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 디저트에 커피 한 모금
오늘 아침,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선생님 중 한 분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아이들을 돌봐줘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사는 마을은 아침 일찍 비가 오고 날이 갠 상태였습니다. 바깥에 나가 뛰어 놀고 싶다는 아이들과 한껏 뛰어 놀다가 쉬는 시간에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며 핸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셨어요. 오랜만에 아이들과 땀나게 뛰어 놀아서 그런 것인지, 하늘을 디저트 삼아 바라보며 마셔서 그런 건지 커피가 참 달더군요.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나는 퇴직하고나서도 아이들을 보고 싶다. 아무래도 책과 칼럼 같은 것을 본업으로 하고, 부업으로는 글짓기 교실을 해야겠구나. 엉뚱한 대화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주제, 아무말 대잔치를 해도 까르르까르르 웃는 태도. 아이들과 교감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이른 아침의 하늘 디저트와 함께 한 커피 한 모금. bgm은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삶의 화사한 순간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것들은
"너희도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해. 12살이면 많이 컸지. 세상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자라야 하는 나이야"
몇 달 전, 화재로 에어매트에 뛰어내렸다가 튕겨져 나가 사망한 분들에 대한 뉴스를 이야기하며, 저의 안타까움과 슬픔을 아이들에게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일들에 책임감을 가지고,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하여 고민해야 한다며. 생각보다 진지하게 듣는 아이들의 눈빛에 안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현지(가명)와 교육지원청의 발명 글짓기 대회를 준비하며, 대회의 취지와 방향을 이야기해주고, 그러나 자유롭게 너의 생각을 원고지에 펼쳐오렴이라고 주문했습니다. 글짓기대회 지도 학생을 추천 받을 때, 다른 선생님께서 현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현지는요. 정말 즐거워서 쓰는 애예요. 가만히 놔두면 미친듯이 글을 써온다니까요." 신나게 타자를 두드린다면 무조건 합격. 저는 글은 즐거워서 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생각하거든요. 이 황금 같은 주말 시간에 다른 즐길 거리도 많은데, 뭐라도 쓰고 싶다며 타자를 두드리는 저와 현지는 너무 닮은 거죠. 두 도라이가 만나면 상은 둘째치고, 스파크는 제대로 튀기겠구나 싶었습니다.
과연 현지는 싱글벙글하며 글을 써왔어요. 가뜩이나 글 쓰는 거 좋아하는데, 자기 글을 계속 읽어줄 어른 친구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신이 납니까. 현지 글을 받고 읽는데, 생각보다 너무 파격적이라 당황스럽더라고요. 일단 발명 글짓기인데, 얘가 공상과학 글을 써온 거죠. 제가 생각한 발명 글짓기는 설명문인데 말이죠. 급하게 심사기준을 찾아 보았어요. 자기가 발명하고 싶은 거를 쓰라는 조건 외에는 다른 조건이 안 보이더군요. 공상과학....? 에라, 모르겠다. 그래, 그냥 가보자. 그냥 공상과학이면 현지야, 다시 해보자라며 구슬러 볼텐데, 현지의 글은 장르를 떠나 좋았어요. 왜냐하면 현지의 글은 사람을 살리는 글이었기에...
2035년, 미래의 현지는 과학자가 되었고, 예전에 과학 선생님께(저) 들은 에어매트 뉴스를 회고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을 내내 가지고 있었기에 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발명품을 만들어 내죠. 발명품은 뜨거운 반응을 얻고, 기자회견은 성공리에 끝이 납니다. 동료들이 해주는 성대한 파티를 뒤로 하고 잠이 든 현지는 다음날, 엄마의 잔소리에 깨어납니다. 엄마의 잔소리? 그렇습니다. 현지는 2023년으로 돌아간 거죠. 왜인지는 몰라요. 공상과학 소설이니께.....ㅋㅋㅋ 현지는 엄마,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미래의 자신이 연구했던 자료를 기억해내어 발명품을 만듭니다. 현지의 아이디어는 2023년에도 히트를 쳐서 절찬리에 보급이 되고 24년도에 에어매트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났을 때 아무도 죽지 않죠. 이슈화 되지 않았으니 아무도 관심 없었지만 현지는 이 화재 사건을 뉴스로 보며 미소 짓습니다. 자신이 사람을 살렸다는 걸 오로지 현지만 알죠. 현지는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발명을 하고 싶다며, 마지막을 keep going이라는 멋진 말로 마무리합니다.
너무 멋지지 않나요. 다시 써오란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어요. 저는 읽는 순간 그녀의 글에 빅팬이 되어버렸거든요. 사실 교과전담으로 지도하며 1년간 봐온 현지는 훌륭한 아이였어요. 우리가 학교 생활하며 가끔 보는 천연기념물 같은 녀석들 있잖아요. 공부 잘하는 걸 떠나서 인성이 훌륭한 친구들. 저런 애들이 진짜 공부를 잘해야 해, 그래서 사회의 보배가 되어야 해 싶은 그런 아이였어요. 글에서 현지의 성품이 묻어나지 않나요? 거짓 없이 그저 현지 같은 글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그녀의 소설은 원고지 1000자 내외라는 제한을 부숴버리는 매우 방대한 양이었어요. 현지를 지도하며, 현지의 글 중 매력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살리고, 부수적인 것들을 덜어내며, 극적인 장치들을 다시 배열하게 했어요. 퇴고, 퇴고, 퇴고. 퇴고 지옥에서 서로 지쳤지만, 그래도 다시 읽어보고, 우리 또 덜어내자며 며칠을 그 지옥에서 보냈지요.
