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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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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n 29. 2024

제 감정의 주인은 전데요?

6월 29일 감사일기


1. 토요돌봄 강사님이 못 오셔서 아이들과 부루마블 게임을 함께 했다. 사람이 많아서 팀을 짜서 했는데, 내 짝은 나와 자주 투닥거리는 소연이다. 소연이는 나를 놀리고, 나도 소연이를 놀리며 맨날 붙기만 하면 투닥거리는 우리인데, 실제로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은 편이다. 소연이는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열심히 돈을 까먹고, 나는 야금야금 모아 땅과 건물을 샀다. 처음에는 약세였던 우리 팀이 마지막에는 1등과 비등비등한 2등으로 경기를 끝냈다. 서로 투닥거리기는 했지만, 소연이가 우리 팀이 돈이 없을 때마다 ‘어머나 이만큼이나 있네?’하면서 긍정적인 농담을 해주어 끝까지 즐겁게 경기를 했다. 토요일에 학교 오는 일은 항상 힘들게 느껴진다. 미래를 위해 이 업무를 선택했지만, 매주 토요일이 올 때마다 한숨을 푹 쉬고 학교에 가곤 한다. 이게 맞는 일인가. 자주 상념에 빠진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 아침에 집에서 늦잠을 자거나 가벼이 보냈을 시간에 학교에 와서 이렇게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일은 얼마나 특별한 일인가.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내가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 놓아 본다. 곧 행복해진다. 내 몸 하나 편안하려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좀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 기여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보려 한다.


2. 다음 약속까지 시간이 붕 떠서 무엇을 해볼까 고민했다 .역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읽고, 글 쓰는 일. 오늘은 스타벅스를 벗어나고 싶어 내가 애정하는 카페로 왔다. 우리집에서 멀긴 하지만, 오늘은 충분히 갈 시간이 된다. 오래도록 먹고 싶던 아이스 크림더치를 시켜 한 모금 먹는 순간 내 안에서 작은 천국이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하다. 오늘은 벌써 2번의 행복을 느꼈다. 이미 성공적인 하루이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하나, 블루투스 키보드. 트렁크에 늘 상비해두는(?) 키보드만 홀랑 꺼내 카페에 왔다. 노트북은 거추장스러워서 키보드만으로 글 쓰는 걸 가장 좋아한다. 아이폰 메모장은 나의 가장 좋은 원고지이다. 심지어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잘 되니 내 글이 날라갈 염려 따윈하지 않아도 된다. 메모장을 켜고 타닥타닥 경쾌한 리듬으로 키보드를 친다. 대화와 음악으로 가득찬 카페에 타닥타닥 나의 또다른 소리를 보탠다. 글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에 감사하며.


3. 나의 영원한 사랑 핑크. 지금 내가 치고 있는 키보드도 핑크이고, 나의 빗도 핑크, 나의 가방도 체크 핑크 에코백이다. 심지어 지금은 손톱도 핫핑크색이다. 색깔이 튀면 피곤해지는 생활용품을 빼고는 내 선택은 대부분 핑크색이다. 그 사랑스러움을 소유하고 싶다. 핑크가 세상을 구원한다, 적어도 나의 세상만은.


4. 어젯밤부터 서진이네2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했다. 나는 자극이 없는 잔잔한 영상을 좋아하는데, 나영석 피디가 만드는 대부분의 예능이 그렇다. 아이슬란드에서 꼬리곰탕을 파는 내용이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나같은 사람들의 수요에 맞추어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게 감사하다.


5. 며칠 전, 다음 날 있을 과학실험준비물 생물류를 급하게 구입해야 해서 근무 시간 중 외출을 해야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을 떨었다면 저녁에 마트 갈 때 챙겨 샀으면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급하게 준비를 해야 해서 아쉬웠다. 교감선생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외출을 신청했는데, 나와 대화하시던 교감선생님이 왜그렇게 미안해하냐고 하셨다. 나는 며칠 전부터 준비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어 지금 외출해야 해서 민망한 마음이라 대답했다. 교감선생님은 당당하게 살지, 왜 그리 미안한 게 많은 거냐 했다. 그런 대화가 좀 길게 이어졌는데, 도리어 기분이 나빠졌다. 이건 내가 가진 성격이고 성향인 것이다. 남들보다 더 미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남들에 비해 덜 미안하게 느끼는 부분도 있다. 왜 내 감정까지 그분의 조언을 들어야 하는 걸까. 더군다나 대화의 분위기나 과정 자체가 정말 별로였다. 내 감정은 내 거야. 당신이 뭔데 나를 판단해.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음 속에 강한 반감이 생겼다. 그를 미워하지 않되 내 감정에 대해서는 내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 기도했다. 시간이 지나니 미운 감정은 사그라들었다.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었을 때 쭈그러드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존중하고 그를 미워하지 않는 마음을 주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끔씩 다가오는 기분 나쁜 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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