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질수록 매혹이 더해지다.
바야흐로 EST(Electrostatic Tweeter)의 시대입니다. 전세계 이어폰 브랜드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EST를 채용한 이어폰을 시장에 내놓고 있습니다. 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신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고, 관심은 곧 구매로 이어집니다. 제조사들이 빠른 속도로 EST에 손을 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청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예민한 감각이라고 합니다. 좌우 귀에 전달되는 신호의 타이밍 차이에 의해 거리와 방향을 파악할 수 있고, 이밖에 찰나의 어긋남을 잡아내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소리차를 감지하고 또 아주 작은 소리차를 위해 많은 시간과 금전적인 노력을 투자합니다. 이러한 민감한 기관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디오 분야는 과거부터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신기술이 언제나 과거의 것보다 좋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자연스러운 음색을 추구하는 것처럼 만족감을 위해 기술이 진보되어야 하지 기술의 진보에 만족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 방식인 다이내믹 드라이버는 오랜 기간 사용된 만큼 이제는 거의 완성형에 가깝게 진보했습니다. 얇고 가볍지만 단단한 소재의 개발, 보다 강력한 자력, 최적의 사이즈 등 많은 부분들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에 비한다면 EST는 갓난아기 같은, 이어폰 분야에서는 이제 막 사용되기 시작한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아직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소니온에서 EST를 개발한 이후 서둘러 출시된 EST 탑재 이어폰들 중 몇몇은 ‘나 정전형 유닛 사용한 이어폰이야!’하고 크게 외치는 듯했습니다. 이어폰에서 EST를 사용한 이유는 보다 자연스러운 고역 표현을 위한 것이지 EST 특유의 소리를 듣기 위함은 아닐 겁니다. 더군다나 전용 앰프 없이 구동되는 EST는 필수적으로 다른 방식의 드라이버들과 함께 사용되어야 하는데 본인의 개성이 너무나 두드러지면 타 음역대와 잘 어우러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특별히 의도한 것이 아닌 이상 드라이버 방식이 지니는 특성은 개발자가 컨트롤 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AW의 플래그십 이어폰, 카나리는 기존 AAW 스타일대로 다이내믹 드라이버와 BA 드라이버를 함께 사용한 데에 더해 EST까지 추가한 트리플 하이브리드 이어폰입니다. 종전에 리뷰했던 동사의 ASH가 제가 듣기엔 각 음역대 소리들을 개성 있게 살리는 편이었기 때문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청음을 시작했는데요, 다행입니다. 카나리는 또 다른 스타일이군요.
아이소배릭 우퍼와 EST로 넓힌 다이나믹 레인지
카나리는 유닛 당 2개의 다이내믹 드라이버와 4개의 BA 드라이버, 그리고 2개의 EST가 사용된 이어폰입니다. 저역에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무려(?) 2개나 사용하여 묵직한 저역을 보다 강화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해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카나리의 저역 스타일은 보다 민첩해졌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직경 6mm의 자그마한 다이내믹 드라이버 두 개를 아이소배릭 방식으로 사용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카나리에 사용된 다이내믹 드라이버들은 드라이버가 서로 마주 보는 형태(Cone To Cone)을 취합니다. 마주보는 두 드라이버의 위상을 반대로 연결하여 함께 밀어주고 또 함께 당겨주는 푸시-풀 방식입니다. 튜닝에 따라 보다 강력한 음압을 뽐낼 수도 있고, 이론적으로는 반사에 의한 정재파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카나리의 경우 아이소배릭 드라이버를 택한 이유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덕분에 깊지만 깔끔하고 섬세한 저역을 들려줍니다.
중음역대와 고음역대는 4개의 BA 드라이버들이 각각 둘씩 짝을 지어 맡았습니다. 그리고 보다 높은 초고음역대를 대망의 EST가 담당합니다. 전형적으로 각 드라이버들이 최적의 성능을 뽐낼 수 있는 대역에 배정된 모습입니다. 각각의 드라이버들을 연결짓는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는 역시나 AAW가 자랑하는 TrueXross+가 적용되었습니다. 지난 번 리뷰에서도 소개했듯이 물리적 방식으로 각 드라이버 사이의 중첩 구간을 최소화시키는 기술입니다.
