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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Dec 08. 2019

빌딩 숲 사이에 남은 괴테

독일 프랑크푸르트, 2016년 말 겨울

프랑크푸르트는 괴테의 도시라고 한다. 물론 괴테가 꼭 프랑크푸르트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독일 최고의 교통의 요지, 금융의 도시다. 한국에서도 직항이 제일 자주 있는 독일 도시고, 리투아니아에서도 독일을 드나드는 항공편은 역시 프랑크푸르트였다. 아쉽게도 저가항공 라이언에어(Ryanair)를 타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한(Hahn) 공항에 내린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한 공항까지 비행이 두 시간 반인데,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시내까지 가는 보어(Bohr) 버스가 두 시간 걸렸다. 겨우 시내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지쳐 있었다. 그래도 유럽의 중부 독일 헤센 주의 12월 날씨는 리투아니아에 비하면 늦가을 같이 포근했다. 리투아니아에서 보기 힘든 고층 유리빌딩과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체인점들이 서울을 연상시켰다. 오래간만에 도시에 온 시골소녀처럼 빌딩들을 올려다보며 구도심으로 향했다. 


성탄 시즌이라 구시가의 뢰머 광장과 쇼핑가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볼거리를 펼쳐 놓고 있었다. 지나가다 들른 오페라극장(Oper Frankfurt)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티켓을 구해서 오랜만에 귀 호강도 했다. 성탄 시즌 구경과 문화생활도 좋았지만, 프랑크푸르트를 처음 와 본 관광객이라면 독일이 자랑하는 전통적인 관광 아이템을 놓칠 수 없다. 겨우 확보한 하루 나절을 투자해서 혼자 돌아다닌 구시가 구경의 주제는 대문호 괴테가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괴테의 집(생가, Goethe-Haus)과 그가 다니던 교회, 자주 다녔다는 카페까지 있다. 

구 오페라 극장(Alte Oper), 괴테 광장의 괴테 동상, 저녁 시간 카타리넨 교회 앞의 카페 하우프트바헤(옛 시위대 건물), 에센하이머 탑, 뢰머 광장 정의의 여신상

웬만한 상점과 관광지는 오전 10시 이후에 열기 때문에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 필요는 없었다. 괴테하우스를 방문하기 전에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의 몇 군데 안 되는 오래된 건물들을 보러 다녔다. 서울 테헤란로 같은 높은 고층빌딩이 즐비해서 강남 한복판을 걷는 느낌인데, 그 사이로 중세나 근대식 오래된 건축물이나 광장이 간혹 나온다. 워낙 옛 것이 많이 남지 않은 도시라, 그 시절에 있었을 법한 오래된 스폿을 다 코스에 넣어도 하루 나절이면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옛 오페라 극장이 있는 오페라 광장에서 괴테 광장에 이르는 괴테 거리는 명품 매장이 즐비한 쇼핑 거리였다. 옛 오페라 극장(Alte Oper)은 드레스덴에서 봤던 화려한 오페라 극장과 비슷한 둥글고 궁전 같은 건물이었다. 1880년에 준공했다고 하니 괴테 시절과는 무관한 근대 독일제국 건물이고 비교적 최근 거다. 프랑크푸르트도 드레스덴처럼 1944년에 폭격을 당했다. 그때 부서졌다가 재건했다고 한다. 


