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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Jun 12. 2023

“그냥 웃어. 행복한 것처럼 웃어.”

윤정은,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괜찮아. 마음 아픈 거, 정상이야. 마음이 아프다는 건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거야.”

“얼룩이… 얼룩덜룩하네요.”

“얼룩이니까 얼룩덜룩하지. 자연스러운 거야. 얼룩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일단, 이리로 따라와 봐.”


그렇지만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사랑이 남았음을 알았다. 사랑했던 기억은 힘을 잃지 않고 내 안에 반짝이며 머물러 있다. 잊지 않고 소중히 그 자리에 살게 할 테다. 생생히 살아 있는 기억은 삶에 생기를 잃은 어느 날 꺼내볼 아름다운 추억이다. 행복했던 나, 반짝이는 그때의 나 그리고 그때의 우리를 떠올리면 메마른 마음에 온기가 지펴지겠지. 이제는 정말 그와 헤어질 수 있겠다. 미움과 원망 아닌 그리움으로 간직하며.


“빨래가 젖어들수록 떠오른 추억을 보니 사랑하고 있는 그때의 내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어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만 저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기보다, 내가 나일 때 스스로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웃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그 얼룩들, 지우기 않으려고요. 아픈 기억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생각하고, 좋은 기억은 좋은 대로 생각하고. 누구 보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해 줄 거예요.”


떨리는 연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은이 말한다.


“그냥 웃어. 행복한 것처럼 웃어.”

“행복하지 않아도 웃어요?”

“그럼, 인간의 뇌는 아주 단순해. 뇌를 속이는 거지. 뇌는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을 구분하지 못한대. 가짜로 웃으면 행복한 줄 알고 좋아하는 거지. 뇌한테 농담을 하는 거야.”

“에? 뇌한테 농담을 해요?”

“한번 해봐. 농담을 들은 뇌는 너를 웃음 짓게 할 거야. 스스로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오게 되어 있지.”(84-85)


윤정은, 메리골드 마음세탁소(북로망스)


 





지난 목욜 스터디 선정 책이 <메리골드 마음세탁소>였어요. 처음 듣는 제목의 책, 도서관 검색을 했죠. 관내 13개 도서관 모두 대기 5번이었어요. 도서관에 가면 있겠지, 하고 느긋하게 있다가 대기 5번 다음도 대기 5번... 자세를 바로 세우게 되더군요.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13개 도서관이 다 대기 5번일 수 있단 말인가! 정유정도 김훈도 한강도 김애란도 백수린도 이런 적은 없었거든요. 어라, 예상 밖.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해지더군요. 그때 하필, 아니 마침 톡을 보낸 그녀에게 하소연을 했죠. 이런 책이 있는데 모두 대기 5번이라고. 사야 하나?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끝냈죠. 조금 후 톡 하나가 올라왔어요. 그녀가 카톡 선물로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보냈지 뭐예요. 아니 왜 이래? 꼭 사야 할 책 수준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기도 했고요. 사지 않고 적당히 조금 있다가 대기순서가 오면 읽음 되는 데 하는 생각이었죠. 돈을 지불하고 살 책이 아니라고 나름 판단을 하면서요.


어색한 듯 서툰 듯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익은 듯... 그런 문장, 그런 책이었어요. 뻔한 이야기, 많이 들어본 이야기, 그런 문장들이 수두룩 모였는데 마음이 이끌리는, 나도 모르게 흡입되는 아니 몰입되는, 그러면서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고 마음이 환해지는. 살랑살랑 봄바람이 오듯 안개비에 몸이 젖듯 마음으로 파고드는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가 말씀처럼 감싸고 위로하고 품고 이끄는, 수많은 향기로운 꽃잎이 내게로 날아드는, 마음의 얼룩이 지워지는, 그런 느낌이 밀려들더라는 것이지요.


첫문장 첫문단의 어색함에 쉽게 책을 손에 들 못하다가 며칠이 지난 시점, 책을 읽기 시작했죠. 이렇게도 글을 쓰는구나,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생각하며 읽다가, 참 뻔한 이야기를 오묘하게도 늘어놓았구나 하다가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된 책. 경전처럼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책. 겨우 이따위의 책이?


