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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씀 Feb 20. 2022

언제부터 직장은 탈출해야 하는 ‘감옥’이 되었나

FOMO로 돈을 버는 사람들.

"FIRE족이 되기 위한 준비"

"N살에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었던 비밀"

"힘 안 들이고 Passive Income 창출하는 방법"

"직장을 다니면서 프로 N잡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퇴사를 위해 취준하는 MZ세대들"


요새는 이러한 타이틀을 보기만 해도

단박에 피로도가 높아진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상책인데,

이건 뭐 아무리 도망쳐도 내 ‘블랙 미러’의 세계에서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 않는 주제들이 됐다.

(해당 주제들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인류가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한 수준의

콘텐츠가 범람하는 작금의 시대에,

클릭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류의

대표적인 콘텐츠들 중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주제가 빠질 수 없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끄는 주제는

자연스레 공급 과잉으로 치닫게 되기 마련이지만,

이런 류의 콘텐츠들은 좀처럼

그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FOMO(Fear of Missing Out)를 이용하면

돈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뒤쳐지는 것을 싫어하고,

남들에게 무시받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체면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일단 당신은 달라질 수 있고,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는 마케팅만 잘하면,

그것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어도

돈이든, 시간이든, 노력이든

일단 투자를 하고 보기 때문이다.


FOMO가 한국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사교육 시장과 부동산 시장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사교육과 부동산의 실제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또한, 우리가 매일 보는 광고들은 또 어떠한가.


현재는 직장인들을 타겟한 광고들을 많이 보지만,

한 1,2년 전만 해도 내 SNS나 유튜브에는

취준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가고 싶은 기업의 현업자나 HR 관계자들의 조언을 직접 듣고 배울 수 있다는 내용의 광고들이

자주 보이고는 했다.

그들 광고 중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혐오하는 광고도 있었는데,

문제는 내용이 아닌 연출에 있었다.


“관계자”라는 사람을 몰래 촬영하는 듯한 각도에,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하고 음성변조까지 시켜

흡사 ‘그것이 알고 싶다’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고는,

요새 아무것도 모르고 자소서만 쓰고

왜 안 붙는지 모르는 애들이 너무 많다는 둥,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기업에서 솔직히 뭘 보고 뽑겠냐는 둥,

그런 사람들 이력서는 읽어 보지도 않는다는 둥…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취준생은 경제적인 여유가 부족하고,

열에 아홉은 우울함을 겪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

연약한 이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공포심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마음에 생치기까지 남기고도 남을 수준의 광고를

타게팅해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 그들도 돈이 되니까 하는 것이겠지만,

토악질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대학생 취준 시절,

나와 함께 취준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친구들은

현재 모두 어엿한 프로 N년차 직장인들이 됐다.

이미 이직을 몇 차례 성공한 친구들도 꽤 있고,

퇴직해서 개인 창업을 한 친구들도 몇 있고 말이다.


진담 반 농담 반이겠지만,

취준하던 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꽤나 자주 들렸다.

- “나를 뽑아만 주면 뼈를 묻겠다”,

- “00 회사에 갈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다”,

- “일을 시켜만 줬으면 좋겠다.”

실로 취준생의 간절함은,

취준을 경험했던 이들만 알 것이리라.


반면에 고작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직장인들의 세계는 사뭇 다르다.

간절함의 옷을 벗어던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초년생들에게도

- "퇴사하고 싶다”,

- “유튜브 언제 시작할까요”

- “난 무슨 사업하지”

등이 밈(meme), 혹은 매일 듣게 되는

일종의 주문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의 아버지 세대에 존재했던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그 자취를 감춘 지 꽤 오래되었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열심히 일해서 승진을 하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평생 빚을 갚아

어엿한 가정과 함께 자랑스러운 유주택자가 되어

노후를 준비하던 것이 인생의 바이블이었던 시대가, 그야말로 말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아마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절대 진리의 인생 공식이

처음으로 철저하게 무너진 1차 Wave는

약 25년 전의 “IMF”가 제공했을 것이고,

2차 Wave는

현재 급격하게 증가하는 1인 가구 수와

전 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한국의 저출산율 뒤에 있는

“자산 인플레이션”이 그 범인일 것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말살시킨

이 두 가지 사건은, 자세히 살펴보면

그 공포의 본질이 전혀 다르다.

IMF의 공포는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다는 것에 기인했다.

1차 웨이브 때 직장인들의 목표는

구조조정을 피해 어떻게든 회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꾸린 가족의 밥상에

음식을 올려둬야 했고,

대출을 받아 구매한 집의 이자를

다음 몇십 년 동안 갚아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이 가져온 2차 웨이브를 맞은

많은 현대 직장인들의 공포는,

나이가 50이 되어도 매일

9 to 6 직장을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5년 전 직장인들이 목숨을 걸고

반드시 지켜내야만 했던 것이,

그들 자식 세대에서는 “끔찍한 악몽”이 되었으며,

직장에 오래 남는 이들은 더 이상

“대단한 사람”이 아닌, “불쌍한 사람”

혹은 “스스로를 개척하지 않는 사람”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현대 상당수의 젊은 직장인들은

가족을 꾸릴 여유가 없다.

적어도 수도권에 사는 내 주변 직장인들은 그렇다.

여기저기서 종종 결혼 소식이 들리고는 하지만,

대부분 원래 한쪽 집안이 부유하거나,

같이 대기업을 다니는 커플들이 대부분이다.


