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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범근 Sep 14. 2022

콜롬비아와 '서른 즈음에'
불안이라는 이름의 '파벨라'

콜롬비아 가라오케 바에서 만난, 브라질 빈민가 출신의 여행자 이야기. 

 그날은 왠지 마음에도 구름이 낀 듯한 꿉꿉한 하루였다. 나는 싸구려 조명이 빛나는 작은 무대 위에 서서 간주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가를 향해 넓게 트인 창문으로는 검은 빛의 카리브 해에서 불어오는  후덥지근한 짠내음이 풍겨왔다. 인적 드문 가라오케 바 내부를 구슬픈 멜로디가 채워가는 동안, 나는 몇 가지 심상에 잠겨보고자 하였으나 잘 되지는 않았다. 정말이지, 요즈음 부쩍 생각을 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여간 큰 일이 아니었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가슴 속에 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쫓기듯이 노래를 시작한 탓에 음정을 불안정하게 잡아버렸다는 직감이 들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무대 앞 객석에 앉은 중년의 커플은 이젠 혀까지 섞어가며 키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차라리 잘 되었노라 생각하며 내 앞에 놓인 TV 화면에만 눈을 맞추었다. 의미가 산산이 조각났을 정도로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 노랫말을 천천히 곱씹어 볼 참이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문득 이 노래의 제목이 가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자 흘러가듯 지나가던 노래가 갑자기 너울치는 파도가 되어 한꺼번에 마음속에 밀려드는 듯 느껴졌다. 그래. 맞다. ‘서른 즈음에.’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내 얼굴과 이름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미시감(未視感)의 순간을 겪는다. 나는 그 아찔한 느낌이 좋아 가능한 한 그 순간을 자주, 오래 붙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동네까지 기어들어온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김광석의 노래를 굳이 골라 부르는 것도 그 고약한 취미의 한 방편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나를 낯설게 발견하는 일은 즐겁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 날의 그 순간은 아무래도 두려움 쪽에 마음이 더욱 기울어 있는 듯 했다. ‘서른 즈음에'. 아직은 나와 상관없다 여기며 미뤄왔던 그 말이 여행 이후에 맞닥 드려야 할 현실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는 어느덧 끝나 있었다. 중년의 커플은 아직도 정신없이 서로를 탐닉하고 있었고, 사장은 멀찍이 떨어진 바의 뒤편에서 무심한 얼굴로 맥주잔을 닦고 있었다. 하나의 작은 사건조차 되지 못하는 허무한 3분이 이미 지나버린 것이었다. 주머니 속 전자 담배를 꺼내 입에 꼬나물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눈앞에서 흩어지는 안개 구름 너머로, 누군가가 박수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


그는 브라질에서 왔다고 했다. 나이는 서른 다섯이고, 직업은 얼마 전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몇 달 전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으므로 자신을 여행자로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대충 뒤로 묶은 장발 머리는 기름기와 흙먼지에 범벅이 되어 있었고, 정돈되지 않은 수염이 지저분해보였지만 그의 눈빛만은 생기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먼저 내 국적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에서 왔노라고 내가 답하자 그는 자신이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내게 묻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물어온 것은 BTS도, 오징어게임도 아니었다. 


“He inspirado mucho por ‘Han.’”

(나는 ‘한'에게 아주 큰 감명을 받았어.)


 다행히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몇 년 전 ‘피로사회'를 출간하며 큰 주목을 받았던 철학자, ‘한병철’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병철이 남미 사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인 철학자라는 사실을 얼핏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그 이름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조금 놀랐다. 



한병철 저 '피로사회' 중에서. 사진 출처 매일경제.


나는 고등학생 시절 ‘피로사회'를 읽었던 희미한 기억을 되짚어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스페인어는 외국어였기에 서로가 가진 생각을 완전히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해를 하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겪는 정서적인 어려움에 큰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의 자살률이 왜 그렇게 높은 것이냐고 그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어떤 이유를 들어 설명을 해야 좋을지 꽤 긴 시간 동안 고심을 해야만 했다. 당장에 떠오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무엇도 완전한 대답은 될 수 없었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듣는 족족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이야기에 살을 붙여 나갔다. 우리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있었다. 


‘불안’ (Sensacion de angustia).


