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는 걸 무서워한다.
용감한듯 연기하지만,
사실 겁이 많은 겁보이다.
내가 살아야 했던 세상은
늘 두 주먹을 꼭 쥐고
형형한 눈으로 노려보아야 했던 세상.
수십년이 지나서야
나는 손에 힘을 빼고 풀린 눈으로
있는대로 겁을 집어 먹은 채 살아간다.
모든 감각이 예민한 나는
작은 움직임, 말소리, 분위기의 변화도
금세 눈치채기에
곤두선 미어캣처럼
털을 곤두세우기 쉽상이다.
내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
“괜찮아, 못해도 돼.”
“괜찮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야. 울고 싶으면 울어.”
겁을 집어먹어도 되고,
잔뜩 무서워해도 된다고.
다만 무서울 때는 꼭 기도하라고.
누군가 나를 전심으로 지켜준다는 거 하나만
꼭 붙잡으라 말해준다.
감정은 자유롭게,
뒷배는 든든하게.
그렇게 살아보지 못했고,
겁쟁이로 살아도 괜찮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기에
내 아이에게는
겁쟁이로 살 자유를 누리도록 하고 싶다.
무서운 건 그냥 무서운 거니까.
눈 감는 걸 무서워 하는지라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자꾸만 눈을 감아본다.
어쩌면 기도할 때 눈을 감는 것은
어둠 속에서
오직 그분의 존재만 감각하라는 의미일까?
눈을 감고 기도한다.
언제나 내 곁에 계시다는 걸 느끼게 해주세요.
안방 침대에 누워 있으면
저 멀리 빨간 십자가가 늘 같은 자리에 있다.
10년이 지나도록 계속 같은 자리에 있는 십자가.
그 십자가를 보며 자주 기도하곤 한다.
하나님이 여전히 내 곁에 계시단 사실에 안도하며.
눈을 감는다.
여전히 무섭다.
기도한다.
마음이 뜨끈해진다.
하나님은
인간을 한 없이 약한 존재로 만드셨다.
바람에도 흔들리고
비에도 젖도록.
그 유약함을 자주 생각한다.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인생에 정답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나는 한참을 정답에서 벗어나
오답 투성이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이조차도 사랑스럽다 말하는
그분의 은혜에 기대어
나의 유약함을 자유롭게 내보이며 살아간다.
나는 약하고 약하다.
강한 척 하지 않고 살 수 있어 감사하다.
더 내려갈 것 없는 마음 같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