괴테 광장은 괴테의 동상이 있는 것 말고는 빌딩 숲에 둘러싸인 널찍한 통행 공간일 뿐이었다. 괴테에게 인사를 하고 나면 곧 괴테 가족들이 다녔다는 카타리넨 교회(St.Katharinenkirche)가 있는 하우프트바헤(Hauptwache, 'Guardroom'이라는 뜻) 광장으로 이어진다. 전철역도 있고 보행자 전용 최대 쇼핑거리인 차일(Zeil) 거리로 이어지는 큰 광장이다. 프랑크푸르트가 자유시로 도시국가 기능을 할 때 시위대가 주둔했던 곳이라 한다. 당시 시위대 건물을 살려서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영업 중이다. 18세기 건물이니 괴테 시기와 겹친다. 오전에는 쇼핑거리도 조용하고 크리스마스 마켓도 열지 않아서 한적했다. 카타리넨 교회도 공무원 출퇴근 시스템인 독일 교회답게 이른 시간에는 문이 닫혀 있었다. 괴테하우스도 바로 근처에 있지만, 잠깐 북쪽으로 걸음을 옮겨 옛 성문 귀퉁이인 에센하이머 탑(Eschenheimer Turm)에 먼저 눈도장을 찍었다. 근세까지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은 19세기 초 프러시아에서 도시 재건축을 하면서 헐었다고 한다. 헐린 자리는 성곽 모양대로 공원이 되었다. 북쪽 성문 자리에 기념품 삼아 이 탑만 하나 남겨 놓았다. 이것도 굳이 따지자면 18세기 괴테 시절에도 있었으니, 괴테도 보면서 지나다녔을 것이다.

괴테하우스 외관과 화려한 방들, 세로 피아노, 괴테의 집필실, 자명종의 곰 장식, 괴테 관련 지도, 우유 사러 다녔다는 카페

10시에 문을 여는 괴테하우스를 꼼꼼하게 보는 데 오전을 거의 다 보냈다. 생전에 이미 대문호로 부와 명예를 누린 괴테의 생가는 4층짜리 꽤 규모 있는 부잣집이었다. 방문했을 때 하우스 외부가 공사 중이었지만 내부는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주변 골목으로 다른 박물관이나 문화시설을 늘리고 있다. 집 자체도 규모가 상당한데 바로 붙여서 괴테 박물관을 연결해 놓았다. 박물관에는 괴테 시기의 회화 작품들(후기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과 수많은 괴테 관련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 보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멋스러운 정원과 테라스에서 괴테 흉상이 반겨주고 행사나 강연에 쓰는 공간을 지나면 현관과 부엌부터 층층이 올라가면서 둘러볼 수 있다. 1749년 여름에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괴테는 20대 때 바이마르로 초청받아 떠나기 전까지 이 집에 살았다. 대문호 괴테의 집이라기보다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부모님 댁이다. 어쨌든 여기서 태어났으니 생가이고, 청년 시절부터 유명 작가가 된 그의 모든 것이 형성된 곳이다. 2차 대전 때 부서졌지만 곧바로 복원할 만큼 독일과 프랑크푸르트 사람들에게 소중한 곳이었다. 


부유하고 명망 있는 집안이었기에 집은 구석구석 고급스럽고 화려했다. 그 시대에 물을 집 안으로 끌어다 쓴 펌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집안이 대단했다는 설명은 충분했다. 층마다 몇 개씩 방을 이어서 보게 해 놨는데 계단이나 벽지, 가구, 장식품까지 다양하고 세심했다. 물론 제일 중요한 방은 위층에 있는 괴테가 태어났다는 방과 젊은 시절 집필을 했다는 방이다. 대표작인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집필을 했던 곳이라며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책상도 잘 보존하고 있는데 한국어로도 "아무것도 만지지 마세요"라고 쓰여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인 만큼 그가 좋아했던 것, 나중에 작품에서 언급된 것들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커다란 자명종, 당시 유행했던 인형극용 무대 세트 같은 것이다. 음악실에 있는 세로로 된 그랜드 피아노도 눈길을 끌었다. 맨 위층에는 괴테의 일생과 프랑크푸르트에서 그와 관련된 곳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설명해 놓은 방도 있다. 딸려 있는 괴테 박물관은 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입장료 7유로에 다 포함되어 있어서 들렀다. 괴테의 흉상을 비롯해서 그를 찬양하는 수많은 기념품들이 그의 절대적인 위상을 인증해 주었다.