 물질적 상태를 웃도는, 존재 자체의 불안이 원인일 것이라고 내가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자신이 거쳐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년 시절을 ‘파벨라'에서 보냈다고 했다. ‘파벨라’란 브라질의 대도시마다 존재하는 거대한 빈민촌을 뜻하는 말이다. ‘파벨라'에서의 삶은 폭력과 빈곤으로 얼룩진 비참함, 그 자체로 알려져 있다. ‘파벨라'가 보통의 빈민촌과 달리 고유명사로 불리는 이유는 그곳에서의 삶이 특히나 혹독하기 때문이다. ‘파벨라'는 정부마저도 포기한 무법의 땅이다. 주민들은 그곳을 지배하는 마약 조직의 감시 하에서 살아가며, 조직 간의 다툼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라고 한다. 양극화가 극심한 브라질 사회의 특성상 ‘파벨라'의 주민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아 계층 이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기 때문에 ‘파벨라'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죽는 날까지 예견된 고통과 무기력을 짊어지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https://youtu.be/l-DuTnt_vyk

KBS 다큐 스페셜 "파벨라의 눈물"

 그가 ‘파벨라'를 벗어나게 된 자세한 경위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파벨라’를 탈출하기를 꿈꿔왔으며, 내가 상상하기도 힘든 분투를 겪어낸 끝에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파벨라’란 단순히 지긋지긋했던 과거의 상처만은 아닌 듯 했다. 나는 몸을 더욱 앞으로 기울여 그의 이야기를 최대한 선명하게 따라잡으려 애썼다. 


그가 묘사하는 ‘파벨라'의 삶이란 독립적인 생태계를 가진, 정글의 생리와 비슷했다. 모두가 하루 하루 ‘살아남는’ 데에 온 에너지를 쏟을 수 밖에 없고, 그 이상을 고민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자아를 가지고 가꾸는 일조차 불필요하며, 어제, 오늘, 내일의 구분이 무의미한, 문자 그대로 짐승 같은 삶이지만 그렇기에 그는 ‘파벨라’에 있을 때 몸은 불편했을지언정 마음이 무척이나 편했다고 말했다. 먹고, 자고, 싸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살필 필요가 없었으니까. 많은 이들이 ‘파벨라'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결국 그곳에 안주하거나 때론 돌아가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가 감명 깊게 보았던 브라질 영화 ‘신들의 도시' (Ciudad de deus)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그는 내가 그 영화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흐뭇해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영화 'Ciudad de deus'의 한 장면. 어린 소년이 첫 살인을 하면서 파벨라의 보스로 등극하는 장면이다. 


성장한 소년이 이끄는 갱단. 다들 앳된 소년들이다. 

‘신들의 도시'는 ‘파벨라'에서 살아가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세 세대에 걸쳐서 조망하는 영화다. 영화에서 비춰진 그대로, ‘파벨라’의 어린이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고 한다. 어떻게든 ‘파벨라’를 탈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형과, 일찍이 그런 생각 따위는 단념하고, ‘파벨라'의 왕이 되고자 마약과 범죄에 발을 들이는 부류로. 흥미로운 사실은, ‘파벨라' 마약 조직 보스의 평균 수명은 20대 중반을 넘지 못한다는데, 그만큼 그 자리를 노리는 어린 소년들이 많아 세대 교체가 빨리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에서는 ‘파벨라'를 탈출하려는 극중 인물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시련과 징벌이 주어진다. 이 또한 사실에 가깝다고 그는 말했다. ‘파벨라'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그곳을 탈출하는 것은 일생의 꿈이자 영광으로 여기지만 정작 주변의 누군가가 먼저 ‘파벨라’를 벗어나는 것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어느 ‘파벨라’ 출신의 유명인이 대단한 성취를 이루면 그 지역 주민들이 과거의 추문을 폭로한다든가, 갱단을 동원해 협박한다든가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파벨라’는 세대에 세대를 이어 더욱 강고한 성채로 변해온 것이었다. 그 즈음 얘기를 들으니 ‘파벨라'란 마치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고자 하는, 개별적인 의지를 가진 유기체 같은 존재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파벨라' 이후의 그의 삶은 행복했을까. 내가 행복에 대해 물었을 때, 그의 눈빛에 어려있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잠시 맥주로 목을 축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금융에 대해서 자문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그의 고객은 이른바 사회 지도층으로 여겨지는 이들이었는데, 덕분인지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또한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고, 아직 ‘파벨라’에 남아있던 가족들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화려했던 그 10년 동안의 기간이 가장 불행했던 시기였다고,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뭉크의 '불안'


