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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erious J Mar 09. 2018

DNA: Secret of Photo 51 (NOVA)

올바른 과학자(연구자)의 자세란?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관점에는 크게 ‘외재론’과 ‘내재론’이 있다. 운율이나 문체와 같이 작품 자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알아나가려고 하는 것이 ‘내재론’이라면, ‘외재론’은 작품 외적인 요소들(작가의 경험, 시대상,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작품을 해석해나간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재론’과 ‘외재론’의 두 가지 입장은 과학을 공부해가는 데 있어서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교육은 ‘과학적 이론을 공부하고 그 원리를 이해해나가는 것을 강요하는’ 내재론적 학습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특정 발견과 이론이 어떤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 속에서 과학자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갈등구도가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된 과학자들이 존재하지는 않았는지 등의 ‘이론 및 발견’에 대한 외적인 요소로서의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와 같은 과학교육적 세태에 통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 이론의 이면에 숨은 과학계의 다양한 모습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는 ‘좋은 과학자는 무엇일까’, ‘과학적 윤리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와 같은 단순한 질문에도 쉽게 답할 수 없으니깐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시청한 ‘DNA: Secret of Photo 51 (NOVA)’는 이러한 나의 염려와 안타까움에 더욱 더 기름을 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왓슨(왼쪽)과 크릭(오른쪽). / 사진 = 케임브릿지대 의학연구원 분자생물학 실험실

      

     DNA에 대한 연구적 응용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수십 년 전부터 과학계에 대두되어 왔던 화두 중에 하나였고, 몇 년 전부터는 ‘유전자 조작 식품’, ‘키메라 식물’등과 같은 다양한 생명공학적 이슈들로 인해 일반 대중들도 친숙함을 느낄 만큼 DNA와 유전공학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왔다. 시대가 그러한 만큼(선행학습 붐의 도움도 약간 빌어서), 지금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도 DNA가 이중나선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쯤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DNA의 구조 규명에 있어서 ‘왓슨’과 ‘크릭’이라는 두 과학자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까지도••••••.


로잘린 프랭클린. / 출처: https://m.blog.naver.com/matman2000/220222730238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로잘린 프랭클린’이라는 이름에는 익숙치 않다. 심지어 혹자는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미국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피뢰침을 발명하기도 한 ‘벤저민 프랭클린’과 혼돈하여 ‘혹시 로잘린 프랭클린은 벤저민의 아내 혹은 딸이냐?’라는 질문까지도 서슴지 않고 내뱉고는 한다. 이는 한 사람의 과학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한편으로 그만큼 과학계가 로잘린 프랭클린의 업적에 대하여 제대로 된 인정을 하지 않고 역사의 저편으로 묻어버렸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과학계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과학윤리의 잘못된 양상을 여실히 느낄 수 있기도 하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리고 사실상 이 말은 지금까지의 과학사에서도 확실히 적용되어 오던 것이다.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발견을 했을지라도 누가 먼저(하루, 아니 단 몇 시간의 차이일지라도) 그 성과를 발표하였는지에 따라 ‘최초’와 ‘그 이후’라는 명확한 선이 그어지는 세계가 바로 과학계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차이가 뭐가 그리 크겠냐고 의구심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과학계에서 최초 발견(발명)자와 두 번째 발견(발명)자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즉, 최초는 발견(발명)에 대한 모든 영예를 안을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아무런 혜택도, 명예도 얻을 수 없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20세기 아문센과 스콧이 남극점을 먼저 정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것과 같은 모습이 이미 과학계에서는 수 백 년째 너무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경쟁들 중 대부분이 선의의 경쟁이었고,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에 의해서 과학은 끊임없는 발전을 이룩해왔다.


     하지만 몇몇 과학자들은 발견(발명)에 있어서의 선취점을 획득하기 위하여 반칙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여 다른 과학자의 업적을 깎아내린 후 자신의 발견이 실질적으로는 먼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비록 과학자는 아니지만 야우 싱 퉁이라는 수학자가 페렐만의 푸엥카레 추측을 억지로 깎아 내린 후에 내용만 조금 더 추가하여 필즈상을 가로챈 예가 있음), 공동연구자의 공로를 축소하여 노벨상을 혼자 수상한 사람(오토 한이라는 과학자가 리제 마이트너의 공로를 가로채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의 여부를 두고 아직까지도 논란이 있음)도 있었다. 심지어는 진화론의 아버지인 찰스 다윈마저도 실제로는 젊은 박물학자 러셀 윌리스의 편지를 받고 그 내용을 가로채려 논문을 냈다는 의혹까지 존재한다. 이와 같이, 과학계의 수많은 발견과 발명의 역사 속에서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암투는 매우 은밀하고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로잘린 프랭클린도 그 암투의 희생자 중에 하나라는 것이 바로 그녀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야우 싱퉁(왼쪽)이 페렐만(오른쪽)의 증명을 가로챘다는 걸 풍자한 그림. / 출처: https://pversusnp.wordpress.com/2009/04/15/manifold-r


