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의 감사일기
감사일기는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계수하는 시간이다. 하루 동안 내게 떨어진 만나와 메추라기를 계수하며,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삶인지를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다. 내가 가장 회복해야 할 능력은 받은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내 삶을 은혜 아래 비추어 보는 이 시간. 방황하더라도 다시금 본질로 돌아올 수 있는 건 매일 아침마다 듣는 김동호 목사님의 큐티 설교와 틈날 때마다 쓰는 감사일기이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 매일 지키려 했던 이 루틴을 앞으로도 쭉 이어나가며, 내 신앙의 본질에 대해 늘 생각하고 싶다.
1. 돌봄 업무를 하기가 너무 싫어서 매일 이 부분에 대해 기도하고 있는데, 최근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언젠가 이 시간이 나에게 분명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돌봄 업무는 매우 거친 풍랑 속에 있다. 학교 업무 중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업무이다. 나라에서도 저출산으로 인해 계속 신경 쓰고 있는 업무이다. 나중에 관리자로 일해야 할 때 지금 내가 온몸으로 겪고 있는 이 풍랑이 학교 업무를 총괄적으로 파악해나가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생각이 오늘의 고단함을 이겨내게 한다. 그리고 이 교사 일이 아니라 해도 다른 직업을 갖는다 해도 지금 내가 힘들게 배웠던 모든 기술들은 도움이 될 것이다.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조금 더 실력을 쌓아 둔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나는 겨울을 위해 양식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하다.
2. 지역화 교과서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되었다. 노동에 비해 수당이 얼마되지 않고, 교과서 출간물을 끊임 없이 평가 받는 작업이다 보니 많은 교사들이 기피하는 업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 업무를 이어 한다. 6년 정도 이 작업을 한 것 같다. 이제는 이 업무의 경력자(?)가 되어 신규 업무자들을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수당과 힘듦을 다 떠나서 아이디어가 교과서라는 물성을 가진 존재로 나오는 과정, 교과서의 구성 체계를 몸으로 익히는 것, 한 지역 주민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데에 내가 일조하고 있다는 가치. 그런 것들이 나를 움직인다. 앞으로도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나를 움직이는 것은 돈과 일의 힘듦보다 내가 얼마나 배울 수 있는 것인가, 멀리 볼 때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를 더 중심적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도하며 또 이 귀한 작업을 이어 나가본다.
3. 오늘은 비가 많이 오고, 생기부 작업이 밀려 있어서 출장을 매우 가기 싫었다. 그래도 성실함을 부여 잡고 간 출장에서 만난 윤교장선생님께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다. 내가 평소 고민해왔던 것을 속시원히 들었다고나 할까? 솔직하며 이런 저런 고생을 많이 해본 경험이 있으셔서 내가 가진 고민에 대해서 충분히 대답하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분이었다. 그런 분과 우연히 만나 속시원한 대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좀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4.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된 장학사님께서 수더분한 성격이라 좋다. 좀 더 재밌게 이야기하면 아줌마 같은 성격이라고 할까? 직장인으로서의 장학사님 느낌보다 넉넉한 품성을 가진 학년 부장님의 느낌이 더 나시는 분이었다. 이런 분하고 1년 일할 수 있어 참 좋다. 까칠한 분과 일해본 경험이 많아서 더 감사한 거 같다. 힘든 기억은 지금의 감사를 더욱 깊게 느끼게 한다. 모든 것이 감사한 이유이다.
5. 해야 할 공부도 많고, 해내야 할 업무도 많다. 그래도 40대 초반이면 편하게 늘어지기 보다는 부지런히 머리와 몸에 공부를 쌓아가야 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하루에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부터 배우고, 그 모든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며 사유를 쌓아가자. 마음 속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 무엇보다 그 세상이 각종 경험으로 인해 다채롭고 단단했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참 좋은 마인드 같다.
6. 방과후 부서 강사님 중 한 분이 최근 몇 주간 논란이 되어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다. 대략적으로 요약하자면 담당자가 새로이 바뀌는 기간 동안 이분이 담당자의 업무 파악 부족으로 인하여 여러 문제를 일으키셨다.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교장선생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교감선생님은 계속되는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셨다. 좀 더 속 시원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교감선생님이 안계셔서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웠다. 그래도 교장선생님과 길고 깊은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학교 일인데도 내 일처럼 진심을 다해 해결하고 싶은 내 마음에 대해서 좋게 보시게 되었고, 나는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대범하고 명확한 분인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의 열심으로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 마음 고생을 며칠 했더니 힘들었지만, 이런 고난이 있기에 볼 수 있는 사람의 면면이 있는 것이다. 믿고 걸러야 할 사람이 생겼고, 신뢰하고 뿌리를 내릴만한 사람도 생겼다. 고난은 참말 의미있다.
7. 초중고대 동창 세영(가명)이를 늘봄 서부 권역 연수에서 만났다. 권역별 연수이기에 다른 지역 담당자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로 육아 하느라 얼굴 안본 지가 1년이 넘은 내 친구. 서로 봇물 터지듯 얘기하느라 2시간은 족히 걸렸다. 가족과 같이 나의 모든 것을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정말 새삼스레 감사하게 느껴졌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해줘서 정말 고맙다, 세영아. 8월 밴드 공연 일정에 맞추어 지역 펜션을 예약했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공연을 보여주고 같이 숙박도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이다. 어제 만나서 감사하고, 8월에 또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
8. 학교에 빌런이 한 명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신영(가명)샘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나와 신영샘 모두 비슷한 일을 자주 당해서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 이해한다. 어쩌면 이 학교의 모든 사람이 그분과 살며 똑같이 받는 스트레스일텐데, 나는 그런 스트레스를 투명하게 드러내고도 뒷 걱정을 안해도 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른 이들과는 깊이 친하지 않고, 또 비밀을 얼마나 지켜줄지도 모르는 터라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아무리 우리가 표현해도 바뀌지 않는 그분의 꿋꿋함을 개탄하며. 어쩌면 빌런이 있어서 더 친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신영샘의 존재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