카나리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초점을 맞춘 부분이 음역대의 조화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만약 음역대 사이의 이질감이 느껴진다면 이번 제품 리뷰는 진행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카나리 리뷰를 작성하고 있네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걱정과는 달리 카나리는 오히려 이 제품이 트리플 하이브리드 제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 영역에 걸쳐 일관된 음색을 유지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나리의 소리 자체가 하나의 곱디 고운 천 위에 담겨져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뒤에 보다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이 부분이 카나리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만한 점입니다.
심심함 속에 담긴 달콤한 음색
구체적으로 카나리의 소리에 대해 조곤조곤 파악해 보겠습니다. 미리 말씀 드리자면 카나리는 한 순간에 청자를 매혹시키는 타입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 역시 처음 며칠 동안은 이 제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카나리는 들을수록 참 잘 만들어진 이어폰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어폰입니다.
우선 음역대 사이의 균형이 잘 잡혔습니다. 최근 들었던 다른 AAW 이어폰들처럼 풍성한 저역으로 무게 중심을 아래로 끌어내리지는 않습니다. 본의 아니게 요즘 저역이 묵직한 이어폰들을 주로 들어오는 바람에 처음에는 카나리의 저역이 조금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다른 음역대와의 균형적인 면에서는 딱 적당한 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여느 이어폰들의 저역 튜닝과 카나리의 튜닝은 조금 다릅니다.
제품명인 ‘Canary’는 우리말로 하면 ‘카나리아’가 됩니다. 카나리아는 맑고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매력적인 새라고 하네요. 제조사에서 괜히 이러한 이름을 지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기존 자사의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밝게 잡힌 토널 밸런스, 그리고 섬세한 표현력 등에 초점을 맞추어 정한 제품명 같습니다. 저는 카나리의 소리가 마치 카나리아처럼 아름다움이라는 속성을 가졌지만 맑음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나리는 맑다라는 단어보다는 달콤하다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립니다. 직접음 뒤에 은은하게 이어지는 잔향으로 인해 마치 얇고 고운 천으로 예쁘게 포장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다른 소리 표현보다도 사람의 청각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보컬 영역이 이러한 특징을 뚜렷이 드러냅니다.
달콤한 보컬하면 또 Moon(혜원)의 곡을 들어봐야지요. 제가 좋아하는 재즈 보컬입니다. 국내에선 윈터플라이 보컬로 활동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솔로 보컬로 입지를 단단히 굳혔습니다. 얼마 전 <Tenderly>라는 앨범을 발매했지요. 아무래도 재즈 시장은 한국에 비해 일본이 훨씬 크다곤 하지만 국내 활동도 많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카나리는 이런 재즈 보컬과의 궁합이 참 좋습니다. 날것 같지 않은 음색이 누군가에겐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만한 요소이지만 저에게는 약간의 윤기를 더해주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재즈에서는 그렇습니다. 만약 본인이 시원시원한 보컬 취향이라면? 늦기 전에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여러분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앞서 저역의 양감이 많지 않다고 해서 카나리의 저역을 기대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신 카나리의 극저역 및 저역 표현은 굉장히 섬세합니다. 특히 극저역 표현의 경우 진동으로 느껴지는 존재감이 상당합니다. 저역의 타격감이 부각되는 스타일이 아님에도 극저역 표현을 통해 저역의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 카나리만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꽉 찬 저역을 느낄 수 있지요. 다른 방향으로 저역 애호가들의 만족도를 충족시켜줄 만합니다.
