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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삼숙 Oct 29. 2023

짠하고 애틋한 나 자신에게

나의 불행은 29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4년 만난 남친이 나만 사랑한게 아니었다는 걸 제보자의 제보로 알게 되었고, love of my life는 그렇게 떠나갔다. 새로 옮긴 회사는 내맘 같지 않았고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그곳에서 나는 참 많이 외로웠다. 짝 찾기에 지친 나는 몇 가지 시그널을 외면하고 성급하게 결혼했다 곧 이혼했다. 다리를 다쳤고 몇달간 깁스를 해야 했으며, 사소한 행정적 실수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고, 당시 기사는 아직도 인터넷에 박제되어 있다. 스쳐간 쓰레기의 잠수이별에 괴로웠고, 미국 유학을 위한 어드미션까지 다 받았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비자가 안나와 가지 못했다.


2년이나 만났던 소시오패스로부터 비혼주의임을 고백 당하며 차였는데, 그는 헤어질 때도 룰루랄라 술먹으러 가던 길에 잠깐 들러 통보할 정도로 무례하여 엄청난 마상과 충격에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사귀는 걸 오픈하기 꺼려했던 그는 헤어지고 나서는 나와 사귄 에피소드를 팔고 다니며 영업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ㅅㅂㄴ…). 나의 정신적 지주였던 부모님은 많이 늙고 병들었고 내 마음 다스리기도 벅찼던 나는 부모님께 그닥 의지나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ㅠㅠ).


눈치가 없는 건지 뇌가 없는 건지 전남친은 평화로운 휴일에 결혼 소식을 알려 오기도 했고(당시 등산 중이라 조난 당할 뻔) 밤늦게 술에 취했는지 지금 우리집 근처이니 자신의 청첩모임에 나오라고도 했다(돌았니?). 오로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나에 대한 허위 소문을 악의적으로 유포했던 악마들 중 1인은 나 말고도 많은 이들로부터 원한을 샀기 때문인지 얼마 전 차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고도 끔찍한 방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미 많이 오픈하긴 했습니다만) 개인정보 보호 및 셀프 쪽팔림 방지 그리고 데이터 절약 차원에서 더 이상 여기에 추가로 열거 하지는 않겠지만 그 외에도 크고 작은 테러 혹은 이불킥 사건들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파란만장한 시간을 거쳐 어느 덧 서른 여덟을 살아가고 있다.


각종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가끔씩 나의 근황을 묻거나 어떤 자리에 나를 소개하거나 부르려는 지인들이 사실은 진심으로 나를 위한다거나 애착이 있어서라기 보다 관음증 혹은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친구든 애인이든 내가 마음을 주며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나에게 별 가치나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슬펐다.


10년간 이어져 온 나의 크고 작은 불행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고, 대체 어디까지 가자는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남들은 인생을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일들을 나는 10년간 죽어라 얻어 맞고 있는데, 그럼에도 매번 다음을 기대하며 살아온 나 자신이 짠하고 애틋하다.


하지만 방탄이 아닌 이상 나도 이제는 정말 지치고, 힘들고, 현타가 오며, 절망적이고, 다 내려놓고 싶기도 하다. 왜 내 인생은 이다지도 안 풀리는 것인지, 꼬여도 어떻게 이 정도로 꼬이는 것인지, 나는 그냥 안 될 팔자인 것인가 싶다. 가끔씩, 아니 솔직히 꽤 자주 부모님 마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난 이 세상에 철저히 혼자 남겨질텐데 그땐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외롭고 많이 무섭다.


나도 남들처럼 언젠간 내 운명을 만나 안정을 찾을 거라고 또 다시 믿어보기엔 나는 너무 현실주의자이고(I”S”FJ), 똥차 간다고 벤츠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똥차 혹은 침수차 아니면 포르쉐의 탈을 쓴 개똥차 등만 나를 충격하고 간 지난 10년의 역사가 입증한다.


얼마 전 내 팔자소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나에게 자칭 명리학자 친구가 말했다. 너는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태양 같이 빛나는 특별한 사람인데,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해서 불행하다 하느냐고. 원래 멋있는 건 보편적이지 않다고. 관점을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면 미운오리새끼가 아니라 백조인 걸수도. 하지만 그 친구는 능력을 갖춘 것과 안정적인 가정을 갖는다는건 삶의 영역이 달라서 하나의 충족으로 다른 결핍을 채울 수 없는 것임을, 사회에서 인정 받는 것과 개인의 삶에서 사랑을 주고 받고 싶은 것은 결이 다른 욕구임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돈 많은 슈퍼스타인 엄정화 언니나 고현정 언니도 어느 정도의 외로움이나 공허함을 분명 느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사실 나를 위로하기 위하여 몇 년 전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 나아진 건 없고 오히려 나이만 먹고 몇 가지의 고통들만 더 추가되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걱정하고 후회하는 건 무용한 일이고, 통제 가능한 영역에 몰입하여 소소한 성취를 이루며 사는 것이 그나마 덜 힘들게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지난 시간이 알려주었다. 또한 하늘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준다고 하니, 온전히 나의 이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언젠가는 주시리라 믿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30대 일거라고, 그리고 그 시기는 상당히 많이 지나갔다고, 일련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믿고 싶다.


하루는 맑고, 하루는 먹구름이 잔뜩 낀 날로 아마도 난 일희일비 하며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가끔 운동으로 땀을 빼고 셀프 칭찬도 하고, 드라마나 책을 보며 스스로 위안도 하고, 친구를 만나거나 일에 몰입하면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맘처럼 잘 되지 않는 날에는 또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축 처져 있는 날도 있을 것이지만, 또 얼마 후 마음을 바꾸어 다시 나가 걷기 라도 하면서 그렇게 이 시간들을 흘려 보낼 것이다.


지나간 불행을 한탄하는건 새로운 불행을 불러오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동적으로 자꾸 곱씹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아,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다시 현실 속 무엇인가에 몰입을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다 보면, 여기가 아직 터널 속이라는 걸 잊게 해주는 크고 작은 선물들을 가끔씩 하늘이 건네주지 않을까 또 믿어본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살면 살수록 인생은 정말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것 같다. 언젠간 하늘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이 모든 걸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행복으로 나를 이끌어 주시지 않을까 또 바라본다.


불행이 반복될 때 부정적 생각에 잠식되고 자포자기하게 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또 희망을 가지고 버티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럴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지구력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어차피 인생이 남들과 다소 다르게 흘러온 김에 보편적이지 않게 가보기로 하자(솔직히 달리 선택권이 없기도 하다). 짠하고 애틋한 나 자신, 아직 인생을 반도 살지 않았고,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사실 나는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 어설픈 위안은 삶을 계속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를 부조리한 오답에 적응하게 만든다. 그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간을 흘러가고 우리는 거기 실려간다. 삶이란 오직,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생겨나고 변형되고 식고 다시 덮혀지며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니듯이, 위로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 잠깐씩 짧은 위로와 조우하며 생을 스쳐 지나가자고 말이다. 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의 고독한 떠돌이 소년. 이 말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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