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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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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Nov 21. 2024

우체국과 럭키비키

11월 21일의 감사일기


# 집안일을 하다보니 또 잘 시간이 늦어졌다. 책도 읽고, 감사일기도 쓰고 자야 하는데. 하는 수 없이 자기 전 시 한 편, 한 토막 감사일기를 짧게 남기고 자야 한다. 아쉽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행위 자체가 소중한 거다.


# 아침부터 교무부장님 때문에 또 화가 났다. 무례함, 쓸데 없는 권위의식, 강약약강. 첫 번째 메시지에서는 참았고, 두 번째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너무 화가 나서 교실로 쫓아 갔다. 불 같은 분노를 잠시 보류하고 침착하게 물었다.

“공람을 시켰는데도 파일을 달라는 건 이유가 뭘까요?”

그러나 눈빛의 분노는 송곳 같이 나를 뚫고 드러났을 것이다. 그제서야 멋쩍은 듯 웃으며 한 발 빼는 그녀. 그리고 내가 가자 5분 뒤에 사과도 아닌 변명 같은 이상한 메시지를 보냈다. 비겁하다. 한 번씩 나의 성격을 알면서도 자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스리슬쩍 공격해보는 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열받지만, 가서 ‘건들지 말라고’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온 나를 대견하게 생각한다. 그래. 그렇게 치졸한 사람들 대하는 방법을 하나씩 하나씩 배워 나가는 거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 나, 칭찬해!


# 친구에게도 서운한 일이 있었으나 내 잘못도 있길래 꾹 참고 넘어갔다. 어젯밤, 오늘 아침 좀 우울했다. 교무부장님 일과 달리 친구 일은 참는다. 그건 사랑이다. 사랑은 구질구질하다. 그래도 사랑하기에 넘어가고 싶다. 아침이 지나고 기분이 나아져서 다행이다. 또 그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겨보는 거다.


# J가 만날 때마다 손에 뽀뽀를 해서 미치겠는데, 오늘은 볼에 뽀뽀를 하고 가서 내가 포효를 했다. (참고로 J는 여자 아이) 이놈의 과도한 집착과 미친 사랑을 어찌할꼬. 엄마와의 관계가 엉망인 녀석이 엄마 나이 또래인 나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깊은 안쓰러움과 정을 표현하는 나에게 집중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가끔씩 욕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6학년 담임샘께 J의 만행을 얘기했더니 “선생님이 예뻐서 좋대요.“라며 의외의 답변을 하셨다. 그 말에 욕지기가 들어간 나의 이 간사함이란….. 공부 시간에는 나에게 잘 보이려 성실히 공부하는 녀석이 기특하기도 하다. J와의 투닥투닥 하루가 또 갔다. 내일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저 하루 하루 녀석에게 내게 모인 그날그날의 빗물 같은 사랑을 전달해줄 뿐이다.


# 이 학교 1년차를 전담으로 시작했는데, 소속감이 없어 스산했던 3월과 달리 3~6학년 모두와 친하게 지내니 오히려 꼬마 친구가 더 많아 좋다. 꼬마 특파원들의 여러 제보로 학교 파악이 쉽게 끝났다. 내게 점심시간 전에 매일 메뉴를 읇어주는 녀석도 있다. 모든 상황에 그저 감사하다. 모든 건 하나님의 섭리이다.


# 어제 박연준 작가가 독립서점에 와서 작가와의 만남을 했다. 평소 박연준 작가의 글을 좋아한 나는 몇 주 전부터 신청하고 기다렸다. 2시간 30분 가량 20명 정도와 함께 뜨거웠던 만남을 마쳤다.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고마웠다.


# 학교 옮기고 처음으로 우체국에 택배를 부치러 갔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학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우체국이 있다. 맙소사… 이런 럭키비키가…!!! 손편지와 깜짝 택배를 모두 사랑하는 내게 이거슨 진정한 럭키비키다. 이제 나는 거리 제한 없이 더욱 사랑에 매진할 것이다. 전국으로 퍼질 나의 사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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