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여행기 - 6
물놀이는 체력 소모가 심하다. 집에 와서 젖은 수영복을 말리고 숨을 돌리니, 다음 일정을 시작할 시간이다. 서두르는 이유는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에서 일몰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일몰 3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2000미터가 넘는 정상에 도착해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가는 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굽이진 길을 돌고 돌아 힘겹게 올라가면서 아무것도 안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잠시, 2000미터 넘었을 때 갑작스럽게 하늘이 맑아지고 해가 강하게 내리쬔다. 마치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온 것처럼.
고도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우리는 해에게로 달려가는 느낌이고, 저 밑 지상세계와는 날씨가 다르다. 3,000미터에 가까운 정상은 춥고 고요하고, 한적하다. 사람은 많지만 다들 숨죽이고 조용히 상념에 빠져 걷고 있다. 왠지 모르게, 솟아오른 흙산들에 경외심이 생긴다.
Beach Chair와 Towel을 산 정상에서 쓰게 될 줄이야. 우리는 혹시 해변가에 갈 때를 대비해서 차에 실어놓았던 의자와 수건을 꺼내온다. 두툼한 외투로 몸을 두르고, 핫팩을 꺼내고는 의자에 앉아 석양이 지는 것을 감상한다. 도저히 7월 날씨라고는, 그리고 하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분다. 체감 기온은 5도 언저리인 듯하다. 6:50분부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가속도가 붙었는지 어느 순간 해는 사라지고 없다. 일몰이 시작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인다. 하지만 한 번 발동이 걸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내려가고 만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일몰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이 곳의 밤에는 별이 무수히 쏟아져 내린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추위를 견뎌 낼 재간이 없고, 오늘은 구름도 많은 지라 대기 상태는 좋지 못할 것이다. 내려오면서 이적의 '이십 년이 지난 뒤'와 같은 쓸쓸한 노래가 떠올라, 틀어본다. 일출은 앞으로 다가올 희망찬 미래를 떠올리게 하지만, 일몰은 저물어가는 현재, 지나가버린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들을 기어코 하고 만 것에 대한 반성. 떠나보냈거나, 볼 수 없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거창하게 가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일몰의 힘은 대단하다.
내려와서는 Maui Brewing Company라는 마우이의 얼마 없는 pub에 갔다. 우버와 비슷한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인 lift를 이용해서 간다. 기사님은 MBC는 마우이에서 소위 핫한 곳이라며, 맥주가 맛있다고 추천한다. 무엇이 맛있냐고 물어보니, 웃으시면서 이름은 기억이 안 나고 No.3라고만 한다. 이런저런 소소한 대화들을 나누며, 차에서 내리는데 흡사 강남역의 커다란 3층짜리 펍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 적막 흐르는 외딴곳에 뜬금없이 시끌벅적하고 조명밝은 빌딩이 출몰하니, 그 예상치 못한 부조화에서 즐거움이 솟아난다.
우리는 문득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음을 깨닫는다. 미국에서는 술 판매가 엄격하기 때문에, 반드시 술을 마실 때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특히나 우리같은 아시아 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어려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 곳이 어느새 익숙해져서, 여권 챙길 생각도 못 했나 봐.라고는 그냥 웃어버리고 들어간다. 마우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온 것처럼, 내부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시끌시끌하다. 차분하고 조용한 마우이에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그리울 때마다 찾아올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