결혼을 하더라도, (이제는 늦어진)

"결혼 적령기”에 속한 30대 초반 커플들이

그들의 직장이 있는 수도권에서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25년 전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여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퇴근하고 돌아가

마음을 달랠 가족이 있었으며,

집주인이 하루아침에 월세를 올린다거나,

2년마다 평생의 짐을 싸들고

이곳저곳 거처를 찾아 헤매야 할 일은

현시대에 비해 훨씬 드물었다.

그들이 다녔던 당시 직장의 상사나

기업문화가 아무리 끔찍했더라도,

직장은 분명 그들이 영위하는 행복을 위한

일종의 버팀목이었다.


이제는 직장인의 연봉 상승률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커녕

상승하는 인플레이션 rate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만연해진 세상이다.


과거의 기성세대들은

그들보다 어린 전혀 다른 두 세대를 묶어 아직도

(이제는 지겨울 대로 지겨워진)

‘MZ세대’라는 이름으로 지칭하며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업무 시간에 MTS로 주식을 살펴보는 김대리,

업무가 밀렸는데도 칼퇴하고

밤 새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신입사원,

이직을 1년, 2년마다 밥먹듯이 하는 주니어들, etc.


나는 나를 포함한 요즘 세대를 욕하고 싶지도,

기성세대를 탓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내가 그럴 자격이 없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만의 명확한 꿈이 있고,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서 리스크를 안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다만, 아직 딱히 꿈을 찾지 못했거나,

시기적으로 준비되지 않았거나,

혹은 회사에서 자아실현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디어는 “자신만의 꿈을 찾아가라”라는 식의

타이틀로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경제적 자유”, “20대 내 집 마련”,

“젊은 억대 자산가”와 같은 자극적인 타이틀을 달고
없었던 상대적 박탈감을 강요하거나,

현재의 삶에 안주하는 당신은 무능력하고

게으르다는 메시지를 subtle하게 담는 등,

사람들에게 너무 과도한 FOMO를

퍼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전하는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세상이 변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말에는 분명한 힘이 있고,

어떻게든 들은 이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조언은 조언일 뿐, 선택은 개인의 책임이 분명하나,

그 선택을 내렸던 당시에는 그것이 옳은 선택인지,

잘못된 선택인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는 법이다.

선택을 내린 그 인생을 오롯이 살아내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선택의 가치를 비로소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소위 말하는

경제적 자유혹은 "시간적 자유"라는 단어는,

개인적으로 “메타버스”보다도

더욱 강력한 마케팅 용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당 용어들이

다소 폭력적이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유”의 반대말은 일반적으로

“구속, 종속, 얽매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케팅하는 것처럼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들만이

그런 자유를 누린다면,

그들이 정의하는 “자유”를 누리지 않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자연스레 “구속된 사람” 들로 규정된다.


이러한 마케팅 용어로 인해  하루아침에

갑자기 “구속된 사람”으로 전락한 이들이,

“그럼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구속하는가?”라고

되물으면 내가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곧 “보이지 않는 감옥”이 되는 것이고,

나를 창살 안에 가둔,

알 수 없는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사람은 어떻게든 평생에 걸쳐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설령 그들이 말하는 “경제적 자유”를 얻어

더 많은 시간을 얻는다 하더라도,

펑펑 놀면서 살기에는 분명 내 인생이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고통이나 고뇌, 역경을 이겨내고

스스로 만족하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일’은

그것이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대 수명이 100세 이상을 바라보면서,

결국 우리는 ‘직장인’의 옷을 벗고,

저마다 자신만의 프로젝트로

‘일’을 하게 될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 프로젝트를

누군가는 10대-20대에 시작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흰머리가 가득해진

60-70대에 시작할 수도 있다.

모든 일에는 각자 저마다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 때를 놓치면 안 된다”라는 말에

어느정도 공감하면서 동시에,

반대로 그것이 아마도 역사상 가장 많이 쓰인

싸구려 마케팅 문구 중 하나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들이 “사자사자” 할 때가

그 주가의 고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경험은 데이터고,

반복(iteration)을 통해 데이터를 쌓는 것이,

문제 해결의 적중률을 높이는

아주 파워풀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삶은 모의주식이 아니며,

인생에는 A/B 테스트 따위가 없다.

평생에 걸쳐 리허설 없이

공연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 고민을 하고 준비해나가야 한다.


나는 젊은이들이 미디어에 휘둘려

끊임없는 정신적 부채에 시달리며,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충동으로

아직 때가 아닌 꽃봉이를 피워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성공하면 다행이고,

작은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큰 경험이 되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분위기에 떠밀려서

스스로가 다시 일어서기 힘든 상황을 맞이해

정작 피워야 했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이름도 모르게 져버리는 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 당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이

과연 정말 감옥인지도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좋은 경험이든 싫은 경험이든,

나는 모든 경험에서 배움이 있다고 생각하고,

미래에 더 좋은 판단을 내리기 위한

데이터 및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당연히 여러 관점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곳이라면

당장이라도 떠나는 게 맞겠다.

그러나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일을 하다보면,

분명 배우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지식이건, 프로젝트 경험이건,

인간관계 혹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이건 간에.

(누구나 과거에 신을 원망했던 순간들이

현재에 돌이켜봤을 때는 그저 감사한 일로

남는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시간을 꽤나 아까워하는 편이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배울 점을 찾거나

배울 점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투자하고 있는 시간 대비

아무래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면,

그때는 가능하면 고민없이

그 환경을 벗어나는 편이다.

-


우리는 사회나 미디어가 조장하는

"성공"에 대한 FOMO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 밟아가고 있는 발자취를

스스로가 평가절하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알맞은 타이밍과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조금 더 차가워진 머리로,

내 페이스와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들어

발생하는 클릭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막상 조급하게 내린 선택으로 펼쳐질

앞으로의 당신 인생에,

결코 책임을 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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