보통 극저역을 테스트할 때 OST 장르를 많이 들어봅니다만 이번에는 Clean Bandit의 <What Is Love>에 수록된 곡들을 골랐습니다. 굉장히 낮은 대역까지 레코딩된 곡들이 많거든요. 그 중 ‘In Us I Believe’라는 곡은 스피커 시스템으로 들을 때 제법 큰 사이즈의 톨보이 스피커에도 잘 담기지 않는 극저역 음들 때문에 가끔씩 서브우퍼 생각이 나게 만드는 곡입니다. 카나리는 그 극저역 음의 두께가 상다히 두텁습니다. 저는 보통 저역이 묵직한 유형의 이어폰에 기둥처럼 든든히 받쳐준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카나리는 기둥이 아니라 지반이 탄탄하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저역은 어느 정도 타격감이 필요한 음역대입니다. 카나리의 타격감은 짧게 끊어치는 스타일입니다. 부피가 크기보다는 빠르고 단단한 쪽입니다. 보다 강력한 저역을 선호하는 분들에겐 부족하게 느껴질 겁니다. 만약 이보다 풍성한 양과 더욱 쫀득한 저역 질감을 원하신다면 카나리보다는 ASH쪽이 취향에 더 맞으실 겁니다. 대신 카나리는 마치 발놀림이 가벼운 운동선수처럼 어떤 비트를 재생하더라도 빠르고 정확하게 표현할 만한 이어폰입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으셨나요? EST를 사용한 제품을 리뷰하면서 정작 음질 면에선 아직 EST에 대한 언급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요. 그도 그럴 것이 카나리는 딱히 정전형 드라이버 스럽다는 티가 나지 않습니다. 제 기준에는 정석적인 튜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신기술 사용했다고 음색에서까지 티를 팍팍 내는 것은 촌스러운 짓입니다. 트리플 하이브리드 구조임에도 각각의 드라이버 티가 잘 나지 않습니다. EST뿐 아니라 다이내믹 드라이버는 무리해서 타격감을 뽐내지 않고, BA 드라이버 역시 선명하고 또렷하게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습니다. 모든 드라이버들이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가운데 전체를 한 번 감싸안는 카나리만의 달콤한 음색이 드러납니다.
카나리가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은 볼륨을 높이지 않더라도 곡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해상력이 뛰어나다고 해야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음선의 경계가 뚜렷하다든지 혹은 날카롭게 들리는 것을 해상력이 뛰어나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약음의 존재감까지 또렷하게 드러낼 때 해상력이 높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겁니다. 드디어, EST답게 넓은 다이나믹레인지(이 부분은 아이소배릭 우퍼의 극저역도 한 몫을 합니다)와 섬세한 다이나믹스는 기음과 함께 하는 배음 표현력에 영향을 미쳐 전반적으로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음색을 들려줍니다.
왜 자꾸 평양냉면이 생각날까?
진득하게 들을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제품들이 있습니다. 한 번에 확 잡아끄는 맛도 좋지만 그런 음식은 쉽게 질리기도 하죠. 마치 유행처럼요. 그보다는 다소 심심하더라도 계속 당기는 맛이 오랫동안 남습니다. 카나리가 그렇습니다. 제품 대여 기간이 끝나갈수록 점점 더 매력적이로 변해갑니다. 카나리의 소리가 언제 가장 좋은가, 마지막에 들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하나 모난 곳이 없어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올라운더로 사용할 만한 제품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국내에 한창 평양냉면이 유행했었습니다. 심심한 메밀 맛이 특징으로 요즘은 인기가 한풀 꺾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냉면 마니아들은 그 심심한 맛이 매력이라며 꾸준히 찾아 먹습니다. 마침 뜨거운 여름철이어서 그랬을까요? 제가 카나리를 들으면서 떠올린 음식이 평양냉면이었습니다.
평양냉면에 관련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창 유행이던 때 사람들 사이에서 평양냉면에는 식초나 겨자를 넣어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마치 넣어 먹는 사람들은 ‘냉알못’처럼 여기기도 했지요. 그런데 정작 평양냉면의 본거지인 옥류관 직원은 평양냉면에 식초, 겨자 등을 잘 섞어서 먹는 게 맛있다고 했답니다. 그렇다고 옥류관 직원에게 냉알못이라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자기 기호에 맞추어 먹는 게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일 겁니다.
카나리의 소리가 다소 심심하게 들린다면 식초나 겨자 한 방울 넣어… 아니 케이블로 살짝 간을 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부분은 실제 카나리 유저들이 탐색해봐야할 부분입니다. 물론 동봉된 구성품에도 Null Audio의 고급 케이블인 Hakone 은/동 하이브리드 케이블이 들어 있으니 품질 때문에 바꿀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카나리 이어폰이 기본기가 탄탄한 제품인 만큼 이것저것 변화를 주면서 듣는 것도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본 리뷰는 셰에라자드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