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에 오면 고향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사건으로 얽힌 인연 덕분에, 내게 혜화는 곧 서울이었다. 엄마가 어디 가냐 물으시면 굳이 혜화라 답하지 않고, 그냥 ‘서울에 다녀온다’고 했다. 내 마음속 서울의 중심은 줄곧 북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셈이다.
민중가요를 부르던 시위대, 죽창 끝에 매달린 오싹한 깃발, 뿌옇게 번지는 최루액과 홍염의 불빛.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혜화는 늘 혼탁하고도 에너지 넘치는 장소였다. 그때 보았던 시위대의 풍경과 지금 거리에서 마주하는 시위대의 풍경은 묘하게 다르다. 단순히 내가 나이를 먹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시대의 공기 자체가 달라진 탓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엔 혜화에서 연극을 보았고, 청년 시절엔 연극을 팔았으며, 대학 시절에는 직접 무대에 올릴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연극과는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소극장 객석에 앉았던 때가 언제인지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얼마 전, 어머니로부터 불현듯 연락이 왔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하게 되셨다는 소식이었다. 놀랍고 반가운 소식에 마음 한 켠이 잠시 설렜다. 어쩌면 나는 엄마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이후로 혜화를 찾는 일은 뜸해졌다. 동대문이나 종로에 들렀다가 식사할 목적으로 잠깐 발길을 옮기는 정도다. 혜화에는 특색 있는 음식점과 아기자기한 로컬 카페가 제법 많아 식도락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소소한 기쁨을 준다. 또 아르코 미술관 뒤편으로 낙산이 자리해 가볍게 산책을 즐기기도 좋다. 혜화는 데이트나 나들이의 ‘메인 요리’라기보다, 전채나 디저트 같은 위치에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싶다.
지난주, 아내와 나는 결혼 7주년을 기념하며 혜화를 찾았다. 평일 낮의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쓸쓸해 보였다. 문득 마음이 허전했다. 나의 고향 같은 이 거리가, 수많은 추억이 깃든 이 장소가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이라 여기고 싶지만, 묘하게 발걸음이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