     혹자는 로잘린 프랭클린이 DNA의 X선 회절에 대한 51번 사진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어서(X선 회절 전문가가 과연 그것도 해석하지 못했을지 수긍이 잘 가진 않지만) 그것을 방치해둔 것이고, 왓슨은 그 방치된 사진을 제대로 해석하여 크릭과 함께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므로 그녀의 공로는 그리 크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실제로 고교시절 한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반면 또 다른 사람은 그녀가 이미 51번 사진이 지니고 있는 의미(DNA가 2중나선이라는 것)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사진은 B형 DNA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A형 DNA의 구조까지도 확실하게 규명한 후에야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일단은 사진을 묵혀두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번에 시청한 동영상인 「DNA: Secret of Photo 51 (NOVA)」에서도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진 채 그 당시 로잘린 프랭클린의 심정과 처했던 상황에 대하여 접근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철저하게 그 당시 프랭클린 주변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그것을 종합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기억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주변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로잘린 프랭클린의 심정과 관련하여 절대적인 확신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언론인과 마찬가지로 ‘Fact’에만 주목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과학자이며, 추측은 fact에 대한 판단을 흐려지게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난 그 당시 로잘린 프랭클린이 DNA에 대한 X선 회절 사진, 그 중에서도 51번 사진에 대하여 어떤 견해와 생각을 가졌는지에 대해선 제쳐두고자 한다. 그보다는 그녀의 51번 사진을 ‘몰래’ 열람하고 그것을 이론적 근거로 삼아 DNA 구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그녀의 공로는 논문 상에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로) 왓슨과 크릭의 행동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인가에 주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논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학에 있어서의 공공재와 사유재의 분류에 대하여 생각해볼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과학에서의 공공재란 말 그대로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은 채 누구나 마음껏 이용하거나 인용하는 것이 가능한 지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F=ma라는 식은 비록 뉴턴에 의해서 처음 제시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식을 쓸 권리는 뉴턴에게만 독점적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반면, 과학에서의 사유재는 순수하게 나의 지식과 노력으로 쌓아 올렸으나 아직 공개할 의향은 없는 지식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연구자가 논문이나 학회 등의 방법으로 아직 공개하지 않은 자신의 연구적 지식이나 성과, 노하우는 그 당사자에게만 귀속되는 것이지만, 연구자와 사회의 합의를 통해 지식이 공개되고 그것을 누구나 접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지식은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게 되며 연구자는 그 대가로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세상에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었던 그 당시 로잘린 프랭클린의 51번 X선 회절사진은 엄연히 그녀의 지식재산, 즉 사유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지식을 무단으로 열람한 후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논문을 완성한 왓슨의 행위는 부적절하고 비도덕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왓슨과 크릭이 자신들의 발견에 대하여 로잘린 프랭클린이 미친 영향과 공로를 인정해 주기라도 했었더라면 당시 그녀의 삶은 그나마 불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로잘린 프랭클린이 촬영한 DNA x선 회절 51번 사진. / 출처: https://m.blog.naver.com/matman2000/220222730238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 당시 DNA의 구조를 규명하고자 노력한 수많은 과학들 중에 하나가 바로 라이너스 폴링이다. 복잡한 물질들의 화학적 구조에 대해 누구보다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그가 조금만 더 좋은 품질의 X선 회절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면 아마도 DNA 구조발견의 공로는 폴링에게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이는 그만큼 연구적 지식과 정보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경지를 넘어선 과학자들의 경우, 약간의 정보 및 데이터의 차이만으로도 최초 발견자의 여부가 달라지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봤을 때, 중요한 연구적 지식을 본인의 허락도 없이 강탈당한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 로잘린 프랭클린은 실로 과학적 암투와 반칙에 의한 희생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 과학을 공부해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단순하게 ‘왓슨’, ‘크릭’과 같은 역사 속 승자만을 기억하기 보다는 ‘로잘린 프랭클린’의 일화처럼 과학계의 숨겨진 내면들까지도 알아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선취점을 따기에 급급해서 과학윤리를 어기는 것도 불사하는 과학자의 삶은 우리가 지양해야 하는 모습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여담으로, ‘DNA X선 회절 51번 사진의 탈취사건’에 관하여 왓슨에게 배울 점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가 X선 회절 사진을 해석하여 그것이 ‘DNA의 2중나선을 의미한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왓슨과 크릭은 DNA와 관련된 생명과학의 역사에서 주연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타인의 연구결과를 무단으로 열람하여 자신만 영예를 챙기려고 든 왓슨의 행위는 인간적으로 비판 받아 마땅하나, ‘51번 회절사전’의 중요성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그것을 기회로 승화시킨 ‘과학자’로서의 그의 능력에는 감탄이 흘러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 과학자들은 우연히 마주치게 될 작은 기회와 단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로부터 하나의 큰 발견을 이뤄내기 위해서 일생 동안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에 정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왓슨’은 능력 있는 과학자였음이 틀림없다.


     앞으로 세계의 수많은 과학도들은 ‘뛰어난 과학자’와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 혹은 ‘그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자’ 중에서 어느 것이 될지에 대하여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얼마나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는 우리가 끊임없이 공부해 나갈 과학적 지식과 과학윤리가 얼마나 잘 균형을 이룰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되 내가 인간임을 잊지 말자. 이것이 바로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에 대해 수없이 되뇌어야 할 무언의 주문이자 다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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