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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25. 2024

여기 봐봐, 우주가 보이지?


#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생각보다 잘 안 써진다. 어떤 글감이 머릿 속에 딱 떠오르면, 이런 느낌이 담겨지게 쓰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다. 글을 쓰다보면 산으로 가기 일쑤이지만……


말처럼 글도 사실 그냥 글자를 쭉 쓰기만 하면 만들어지는 쉬운 산물이다. 그러나 머릿 속에 복잡하게 조립되어 있는 것을 하나 하나 해체하여 다시 다른 이의 머릿 속에 그렇게 조립할 수 있도록 전개도를 그린다는 건 보통의 기술로는 어렵다. 정말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피아노가 그렇듯, 그림이 그렇듯. 기술을 얻으려면 계속 쓰고, 부족한 글에 화들짝 놀라는 과정을 꾸준히 겪을 수 밖에 없다.


아, 세상에 정말 쉬운 일 없다. 글자 깨치고 지금까지 40여년간 글을 써왔는데도 이리 어렵다니. 죽기 전에도 만족 못하며 계속 썼다 지웠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이런 나의 감정과 상관 없이 그저 계속 쓰는 수 밖에 없다. 타고난 성향이 글쓰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성향대로 살아가는 게 제일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 우주가 보인대


예술 교육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사람으로서 아이가 예술 선생님만은 정말 훌륭한 분을 만나길 바랐다. 아이가 최근 미술을 시작했는데, 할머니 화가 선생님이다. 본업이 화가이시다보니 생각이 매우 자유롭다.


오늘은 아이에게 유리구슬을 주시며,


‘잘 봐봐. 이 안에 우주가 있어. 보이니?’

라고 하셨단다. 아이는 작은 눈으로 정말 우주를 보았고,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그 우주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엄마, 한 쪽 눈 감아봐. 여기 봐봐. 우주가 보이지?‘


난 아이에게 유리 구슬 속 우주를 보여주기 위해 미술 교육비를 낸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 아인 유리 구슬 속에 우주가 있다는 걸 삶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을까?


자유롭고 창의적인 영혼을 가진 어른이 우리 아이 곁에 한 명이라도 있어서 아이의 우주가 좀 더 다채로워지길 바랐다. 틀에 박힌 엄마, 아빠가 보여줄 수 없는 담장 너머의 세상을 까치발 들고 볼 수 있길 바랐는데, 아이가 디딤돌을 만난 것 같다.


우리 아이가 지금 배우는 그 새로운 세상에서 더 많은 것들을 품고 독특한 색깔을 잃지 않은 채 자라나길. 세상에는 다양한 영혼이 있고, 영혼과의 만남으로 삶의 영역이 더 넓어진다는 걸 마음으로 느끼는 아이로 성장하길.


나보다는 더 광활한 아이의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이 두근거린다.



# 참 많이 컸네


겨울이 되면 발 끝이 툭툭 찢어지곤 한다. 병은 아니지만, 사실 내게는 병처럼 평생에 걸쳐 불편한 일이다. 겨울에는 발이 잘 찢어져서 조금이라도 오래 걷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조차도 발이 너무 아파 까치발을 들고 걸을 때가 많다. 밴드를 붙여도 하루이틀이면 또 다른 곳이 터지니 나도 모르게 무기력해진다.


오늘도 발이 너무 아파 걸을 때마다 아파하는 날을 유심히 바라보던 호두가 갑자기 밴드를 들고 왔다.


“엄마, 앉아 봐봐.”

밴드를 여러 군데 붙여주는 호두를 보니 엄마가 부탁하지 않아도 엄마를 관찰하여 챙길만큼 컸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찡하다.


매일 내가 아이를 챙겨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직도 고사리손인 녀석이 벌써 이만큼 컸다는 게 괜히 아쉽다.


감동도 잠시. 조용해졌을 때 얼른 가봤어야 했는데…. 안방 한 쪽 벽면을 스티커밭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며 아직 애기 맞구나 하는 생각에 하나도 안 아쉬워졌다.


“자꾸 무서운 꿈 꿔서…. 이제 즐거운 생각하자며 붙여 놓은 거거든?”


말은 청산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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