그의 고객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젊든, 늙었든, 건강하든, 병들었든 간에 모두가 무언가에 쫓기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파벨라'의 주민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것이 없이 완벽한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아직 가지지 못한 것들을 더욱 갈망하며 스스로를 비관하는 모습이 그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그들과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하던 일을 관두고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더 이상 금융 상담업을 하지 않으며, 다시 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그럼 당신의 꿈은 무엇이냐고 내가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과 같은 삶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안정된 직장도, 명예도, 그 무엇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 행복이 있으니 아무렴 괜찮다고 말하며 그는 긴 이야기를 마침내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소화시키는 일이 오롯이 내 몫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여행 이전의 나를 지배하던 감정은 모름지기 불안이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지 못할까봐 불안했고, 평생에 걸쳐 이 불안을 떨쳐내지 못할까봐 불안했다. 물론 그 시절에도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이란 대개 타인이 원할만한 나의 모습을 뜻한다는 것을 알 만큼은 지각이 있었지만, 그 욕망을 단호히 떨쳐낼 만한 용기는 없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마저도 내가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거듭났는지, 혹은 잠시 한가로운 신선놀음을 하며 불안과 욕망을 보이지 않는 구석에 감춰두고만 있을 뿐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나는 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커다란 욕망을 아직도 가슴 속 음침한 곳에 품고 있고, 그렇기에 나이를 먹는 일을, 인생의 시간표가 남들보다 자꾸 뒤로 밀리는 일을, 그럼에도 욕망의 크기에 비해 아직 한참 부족한 내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당장 서른 다섯의 내가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는 저 방랑자의 모습이어도 좋겠는가 생각하면 울컥하니 저항감부터 드니까. 


내 방 창문으로 보이는, 강동구 명일동의 전경.
아마존에서 찍은 사진.  하늘을 덮고 있는 먹구름이 의미심장하다.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구글 지도에 들어가서 한국의 모습을 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빽빽하게 솟은 고층의 아파트들이다. 비슷한 삶의 양태가 자로 잰 듯 구획되어 있는 그 조밀한 풍경을 보면 정겹고 반가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몰려오는 먹구름을 볼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저 조막만한 창문 하나 하나에는 얼마나 많은 상흔이 묻어 있을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백색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는 얼마나 어두운 불안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을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SNS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는 채 셀 수도 없다. 복작거리는 경쟁의 이미지로 가득찬 그 세상을 내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럴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 오고, 영혼이 갉아먹히는 것 같았지만, 언제나 내 손은 페이스북을, 유튜브를, 인스타그램을 찾아 들어갔다. 문득 얼마 전, 아주 처참한 모양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어느 ‘인플루언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희미한 기억 속에서 그녀는 한껏 멋을 부린 모습으로 비싼 물건들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 아래로 수없이 달린 댓글 중에는 유독 눈에 띄는 하나가 있었다. 


“언니 그동안 저 세상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랑 같은 세상을 살고 있었네요.” 


승자도 패자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불안의 감옥. 나는 여전히 내면의 ‘파벨라'를 탈출하지 못했다. 사실 탈출을 원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여행을 사랑한다지만,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과연 무엇이었는가? 이번 여행을 하면서 만난 다양한 삶들이 나의 불안을 중화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운 고향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마냥 개운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지상에서의 천국을 찾는 일은 내가 발 딛고 선 현실과 끊임없이 불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과연 성숙한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일상 속에서는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다가 여행을 다닐 때만 여러 깨달음을 얻어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그 깨달음은 가짜 행복을 약속하는 니코틴의 환각 작용과 다를 게 무엇인가? 


나는 내 앞에 놓인, 맛없게 식어버린 맥주가 조금 남아있던 병을 깨끗하게 비워버렸다. 그리고는 전자담배를 물어 크고 깊게 한 입을 빨았다. 쌉싸름한 사과 향기의 연기가 조명을 받아 몽글거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연락처를 주고 받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하나마나한 약속을 한 뒤 우리는 헤어졌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예수를 닮은 그의 얼굴을 먼 미래에 정말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그는 자신의 행복을 좇으며 살고 있을까.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그가 떠나온 ‘파벨라’는 변함없이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을까. 노래를 한 곡 듣고 싶었지만 밖에서는 인터넷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별 수 없이 되는대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또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さすらい人の すんだ瞳に 生命が燃えているよ

방랑자의 맑은 눈동자에는 생명이 불타고 있어


心の歌を くちずさむよに 歩きつづけるだろう

마음의 노래를 읖조리듯이 계속해서 나아가겠지


泣いてるような  星のかなたに 青い小鳥が

우는 듯한 별의 저편으로 작은 파랑새가


ささきいさお - 銀河鉄道999 


https://youtu.be/noZTzR4qOSo

ささきいさお - 銀河鉄道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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