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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11. 2024

우정은 꼭 수영 같아

7월 11일의 감사 일기

1. 아이를 미술 학원에 보내는 날이면 내게 주어진 2시간 동안 편안히 앉아 책 읽거나 글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다 뒤로 하고 무조건 걸었다. 최근 점점 약해지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밤 9~10시가 되면 모든 체력이 소진 되어 손가락 하나 들 힘도 없는데, 자기 직전까지 엄마와 뭐든 하고 싶어하는 호두를 맞춰주느라 힘겨웠다. 시간이 늘 없지만, 앞으로는 작은 시간이라도 나면 꼭 운동을 하자 마음 먹었다. 오늘은 우리 동네를 크게 돌며 걸었다. 여러 가지 운동이 있지만, 내 성향과 가장 잘 맞는 운동은 걷기이다. 늘 걷기가 고픈데, 오늘은 부지런히 걸으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어 감사하다.


2. H선생님과 나는 성향이 잘 맞지 않는다. 미안하게 부탁해야 할 일을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는 듯이 말하는 H샘을 보며 기분이 나빴다. 내가 전담이고, 그 시간에 딱 마침 시간이 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지만, 그래도 나에게 정중히 부탁하는 것이 예의 같다. 어찌되었거나 H선생님 학급의 문제를 내가 도와야 하는 것이니. 기분이 나빴으나 이건 성향의 문제라 생각하며 넘겼다. 하나 하나 꼽자면 그녀에게 앞으로도 화날 일이 무궁무진하게 샐겨날테니. 너는 나와 다르지. 나도 너와 달라. 그냥 그렇게 다름이라 여기며, 굳이 친해지지도, 굳이 배척하지도 않은 채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며 물처럼 흘러가보련다.


3. 어제 내가 근무하는 교실에 생쥐가 나타나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주무관님이 잡으러 와주셨는데 대체 어디 숨었나 나갈 구멍도 없는데 잡히지 않는다. 무섭고 싫어서 출근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주무관님이 미리 깔아둔 끈끈이에 오늘 이른 아침 잡혔단다. 주무관님이 출근하시며 발견하시고 끔찍해하는 나를 위해 미리 치워주셨다.


60대 가량의 남자인 주무관님은 말투가 무뚝뚝하여 괜스레 대하기 어려웠는데, 이 일을 겪으니 어찌 감사한지 모르겠다. 주무관님께 감사하며 살라고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쥐가 나타났다는 말에 자기도 무서워서 잡지는 못하지만 쫓아는 내주겠다며 부르라 말하던 J샘의 마음도 무척 감동이었다. 저녁에 따로 전화해 걱정해주던 Y샘도…. 성별이 달라 나와 늘 데면데면하고 서로 대화도 없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늘 가장 먼저 발 벗고 달려오는 K샘도 든든하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동료들이 많아 행복하다.


지난 학교에서 5년을 지내며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깊은 관계 속에 안정감을 느끼며 살다가 새 학교에 오니 왠지 삭막하여 어려웠다. 무리하게 친해지려는 노력도 잠시 해봤으나 원하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아 실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모든 노력을 내려놓고 그냥 내 할일만 성실히 했는데, 차츰차츰 스며드는 우정들이 조금씩 느껴진다. 신기하다. 굳이 많은 말과 행동이 오가지 않아도 조금씩 우정의 시간이 낙엽처럼 쌓여 간다는 게 놀랍다. 어쩌면 우정은 수영 같은 게 아닐까. 모든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 순간 물처럼 나를 감싸는 것.


감각으로 느껴지는 이 우정의 순간들에 새롭게 감사하다.


4.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라인이 예쁜 머메이드 라인의 가벼운 롱 블랙 스커트, 새빨간 크롭 티셔츠. 오늘 내가 입은 옷이다. 24년도의 여름, 내가 애정하는 코디이다. 숱한 실패 위에 점점 취향이라는 꽃이 핀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5. 유튜브에서 마음에 쏙 드는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했다. 감각적인데 부드러웠다. 오후 내내 들으며 힘겨운 생기부 작성 시간을 버텼다. 감사하다.


6.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라는 문장을 읽고 틈이 날 때 말씀을 읽었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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