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gang Apr 26. 2024

경청




경청은 그 어떤 침묵보다 신중하고, 그 어떤 말보다 순정하다. 경청은 열중하며 인내하며 증류한다. (간혹 묵살을 예의 바르게 하기 위해서 경청하기도 한다.) 경청은 가장 열정적인 침묵이다. 누군가의 속 깊은 말 한마디에 빙그레 지어지는 미소, 이것은 경청에 대한 별미다. 붉은 것으로 가득한 식탁에 조리를 하지 않고 올리는 흰 두부와도 같다. 때로는 울음을 경청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울음을 달래주는 데에는 동질감을 드러내는 것이 최상이지만, 그저 그것을 안으로 삼키며 경청은, 울음을 고스란히 덮어쓴다. 그러나 요란한 교류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경청해 준 그 사람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다. 대꾸가 없다고 핀잔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경청에 대한 오해다. 경청은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건너고 나면, 그 어떤 유대의 표현들보다 훨씬 더 자애로운 힘을 지닌, 튼튼한 다리 하나가 너와 나의 뒤에 놓여 있다. 


<김소연, 마음 사전>


 



그 어떤 침묵보다 신중하고, 그 어떤 말보다 순정한. 가장 열정적인 침묵이 경청이란다. 


가만 생각하니 나도 극도로 말을 아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는 심도 있는 경청의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한다. 상대의 말이 너무 소중해서. 상대의 진심이 너무나 값져서. 상대의 슬픔이 너무나 깊어서 쉽게 위로의 말을 칭찬의 말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침묵한다. 쉬 전달하는 말이 너무 가벼워 그 소중한 것들이 그 값진 것들이 속 깊은 나의 진심이 하찮아질까 봐 왜곡될까 봐 두려워서이다. 침묵하는 시간은 경청하는 시간이다. ‘경청은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건너고 나면, 그 어떤 유대의 표현들보다 훨씬 더 자애로운 힘을 지닌, 튼튼한 다리 하나가 너와 나의 뒤에 놓여 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길과 길이 이어지는 다리, 생각과 생각을 연결하는 다리인 것이다. 


무심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 기다림을 두고 서운하다고 냉정하다고 정이 없다고  등을 돌린 사람들이 있다. 나의 속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했던 그들을 향하여 나의 진심은 그게 아니라고 나의 침묵의 시간은 너를 위한 기도의 시간이었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 진심까지도 왜곡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김소연의 마음 사전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래 맞아, 이거야. 내 마음도 이랬거든. 나는 경청의 시간을 갖고 있었던 거였어. 그 어떤 유대의 표현들보다 훨씬 더 자애로운 힘을 지닌, 튼튼한 다리 하나를 놓고 있는 중이었다고. *‘팥배나무와 바위 사이 꽃잎들이 내려온 길’이었다고, 꽃잎 하나가 오고 간 시간이었다고, 이제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 장석남 시 <길> 인용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