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빌런이 있습니다. 교사가 9명밖에 안 되는 학교에도 빌런은 있네요. 정말 이것은 빌런 질량 보존의 법칙.
올해 학교를 옮겼습니다. 새 학교에서의 적응이 어렵다는 글을 여러 번 썼던 기억이 나요. 딱히 모난 사람도 없는 집단에서 왜 이리 적응이 안 되지 생각했어요. 학교 분위기가 묘했거든요. 겉으로는 갈등이 없는데, 왜 그럴까. 그러다 2학기가 들어서며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분위기의 시작에는 A가 있었음을.
우리 학교의 교무부장 A. 50대 초반의 그녀는 교감 발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경에서 풍겨지지만, 전형적인 관리자 마인드의 교무부장이에요. 학교에 관리자가 3명 있는 느낌이랄까요.
3월에 저를 만난 그녀가 이상한 말을 했어요. 그때는 그게 뼈 있는 말인 줄 몰랐어요. 그저 그녀의 겸손이나 자신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기는 일 처리가 빠른 교무부장이었지?(제가 2년 동안 타학교에서 교무부장을 하다가 온 상황) 난 좀 느려. 답답할 수도 있어.”
“내가 업무 하는 모습을 볼 때 좀 답답한 면이 있지?”
아니에요, 저도 느려요, 제가 뭐라고 답답하게 느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때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A를 위로하고 싶었어요. 이외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대화가 상당히 많았던 거 같은데, 흘려 들었습니다.
새 학교의 교사 나이대가 거의 20~30대 초반이에요. 이분들은 교무부장님의 의견을 어지간하면 받아주시고, 별로 다른 의견을 안 내시더라고요. 그런 분위기 속에 40대 초반인 제가 발령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A에게 저는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조금씩 공기로 느꼈는데, 최근에는 확신으로 다가왔어요. 교무부장을 2년 동안 해서 업무의 흐름을 알고 있는 사람, 자신의 업무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사람, 뒤에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는 사람. 정치적이지 못한 저의 성격을 모르는 그녀에게 저는 위험한 반동분자 같은 이었어요. 저를 겪어보지도 않고 이미 찍은 거였죠. 지배적이고 주장이 강한 A의 입맛대로 흘러갔던 학교가 저의 등장으로 인해 쉽지 않아진 건 맞습니다. 가끔 의아한 그녀의 판단에 제가 반기를 든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 거였고, 편을 만들려 하진 않았어요. A에게는 회의 중 자꾸 다른 의견을 말하는 제가 불편했겠지만요.
그러다 A와 제가 2학기 들어 크게 부딪힌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작은 제가 '자른 페트병이 필요한 실험(저는 과학교사)'을 할 때 아이들에게 칼질을 시키고 싶지 않다는 말부터였습니다.
A: 아니, 빗소리 선생님, 아이들에게 왜 칼질을 안 시켜요?
저: 칼질해서 다치면 누구 책임인데요? 학부모가 책임지라고 하면 어떡해요? 저는 그런 상황 만들고 싶지 않아요.
A: 왜 이렇게 생각이 극단적이에요? 애들이 안 다칠 수도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칼질을 배우는 기회를 줘야죠.
B: 그런 기회는 책임질 수 있는 사람과 배워야죠. 부모가 책임질 수 있는 거니까 칼질은 집에서 배워야 한다 생각해요.
쉽게 감정적으로 변하는 저는 금세 감정에 휩싸였고, 점점 목소리가 커졌어요. 사실 속으로는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 생각하긴 했어요. A샘의 말도, 제 말도 모두 일리가 있죠.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마치 제 의견이 틀리다 말하는 그 말투에 급 발진이 되더군요.
문제는 그 뒤에 벌어졌습니다. 그동안 회의 중 가만히 있던 20, 30대 선생님 몇몇 분께서 제 편을 들으며 A가 더 당황하게 되는 상황이 생겼어요.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니 A는 자기가 그냥 한 말 가지고 뭐 그렇게 크게 반응하냐며 너스레를 떨면서 회의를 급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저도 많이 분노한 상태라 모양새가 안 좋은 거 같아서 말을 멈추었습니다. 그때부터 A와 저의 관계는 점점 더 껄끄러워졌어요.
A와 억지로 잘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교무부장인 이 학교의 팀워크를 해치고 싶지도 않아요. 다행히도 그녀의 대부분의 판단은 그리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지 않으면 넘어가되 이건 아니다 싶은 일에만 지금처럼 목소리를 내며 불편한 사람이 되려 해요. 저라도 불편해야지 한 사람 마음대로 안 흘러가니까요. 모두의 목소리가 살아 있어야지 누구 한 명의 목소리로 흘러가는 학교는 건강하지 못하다 생각이 들거든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와 잘 지내야 해 병'이 있었습니다. 모든 이의 니즈를 만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러다 마음의 병이 났어요. 그 이후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소중해도 나보다 소중할 순 없다고. 결국 내가 살아야 남도 섬길 수 있으니, 일단 나의 마음부터 귀히 대하자. 그때부터 파이터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원래 순한 애들이 화나면 더 무섭잖아요.
새 학교에서 A라는 임자를 만나며 확실히 깨달았어요. 그냥 불편한 채로 놔둬야 하는 인간관계도 있는 거구나. 나를 불편하게 생각해야 오히려 내가 편안해지는 묘한 관계도 있구나. 예전 같았으면 이 불편함이 견딜 수 없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A가 단련시켜 줘서인지 이제는 스트레스도 안 받아요. 그냥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거지, 틀린 건 아니니까. 나도 그녀에게는 빌런일 수도 있으니까.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 스텔라장의 빌런이란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에서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개, 네가 제일 미워하는 누군가는 사랑받는 누군가의 자식’이란 내용이 있어요. 노래를 듣다 무릎을 쳤어요.
“이야, 이거 완전 A인데?”
우리는 서로에게 빌런이겠죠. 예전에는 그냥 단순히 이렇게 생각했어요.
“A, 이 나쁜 년아!”
제가 그녀에게 빌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큰 반전이었습니다. 묘한 쾌감마저 줘요. 제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절망이 아니라 세상이 결코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반성이자 경계심을 주는 거죠. 저는 그 마음들이 저의 생각을 썩지 않게 한다 생각해요.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을 넘어 딱하고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마음이 바뀐 뒤부터 학교에 빠르게 적응했어요. 그동안 이상하다 느꼈던 학교 분위기의 본질을 깨달았으니까요.
빌런을 만나 고군분투하다 결국 나도 누군가에게 빌런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때론 불편한 대로 놔두어야 하는 관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은 값지고요. 추수의 계절입니다. 저는 어느 정도 제 마음의 추수를 마쳤습니다. 제 마음의 황금물결이 기특합니다. 올해도 어떤 의미로는 풍년입니다.
https://youtu.be/ghpn99s8I-U?si=9mdORLipM9Odv5m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