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마을은 향후 10년 안에 절반의 초등학교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곳입니다. 인구 절벽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이죠. 작년까지는 중규모 학교에 다니기에 이런 고민을 안 해봤는데, 올해 옮긴 학교는 학생 40여명 규모의 학교로 내년 입학생 0명의 공포에 시달리는 학교였지요.
여차 저차하여 2명의 입학생이 오기로 했지만, 학교의 안위가 여전히 걱정되었습니다. 선생님들 모두 지혜를 모아 가까운 유치원들에 학교 홍보물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유초등 이음교육을 활용하여 학교를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흐름에 의해 어쩌다 가게 된 00어린이집. 10명의 7세 아이들이 있는 자그마한 곳이었습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생활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짧게 소개해주고 나오기로 했습니다. 뭐라 말해야 하지 고민하며 들어갔는데, 저의 고민이 무색하게 아이들이 끊임 없이 손을 듭니다. 그 자그마한 머리에 아이들은 자기가 앞으로 가야할 곳에 대한 고민과 걱정, 불안,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어요. 어른들이야 이미 잘 알고 경험해봤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본 적이 있나요. 도무지 알 수 없는 곳에 이제 가야한다는데 얼마나 무섭겠어요. 순간 마음이 찡하면서 뭐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유독 앞자리에서 제 말이 끝날 때마다 계속 손을 드는 남자 아이가 눈에 띄었어요.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것이 누가봐도 개구쟁이 같더라구요. 계속 손을 드는 녀석이 웃기고 귀여워서 제가 우스개 소리로
“친구야, 너는 우리 학교 같이 작은 학교 와야겠다. 그럼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어!”
라고 말했습니다. 녀석은 그 말이 기분 좋았는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습니다.
녀석의 계속되는 질문에도 저는 성심성의껏 끝까지 대답해주었습니다. 개구쟁이라 해도 고민되는 건 고민되는 거죠. 아이의 질문은 나름대로 촌철살인 같은 것이 많았거든요.
불안해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으로 말해주었어요.
“얘들아, 걱정마. 초등학교는 즐겁고 신나는 곳이야. 너희들에게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어. 괜찮아. 잘할 수 있을 거야.”
아이들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만족하며 나오려는데, 아까 그 개구쟁이가 말을 겁니다.
“아, 나 선생님네 학교 가고 싶다. 선생님, 그럼 선생님이 1학년 선생님이에요?”
“응? 지금은 아니지만, 네가 오면 내가 1학년 선생님 해야지. 오고 싶으면 꼭 와!”
“아, 엄마한테 꼭 여기 간다 말해야지!”
귀여운 아이와의 대화에 자꾸 웃음이 나와서 어린이집을 나오는 내내 기분이 좋더군요. 좋은 기분도 잠시,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며 저는 아이와의 시간을 잊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 교감선생님께 연락이 옵니다.
“빗소리 선생님, 어떤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우리 학교에 입학하고 싶어 한다네. 어떤 선생님이 너무 좋았는데, 자기가 가면 1학년 담임선생님 해준댔다고 꼭 가고 싶대. 이거 빗소리 선생님이야?”
“뭐라고요?! 걔가 진짜 온다고요???????”
그 아이가 진짜 온답니다. 일주일이 걸린 이유는 엄마를 일주일이나 설득했기 때문이었죠. 자기는 꼭 거기 가야한다고 엄마를 계속 설득한 아이라니......! 이 녀석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네요.
저는 요즘 이 모든 일들에 사실 회의를 느끼고 있었어요. 우리 지역의 A학교는 입학 장학금 500만원을 내세워서 학생을 모집하고, B학교는 해외 수학여행으로 학생을 모집했어요. 그 외에도 C학교, D학교 등 많은 학교들이 학부모들이 혹할만한 조건을 내세웠지요.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서글펐어요.
교사와 교육과정, 학교마다의 특색을 찾아 가는 것이야 아름다운 일이지만, 돈이나 화려한 조건에 끌려 학교를 간다는 건 왠지 슬픈 일 같아서요. 정말 그런 걸로 입학생을 끌어 모아야 하는 걸까. 좋은 교육을 위한 마음을 학교와 학부모, 학생이 만날 순 없는 걸까.
그런 심란한 와중에 이런 낭만이라니요. 그 선생님네 반이 되고 싶어서 간다니...... 이 어린 낭만이 순수하고 귀엽지 않나요.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며, 허탈해하던 제게 이 낭만은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어요. 단지 선생님이 좋아서 학교를 택한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그저 고마웠어요.
비극적이게도 저는 1학년 담임은 못 합니다. 저희 딸이 입학하거든요....... 1학년은커녕 담임 선생님 부담스러우실까봐 아주아주 먼 교실을 쓰는 학년으로 희망 학년을 쓰려 고민 중입니다. 아이가 물을 때는 설마 오겠어라는 마음이었는데, 진짜 온다고 하니 비상입니다.
그래도 혼자 마음 속에 다짐했어요. 내 마음이 짙은 회색이던 날, 나에게 흰 빛을 선물해준 녀석에게 나 또한 매일 성실히 찾아가 안부를 묻는 좋은 어른 친구가 되어주겠다고요. 아이가 제게 준 첫 마음을 잊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인구 절벽과 사라져 가는 초등학교. 이 비극의 순간에도 사랑은 여전히 있습니다. 아이의 그 작은 마음이 저를 구원한 하루입니다. 저희 학교의 앞으로의 향방은 알 수 없지만, 제가 이 학교에 있고, 그 아이가 이 학교에 있는 한, 아이들에게 최선의 교육, 듬직한 사랑을 주자 다짐해봅니다. 최선을 다한 뒤의 미래는 고민하지 않기로 합니다.
어린 낭만은 소중합니다. 어딘가에 있을 어린 낭만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올해 마지막 달에 발견한 이 어린 낭만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