현지의 글을 교육지원청에 내고 오는 날, 친구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나요. 현지 글을 열심히 지도했는데, 아무래도 얘 글은 금상 아니면 수상권 밖일 거 같다고. 너무 색깔이 강해서 심사위원들이 받아줄지가 관건이라고.
결과는 어땠을까요?
현지는 당당히 금상을 받았습니다. 발명을 떠나 사람을 먼저 살리고 싶었던 현지의 고운 마음을 심사위원들이 잘 읽어준 거 같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글짓기 제목을 보니 정말 기발한 발명품도 많던데, 현지의 진정성이 다른이들의 마음도 움직였다니 얼마나 벅찬지요.
금상 소식을 현지 어머니께 전하니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선생님, 현지가 평소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유심히 듣더라고요. 집에 와서도 그런 것에 대해서 저와 자주 대화하고 그래요. 선생님, 그동안 현지에게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들을까 싶어 주저했던 내용도 많은데, 현지는 다 듣고 있었더군요. 좋은 어른으로 크기 위해서 알아야 한다 싶은 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모든 것들은 일의 성패를 떠나 우리의 마음에 긍정적으로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현지와 제가 시간을 다투며 글에 대해서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 서로 점점 지쳐가면서도 놓지 았았던 좋은 글에 대한 의지들이 둘이 마음 속에 고이 남겠죠. 글보다 마음이 더 고운 현지. 현지가 좋은 글을 쓰는 데에 제가 작은 디딤돌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끔씩 녀석과 이런 저런 좋은 기회로 글을 쓰며, 졸업 전까지는 좋은 어른 친구로 옆에 남고 싶어요.
# 아름다운 삶이란 의지에 가깝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아름다운 삶이란 의지에 가깝다는 걸."
- 김민철 작가의 메르시 크루아상 책 리뷰 중에서
오늘 우연히 이 문장을 보았는데, 가슴을 훅 치고 지나가네요.
맞아요.
아름다운 삶은 의지에 가깝죠.
세상 전반이 아름답지 않은데, 뭔 놈의 아름다운 삶입니까.
그 모든 것이 신기루 같아요, 꼭.
그런데요.
그 신기루 같은 거라도 좋으니 저는 하루에 1분이라도 제 삶이 아름다웠으면 해요.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보고자 머리를 굴리고,
(머리를 선한 일에만 굴려서 악한 일에는 진짜 아둔해요. 그래서 누군가의 나쁜 행동에 곧바로 받아치는 일을 못하고 당하다가 나중에 분노하는 일이 잦음)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안목을 높이고자 여러 물건들에 관심을 갖고 사용도 해보며,
돈 안들이고도 그저 아름다운 산, 바람, 하늘, 노을 등을 원 없이 감상하고,
제가 좋아하는 마음이 고운 친구들과 바라보기만해도 마음이 찡한 메시지 나누며
그렇게 살아갑니다.
백조의 물밑 파닥거림 같아요.
그래도 꼭 하루에 몇 분, 몇 십분은 무척 아름답다 생각되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게 사람에 의해서든, 자연에 의해서든, 물건에 의해서든.
물론 사람에 의해서 아름다워지는 것이 최고이죠.
우리가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도움을 주고자 할 때,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할 수 있어요.
그래도 반드시 그 선함은 누군가의 마음에 꼭 가닿고
우리는 평생을 동행할 친구를 얻게 되죠.
그렇게 하나 둘 동행할 친구, 동행할 물건, 동행할 자연이 생기면
조금씩 조금씩 삶은 아름다움이란 큰 방향으로 무게추가 옮겨집니다.
여전히 삶은 지치고 힘이 드는데, 세상은 각박한데도요.
저는 아름다움을 믿습니다.
우리 삶은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의지를 불태웁니다.
# 시간을 가장 윤리적으로 쓰는 방법
이 또한 얼마 전 읽은 김지수 기자의 문장인데요.
시간을 가장 윤리적으로 쓰는 방법은 성실이래요.
제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윤리라는 말이 부담스럽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라는 것은 조금씩 쌓이면 꽤나 견고한 종잣돈이 된다 생각해요.
때론 내가 우직하고 성실하게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소 같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저보다 적게 일하고 매우 편안한 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마구 흔들리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장이 제 마음을 도끼처럼 내리칠 때면
바로 정신을 차려요.
내 적금 통장 속 돈보다
내 마음 통장 속 윤리가 더 내 삶을 견고하게 붙잡아 줄거라고요.
그런데 윤리라는 놈은 쉽게 쌓이는 놈이 아니니
하루하루씩 꼭 쌓아보자고요.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힘이 돼요.
김지수 기자의 문장 하나만으로도
불성실의 유혹에 흔들리는 마음이 다잡아지는 걸요.
시간의 윤리, 성실. 둘다 너무 좋아하는 단어들.
바보 같아도 소 같이 사는 삶은 여전히 저에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