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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삼숙 Feb 12. 2020

장안동 할머니의 점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불현듯 장안동 할머니가 떠올랐다. 3년전 소개로 찾아갔던 신점 보는 할머니.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나와 회사 친구는 처음에는 비판적인 태도로 의심의 눈빛을 풀가동하고 그 집에 들어 갔다. 어디 한 번 맞추어 보시지. 그런데 할머니는 놀랍게도 나와 친구의 직업, 성격, 가족, 심지어 지나간 남자들까지 소름 끼치게 맞추어냈고(그것도 카리스마 넘치게 시종일관 반말로), 우리는 어머어머 하면서 1시간 동안 그녀가 풀어내는 썰에 깊이 감동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할머니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했다.


"결혼은 늦게해"

"네?! 왜요?? 이미 서른 하난데요!"

"서른 넷이 되어야 결혼운이 들어와. (대체 왜 이렇게 난리를 치지 하는 눈빛으로) 지금 만나는 남자 있어?"

"네... 있기는 한데..."

"이름 뭐야? 생년월일? (......분석중......) 결혼은 하지마 얘는 아니야."

"아니 왜요 대체!"

"얘는 기가 너무 약해. 너를 감당할 수가 없어. 기본적으로 사주가 너무 흐려."


점을 본 후 몇 달 간의 고민 끝에 결국 나는 당시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하였고, 휴대폰에 저장된 할머니의 연락처를 지워버렸다. 나는 앞으로 사주, 운세 이딴 거 안보고 주체적으로 내 삶을 설계해 나갈 거라고 굳게 다짐하면서.


그로부터 몇 차례 계절이 지나고 어느 봄날, 나는 그 할머니가 다시 떠올랐고 예전에 같이 갔던 친구에게 연락처를 받아서 다시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받아 든 할머니는 전과 똑같은 점괘를 읊어댔다.


"결혼은 안했지?"

"했는데요."

"에? 너는 서른넷에 결혼운이 들어오는 앤데 벌써 했다고? 언제?"

"1년 전에요."

"(나를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너 예전에도 오지 않았냐? 그런데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냐. 못 알아 봤네."

"네, 그때도 할머니가 결혼하지 말라고 했어요."

"근데 왜 했어?"

"이러다 영영 시집 못갈까봐서요."

"(어이없는 표정) 근데 왜 또 왔어?"

"이혼하려구요."


결혼한지 얼마나 되었는지, 왜 이혼을 하려고 하는 건지 한참을 내 얘기를 듣던 할머니는 손녀딸에게 이야기 하듯 결혼하면 원래 처음에는 다 힘든거다, 결혼한지 1년 밖에 안 된 것이 무슨 이혼을 한다고 난리냐, 네 사주에 이혼은 없다, 애는 착한거 같으니까 이왕 한거 잘 참고 서로 맞추면서 살아 봐라 라고 나를 달래고 타일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리상담가를 찾아가지 않고 점쟁이에게 간다고 하지 않나.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그렇게 길게 당시 사정 얘기를 해서 그런지 그 신당을 나서는데 속이 다 시원했다. 그래, 일단 살아보자.


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 뒤 어느 가을날 나는 결국 이혼했다. 맞는 점괘는 받아 들이고, 틀린 점괘를 무시했다면 참 좋았을텐데. 할머니의 말을 들었더라면 뭐가 달라 졌을까. 장안동 할머니는 신기가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나와 같이 갔던 친구는 할머니가 결혼하라는 남자와 결혼해서 예쁜 아들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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