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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Feb 01. 2024

인간관계라는 모험

30년 된 내 초중학교 동창 서연이. 30년이란 세월을 꾸준히 연락하며 만나온 우리 서로의 마음을 돌아보니 참 정성스럽다.


15살의 나이에 새벽마다 일어나 함께 운동을 하던 기억. 벽돌 같이 두껍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으며 서로의 소회를 나누던 기억. 함께 수학 과외받으며 공부하던 기억.


그때 당시 서연이는 남달랐다. 다 비슷비슷한 생각이 가득했던 아이들 속에서 독특한 생각, 색깔이 분명한 생각을 한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부모님께서 서연이를 바른 가치관을 가진 건강한 소녀로 잘 키우셨던 거 같다. 그리고 서연 부모님의 가치관은 나에게까지 흘러 한참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에 나의 정체성 형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서연과 나는 42년의 삶을 살아오며 여러 풍지풍파를 겪었다. 모든 이의 삶이 그러하듯. 우린 삶을 살아가며 때론 서로에게 뜨겁고, 때론 서로에게 침묵하며  가까운 듯 먼 듯 지냈다. 단, 서로가 가장 어려운 순간은 아무 조건 없이 꼭 함께 했던 것 같다.


“엄마가 곧 돌아가실 거 같아.”

엄마 돌아가시기 하루 전 나의 전화를 받았던 서연은 엄마가 임종하시던 밤,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나에게 왔다. 당연하단 마음으로.


아픔의 시간조차 속절없이 흐르고 우린 다음 겨울을 맞았다. 1살 더 늙은 모습으로. 터질 듯 빵빵했던 볼살이 줄어들고 그 사이에 점점 주름이 도드라지는 모습을 우리는 오랜 세월 서로의 눈에 담았다. 내 앞의 서연은 초등학교 때의 얼굴과 42살의 얼굴을 동시에 담은, 꽤나 묘한 모습이다. 서연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속 영사기는 지난 세월을 하염없이 돌린다. 그리고 이런 자막이 깔린다.


“결국 다 지나가리라.”


우린 서로의 삶으로 증명했다. 짝사랑 오빠에게 고백을 받아 팡파레가 울리던 서연의 반짝이던 날도, 엄마가 돌아가셔서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던 나의 빛바랜 날도 모두 손바닥 위 모래알처럼 사이사이 빠져나가버렸단 걸. 그러니 이제 우리 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찾아온다 해도 크게 당황하지는 말자고. 눈을 꼭 감고 숫자를 세며 이 또한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하자고.


이제는 곁에 남은 사람에게 그저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해야 한다는 걸 아는 나이. 30년이란 세월 동안 서로의 가장 밑바닥 탐험까지 마친 나의 친구가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10대의 나는 정말 별로인 인간이었다는 걸 알기에 더 그렇다. 아직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었던 서로에게 넌덜머리가 난 순간이 많았음도 안다. 어제는 우리 정말 최악이지 않았니 하며 친구와 지난날의 잘못을 함께 돌아보며 웃었다. 내가 괜찮은 인간이라 곁에 남은 것이 아니라 그저 친구가 인내해 준 것이기에 남은 거라는 것도.


어제 친구가 밤에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함께 늙어가는 것, 이제는 더 많아진 가족들과 만나 정신없이 보내는 이 순간조차 모두 좋다.”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반복하여 겪으며, 그저 건강히  살아서 연락하는 날들이 고맙다. 돌아다닐 수 있는 건강과 밥을 사줄 수 있는 돈마저도.


만나왔던 관계들에게 고맙고, 앞으로 만날 새로운 인연에게는 더욱더 베풀고 인내하며 관계를 맺어가야지 다짐한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실수하고 서투른, 늙어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하는 사람들이므로.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상처 주었는지도 잘 모르는 채 하루를 살아가는 우매한 사람이므로.


서연이와의 날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그 애가 내게 베풀었던 모든 것들을 교과서 삼아 다음의 인연을 준비한다. 5년 만에 새로 옮기게 된 새 학교에서의 생활이 떨리지만, 또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인간관계에서 완전한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실컷 엎어졌다가 무릎을 다시 털 것이기에.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새로운 좋은 이를 만나는 모험이 더 끌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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