럼 캐주얼한 분위기였다. 

베를린 포츠담 광장과 소니 센터의 크리스마스 마켓 (2017)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2017)

베를린 시 차원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이름 붙여 소개하는 곳만 거의 10곳은 된다. 그 외에도 좀 번화했다 싶은 거리마다 크고 작게 부스를 꾸리는 경우가 많았다. 수도이고 대도시라 종합시장 같은 분위기고 전통보다는 현대적인 장식이 많다. 동서 베를린을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광장과 골목마다 나름대로 다른 느낌을 냈다. 요즘 '힙한' 도시로 홍보하는 베를린의 복합적인 성격이 다양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사실 이제 독일만의 문화도 아니고, 독일 문화의 영향이 있는 폴란드나 발트 지역은 물론이고 루마니아, 불가리아 같은 발칸의 도시들에서도 광장에 꽤 그럴듯하게 마켓이 서는 걸 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시 차원에서 여의도나 시내 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을 매년 개장한다. 어느 나라에서 열어도 조금만 신경 쓰면 베를린 같은 현대적인 마켓 분위기는 낼 수 있을 거다. 


상업화되고 대규모가 되면서 다양하고 화려한 것은 좋은데, 전통적인 요소는 점점 없어지는 듯하다. 꼭 종교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중앙에 트리와 마구간 세트가 있고 캐럴 무대와 기부금 함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큰 시장일수록 그런 것은 찾을 수 없었다. 판매 부스도 수공예 장식품이나 선물 용품을 작은 자영업자나 개인 위주로 팔면서 핫와인과 간단한 간식을 즐기는 정도가 전통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 모습은 독일에서도 로텐부르크처럼 보존 본능이 강한 중세마을이나 가능할 것 같다. 다른 기회로 방문한 불가리아 소피아나 루마니아의 브라쇼브, 파견 근무지였던 리투아니아의 작고 소박했던 동네 마켓에서나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마켓에 이미 눈이 익숙해져서 나도 너무 소박한 마켓은 실망감이 들었다. 어쨌든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들은 나름대로 개성과 전통적인 모습들을 지키려는 노력은 하고 있다. 혹시나 가게 된다면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나 원조를 자랑하는 뉘른베르크도 좋지만, 더 작고 유명세가 덜한 도시들을 가보기를 추천한다. 전통이 현대와 어우러지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그 모양이 다 다르다. 물론 어딜 가든 즐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크리스마스는 설레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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