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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줄기 Nov 29. 2022

이글루와 굴비

내게 '행복의 원형'은 무엇일까

   굵은 눈발이 끝없이 내리던 199X 년 겨울밤, 서둘러 챙겨 입은 도톰한 점퍼 안으로 시린 공기가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던, 그 밤. 발그레 붉어진 두 볼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은은한 가로등처럼 어두움을 밝혔다. 손에는 엄마가 끼워 주신 장갑 두 짝이, 발에는 분홍빛 도는 방한 부츠가 곱게 신겨져 있었고 머리 위로는 방울이 달린 털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다가서 내려다본 곳에는 아빠와 오빠가 열심히 눈을 모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눈사람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일까? 저 많은 눈을 끌어와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 작은 가슴이 설렘으로 꽉 차 콩닥콩닥 뛰어 댔다. ‘얼른 내려가야지, 나도 가서 함께 눈을 굴려야겠다, 정말 재미있겠다!’

   신이 나서 달음질쳤던 열 살 소녀의 그 모습은 30여 년이 지난 내 눈앞에 아직도 선하다. 그 어린 소녀는 그날 밤 눈사람도, 강아지도 아닌 이글루(Igloo, 얼음과 눈덩이로 둥글게 만들어진 에스키모의 집.)를 선물로 받았다. 그 소녀는 바로 나였다. 제법 키가 컸던 내가 쏙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커다랗던 이글루! 그 안에 들어가 앉아 두 발을 앞으로 쭉 뻗은 채 환하게 웃던 모습은 작은 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커다란 이글루를 만든 건 우리 식구들밖에 없었다. 얼마나 신이 났던지 나는 폴짝폴짝 뛰면서 그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자랑하고 싶은 욕심이 불끈, 그래서 저 쪽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다른 가족들 쪽을 여러 번 바라보기도 했다. ‘여러분~ 여기 제일 멋진 작품이 있다고요!’

   꼬박 몇 시간을 정성 들여 만든 이글루는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오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감탄을 하고는 그 곁을 지나갔다. ‘와,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대단하다’ 하는 말들이 들리는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으쓱해진 어깨가 내려올 줄 몰랐다. 뿌듯했다. ’역시 우리 집이 최고야. 우리 아빠 솜씨를 따라올 사람이 없네.’ 그렇게 어린 내 마음은 자부심으로 충만했다. 감사함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어렸고, 겸손함을 갖추기에도 아직은 일렀던 것 같다. 그만큼 천진했던 영혼은 이런 순간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더 큰 이글루를 만들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나 그 ‘다음번’은 없었다. 겨울이 지난 어느 따뜻하던 날에 부모님은 별거를 시작하셨고,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이혼을 결정하셨다. 집을 나가신 아버지는 간간히 오빠와 나를 만나러 오셨지만, 단 한 번도 함께 내리는 눈을 맞으며 기뻐했던 적은 없었다. 다시는 우리 네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맛있는 식사를 하지도 못했고, 하루 동안 겪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날의 이글루는 더욱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아니, 그 행복했던 기억은 오히려 상처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글루 속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던 그 소녀가 너무나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그 부러움은 미움으로 변했고, 미움은 무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무감한 눈동자, 꾹 다문 입술. 사춘기를 지나며 독이 오른 나에게 남은 건 공허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은 마치 하룻밤 꿈처럼 짧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사진 한 장이 없었다면 아마 정말 상상이나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로 착각을 할 뻔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일어났던 일이었다. 눈앞을 가릴 만큼 쏟아지던 많은 눈들, 작은 손으로 뭉쳤던 눈덩이의 무게, 얼굴에 와닿았던 눈의 촉감,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하하 호호 웃었던 그 웃음소리까지. 우리 네 식구가 다 함께 모여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던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가족의 해체는 밥상에 자주 올라오던 굴비구이를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굴비구이. 시장하실 아버지를 위해 초저녁부터 부지런히 굴비를 구워 내시던 어머니의 분주한 손. 항상 꽉 찬 듯 든든했던 아버지의 의자가 덩그러니 남겨진 뒤로 그 손도 갈 곳을 잃은 듯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굴비를 젓가락으로 살살 발라 내 앞에 놓인 하얀 밥알 위에 얹어 주시던 우리 아빠. 새초롬한 표정으로 따뜻한 생선살을 오물오물 먹으면 그 모습을 보며 연신 웃음을 지으시던 그 마음. 식사를 마치신 뒤에는 밥그릇에 물을 부어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 주시려 했던 그 마음. 사실 그 마음은 정성을 담아 굴비를 구웠던 어머니의 마음과도 닮아 있었는데…….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언제나 맛깔스럽게 음식을 차려내던 엄마의 노력. 밥상머리에서 똑바로 앉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헤헤’ 웃으며 부모님께 응석 부리던 오빠의 애교. 그리고 언제까지나 이 행복이 계속될 거라고 믿었던 나의 믿음. 이런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우리 집 부엌은 생기를 잃어버린 채 차게 또 차게 식어갔다. 고소한 반찬 냄새,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찌개 소리, 하나씩 집어 먹었던 계란말이의 맛, 바쁘지만 즐거워 보이셨던 엄마의 표정까지 돌아보면 하나하나 소중한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그 온기 속에서 많은 영양을 받으며 자라나던 작은 ‘화초’는 어느새 투명하리 만치 맑았던 얼굴을 끝내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 네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나누었던 모든 기억들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행복의 원형’과도 같다. 그것이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조각조각 난 퍼즐들처럼 내 안을 부유하는 동안 나는 목적을 잃은 채 허둥지둥 살았다. 만일 하늘에서 소원을 한 가지만 들어준다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온전한 행복을 꼭 한 번만 다시 느껴보고 싶다고 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와 꼭 닮은 행복의 모습을 다시 그리기 위해 죽을 만큼 큰 용기를 냈다. 그건 사랑하는 한 남자의 손을 잡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가겠다는 결정이었다. 그래서 정말 다시 한번만,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 원형을 회복하고 그날의 이글루 안에서처럼 말갛게 미소 짓고 싶었던 것이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제 나는 감히 그 원형을 다시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소중한 아이와 12년 동안 함께하고 있는 강아지,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함께하고 있는 남편이 내 곁에서 그 행복을 함께 지어가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들을 떠올릴 때면 뭉클, 눈물이 솟는다. 내 존재를 완성하는 영혼들. 가끔 우리 집 식탁 위에는 종종 굴비구이가 올라간다. 귀여운 아들이 좋아하고, 그 아들을 끔찍이도 위하는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다. 고소하고 통통한 생선 위로 바쁘게 오가는 젓가락들이 고맙다. 어디에서 행복이 오는가, 그 젓가락이 전하는 잘 발라진 살점에서 온다. 아니, 이 소중한 영혼들이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들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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