괴테하우스가 워낙 잘 보존(복구)되어 있고 애정과 존경심이 묻어나서 '생가'라는 이름이 붙은 장소들 중 드물게 관람이 보람찼다. 시간도 오래 할애하게 되었다.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막상 괴테의 작품은 제대로 읽어본 게 별로 없었다. 번역본이라도 완역을 읽어본 괴테 작품은 로마 여행 때 '이탈리아 기행'을 본 게 다였다. 바쁜 일상과 유명세에 지친 괴테가 이탈리아로 탈출하다시피 떠나 2년 가까이 체류하며 쓴 여행기다. 파우스트나 베르테르의 슬픔을 제대로 읽고 왔다면 팬심으로 더 감동했을까 궁금했다. 근처에 괴테가 자주 우유를 사러 갔다는 바커스 카페(Wacker's Kaffee)도 찾아갔는데, 앉을 곳이 없는 조그만 테이크아웃 전용 카페였다. 괴테 가족이 다닌 카타리넨 교회를 오후에 다시 방문하니 어린이 성가대 연습 중이라 문이 열려 있었다. 안쪽에 전시된 옛 사진들을 보니 여기도 2차 대전 때 완파되어 복구한 것이다. 내부는 현대 교회의 쓰임에 맞게 탁 트인 공간으로 깔끔하게 마감을 해서 하얗고 깨끗했다. 외관은 예전과 비슷하겠지만, 어찌 보면 그 옆에서 성업 중인 카페 하우프트바헤(옛 시위대 건물)가 더 괴테 시절과 비슷할 수도 있다. 

바울교회 (옛 사진과 현재 내부), 카이저돔 (옛 사진과 첨탑 전망), 역사박물관 (전경과 내부)

2차 대전 이후에 현대식으로 재탄생한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옛 모습을 살리고 복구하려는 노력이 여기저기 진행 중이다. 독일 의회정치의 시작점이라는 바울교회(Paulskirche)도 내부는 완전 현대식이지만 외관을 복구하여 보존 중이다. 1848년에 여기서 처음 구성되었다는 독일 국민의회는 1년도 채 못 갔지만 프랑크푸르트의 또 다른 자부심이다. 개혁교회가 많은 프랑크푸르트이지만 옛 신성로마제국 대관식을 했다는 가톨릭 대성당도 중요한데, 역시 2차 대전 후에 재건되었다. '카이저 돔'이라고도 하는 성 바돌로매 성당(Kaiserdom Sankt Bartholomäus)인데, 별 기대 없이 오른 종탑 전망대가 의외로 높아서 프랑크푸르트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뢰머 광장 남쪽, 니콜라이 교회 옆에는 마인 강변에 면한 옛 성벽과 항구 입구를 되살린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Historisches Museum Frankfurt)이 있다. 바쁜 항구였을 옛 모습을 추정하며 박물관을 만들었고 주로 기증을 받아 전시하고 있다. 기증품이 워낙 많아서 보다가 지치긴 했지만, 나치 치하에서 발생한 만행까지 잘 기록하는 독일의 과거 다루는 태도가 돋보였다. 


관광객 입장에서 옛 모습을 찾아다녀서 그렇지,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완전히 서울의 강남 같은 도시다. 코메르츠나 마인 타워를 지나면서는 테헤란로 생각이 나고, 명품 괴테 거리는 청담동 같았다. 스타벅스, KFC, 피자헛 같은 친숙한 미국 식음료 체인점이 계속 나타나서, 독일 소시지와 감자에 질린 입맛을 서울과 똑같은 미국의 맛으로 달래게 되었다. 차일 거리나 다른 쇼핑거리도 글로벌 브랜드 매장, 미국식 쇼핑몰, 백화점들이 금융권의 하늘 높은 유리빌딩들과 어울려서 서울 번화가와 정말 흡사하다. 2차 대전 폭격 후에 도시 대부분을 복원이 아닌 신축으로 재건했고 현대식 건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중근세 건물들은 그 중간중간에 다소 뜬금없이 하나씩 나타난다. 그래도 현대식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틈새에서 복구하고 보존하려는 노력과 성의는 인정할 만했다. 전쟁을 잊고자 초현대식 도시로 거듭난 프랑크푸르트 빌딩 숲 사이사이에서 과거를 기억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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