 그래, 마음 세탁소는 내 안에 있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 오냐나무처럼 시크릿처럼. 이미 나도 경험했잖아? 마음으로 되뇌었죠.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환해지는, 내 안의 오물이 제거되는, 마법 같은 일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어날 것 같은 느낌. 그 스며듦이 꽃잎처럼 꽃향기처럼 퍼질즈음  저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네요. 놀랍게도요. 신기하게도요.



“행복은 내면의 빛이다. 손에 닿을 수 없는 높은 하늘이 아니라 마음의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행복은 이미 우리 마음 안에 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 이곳에 있다.” 225


 

두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할 때, 그때 내가 이를 악물고 다짐했던 것은 부정어휘를 쓰지 않는 것이었어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너무 힘들어 나를 지탱할 수 없는 날들이 많았는데 그때 저는 ‘힘들어 짜증나’ 이 두 가지를 의식적으로 말하지 않았거든요. 힘들다 짜증 난다는 어휘를 쓰면 쓰는 동시에 그 힘듦이 짜증 남이 배가 되더라고요. 대신 감사해, 고마워, 사랑해, 그 말을 많이 쓰려고 애썼던 시간이요. 의식적으로 그러며 살았어요.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런 다짐을 하면서까지 살았을까요. 젊은 부모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이 책을 읽고 다시 저는 마음을 다잡았네요. 이 나이에도요. 웃자 웃자 웃으며 살자고요. 어떤 상황에도 웃자 웃자 웃자 웃자. 웃자, 를 백만 번 쓰고 싶을 정도로요.


 “웃고 다녀, 웃어야 해. 웃어야 예뻐.”


 잘 웃던 제가 웃음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사람에 대한 상처로 감당이 되지 않았고 모두가 부정적이고 이상한 사람, 괴물로 보였었거든요. 나는 아닌데, 나를 오해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용서가 되지 않아 마음의 문을 꽉 닫고 아무에게도 웃음을 보이지 않던 시절이요. 그때 나이 드신 권사님께서, 저만 보면 웃어, 자기는 웃어야 예뻐. 그러시더라고요. 사실 그 권사님까지도 너무나 실망스러웠었거든요. 어른이 돼서 그 따위 이상한 말에 귀가 솔깃했나, 휩쓸렸나,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라고 왜 소리치지 못했을까 싶어서요. 그 정도의 품격으로 이 나이를 먹었나, 한심함과 실망스러움이 이를 데 없었거든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없이 웃으라는 말만 하던 권사님, 이 문장 속에서 권사님의 모습이 확 떠올랐어요. 지금은 저 멀고 먼 나라 하늘나라에서 웃고 계시겠죠. 잘 웃다가도 그곳에만 가면 웃음이 멈춰버렸던, 진정 많이 웃어야 할 그곳에서 웃음을 닫아버린 저. ㅠㅠ


 웃음이 사라진 공간 웃음이 사라진 마음은 폐허더군요. 거기가 교회였음에도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또 그 사람들을 보면 내 안의 상처가 들고일어나 나에게 남아있는 작은 웃음의 조각까지 모두 앗아가 버린 것만 같았던. 그 모든 것의 양약은 웃음이라는 걸 성경도 아닌 이 책에서 깊이 깨달았다면 저 사이비종교인일까요? 세월이 약이더군요. 시간이 흐르니 그 미운 사람도 불쌍하게 보이고 그 얼토당토않은 오해도 시답잖은 것들로 여겨지고요. 물론 그 안에는 나를 정화하기 위한 수많은 기도와 묵상이 뒤따랐지만요. 결국은 내가 변해야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걸 저는 체험했거든요. 매일 마음을 가다듬고 큐티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내 가슴에 들인 까닭이라고 자위하기도 하면서요.


마음 세탁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누가 내 마음을 세탁해 줄 수 있겠어요. 미움도 상처도 괴로움도 슬픔도 지운다고 지워질 수 없는 것이잖아요. 작품 속 재하 어머니 연자 씨가 그러더군요. 불행하다 느꼈던 상처를 지우고 싶던 순간이 많았지만 그날들이 있었으니 오늘이 좋은 걸 안다고요. 불행을 지우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그 순간들이 있어야 오늘의 나도 있고, 아들 재하도 있다고요. 안쓰러운 인생도 내 인생이라는 거죠. 지금 이 순간 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좋다고요. 그게 곧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세탁까진 필요 없고 다림질만 조금 해 달라고요.



실수해도 돼. 네가 잘못한 거 있음 사과하면 돼. 누가 잘못했음 사과받고 이해해 주면 되고, 회복이 안되면 안 되는 대로 받아들이면 돼. 사는 게 어떻게 언제나 완벽할 수 있겠어. 방황하고 흔들리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서고 중심 잡으려고 하고. 그러면 돼. 괜찮아.  114


인생은 초록불인 것 같아도 노란불도 들어오고 빨간불도 들어온다. 가끔 빨간불에만 정체되어 있는 듯해도 어김없이 초록불이 된다. 초록불 다음에 다시 빨간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길을 걷고 신호들이 나오면 불빛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다. 지금 내게 맞는 신호가 없다면 기다리고, 언젠가 신호가 올 때 다시 걷는 일이 아닐까. 122


마음은 꽃과 비슷하다. 보살펴주고 햇빛을 쬐어주면 지기도 하고 피기도 하고 짓무르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벌레도 생기고. 그러다 잎도 다시 피어나고 다시 꽃도 피는 존재. 아름답기도 슬프기도 한 양가적 이면이 마음인 걸까? 아름답기만 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아니, 과연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슬픔과 아픔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고 기쁨과 환희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은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슬픔과 아픔이 아름답고 기쁨과 환희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무너질까 봐, 숨기고 있는 진실인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이리 오래 살아도 모르겠는 것 투성이라니. 178


서로가 서로를 염려하는 온기로 가득 찬 이런 밤은 잠도 순하다. 골목을 환히 밝히는 은은한 달빛도 미소 짓는 밤이다. 이런 밤은 해가 비추지 않아도 낮보다 환하고 따뜻하다. 어둠 속에 있다고 꼭 어둠이 아니고 빛 속에 있다고 꼭 빛이 아니다. 어둠 속에 있어도 빛나는 게 있고, 빛 속에 있어도 어두운 게 있다. 182


빨래도 햇살과 바람이 함께 불어야 바싹 마르는데, 마음에도 온기와 찬기가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함께 오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일어난 일은 받아들여야 한다. 돌릴 수 있다면 돌리고, 돌릴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오랜 시간 도망치듯 살았던 삶에 이제 발붙일 테다. 가끔은 빨랫줄에 널려 있는 저 빨래들처럼 흔들림에 몸을 맡겨볼 테다. 비가 오면 지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햇살이 맑으면 따뜻함을 즐길 테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를 바라볼 테다. 부족하고 실수하고 방황하고 흔들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얼굴을 제대로 흘려보내는 비법이 아닐까? 243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이고, 내 선택이 옳은 것이라 잘될 것이라 믿는다면 결국 그렇게 될 거야. 말하는 대로, 믿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능력이 이미 내 안에 있어.  그냥 의심하지 말고 자신을 믿어봐.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어봐."

"그리고 기억해. 신은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을 시련이라는 포장지로 싸서 준대. 오늘 힘든 일이 있다면 그건 선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엄청난 선물의 포장지를 벗기는 중일 수도 있다는 거지." 270




 마음 세탁소 주인 지은이를 통해 마음의 얼룩을 지우고,  아픈 기억을 지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탁소 이야기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이런 판타지가 내 마음 안으로 메리골드 수만 꽃잎을 날려 보내주었네요. 세상에!  이런 책이 있었네요. 기적 같은 일이지요. “괜찮아. 마음 아픈 거, 정상이야. 마음이 아프다는 건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거야.” 마음이 아픈 건 정상이라잖아요. 최선을 다했기에 마음이 아픈 것이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아프지도 않더라는 것.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건 그것이 일이건 사람이건  최선을 다해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니 더 이상 거기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후회하거나 마음 다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런 거였어요.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이더라고요.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낳더라고요. 그러니 좋은 생각만 하며 웃어야 되겠더라고요. 하하 그저 묵묵히 안과 밖을 나만의 온도로 조율하며 살면 되는 거였더라고요. 현재의 나에게 충실하면서요. 

 마음에서 지운 얼룩 햇빛에 바싹 말리면 꽃잎이 된다네요. 마음의 모든 얼룩 바싹 말려서 꽃잎으로 날려보내요, 우리. 








*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출간 70일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다네요. 힐링 판타지 소설 결정판이라고요. 그리고 펭귄랜덤하우스 uk 최고가 (10만 달러 선인세로) 수출계약을 했다고요. 저 윤정은 작가 잘 몰라요. 그런데 이렇게 잘 아는 사람처럼 쓰고 있네요. 놀랍고도 신기해서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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