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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씀 May 05. 2018

사실 영어를 위한 유학은 필요없다.

돈 아깝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는 TV로

CNN과 NBC 뉴스를 즐겨보셨다.

내가 다섯 살 즈음 됐을 때, 마룻바닥을

뛰어다니다가

왠 흰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아저씨가

혀를 꼬아가며 영화에서나 볼법한 외계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비슷한 혀 꼬인 소리를 내었더니

아버지께서 크게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내 세계에 있어서, 다른 언어라는

존재의 지각은 이때가 시작이었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수학에 수학의 정석이

있었다면 영어에는 성문기본영어가 있었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have+pp, 조동사 그리고

뭐가 뭔지 모르겠는 글자들을 수학공식처럼

주문인양 달달달 밤새가며 외우던

내 목소리들이 귓가를 맴돈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필자는 주변 지인들에게 영어공부에 관한

조언 요청을 종종 받곤 한다.

영어권에서 조금 살았다는 이유로, 나 같은 놈이

그러한 질문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나 보다.

사실 나도 영어를 잘 못하는데.

맥도날드 Drive-Thru에서 버벅거리지 않고 주문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정도가 전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나마 조금 가지고 있는 것에 녹이 슬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려고 한다.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방문하다 보면,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선진국가들을 종종 보곤 한다.

언어의 본래 목적은 사람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함이지만,

우습게도 대한민국의 영어교육은 리딩과 리스닝,

문법구조에 지독하게 집중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익이라는 시험은 이제 점수가 무의미해진 시대가 와버렸고

이제서야 언어의 중요도를 알아차린 듯,

정부의 교육시스템이나 학원들이

스피킹에 슬슬 목을 매고 있으니,

어쩌면 이는 늦었음에도 다행스러운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가 사춘기 시절,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에 내가 탄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었지만, 표지판에 영어

글자들이 쓰여있는 것을 보며

내가 실로 전혀 다른 생태계에 종착했다는 점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난 한국에서 살면서 아버지에게 직접 영어를

배웠었고 어린 나이에 꽤나 혹독하게 배웠었다.

영어의 중요성을 본인께서 어렸을 적부터 느끼시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셨던 분이니,

한 세대가 지나 영어의 습득이 필연적이게

되어버린 시대에 낳은 자식에게는

오죽하셨을까 싶다.

덕분에 나는 학창 시절 영어 성적만큼은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원어민 선생님과 길거리에서 만나 대화를 하면서, 지나가는 학부모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받기도 했었다.

미국 유학을 가도, 나는 별 탈 없이

바로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나는 틀렸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선 나중에 다른 에세이에서 깊게 쓰겠지만,

나는 고등학교 입학 후 3개월 동안 학교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갑자기 멍 때리고 있던 중,

내 손에 OMR카드가 쥐어졌다.

선생님에게 "What is this?"하고 물어봤다.

선생님은 단호하게 "We are taking

a mid-term exam"이라고 했다.

중간고사를 친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다. 나는 중간고사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정도로,

한국에서 거의 항상 100점을 맞아오던

내 영어 듣기 실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OMR카드에 그림을 그리고 나왔고,

내 인생에 결코 찾아오지 않던 찍신이 강림했는지,

흰 종이와 검은색 잉크만 구분할 수 있었던

내 첫 생물학 중간고사에서 나는 60점대를 맞았다.


유학생활을 하며 직접 느꼈던

언어 습득의 순서가 있다.


Listening - Speaking - Reading - Writing


전혀 다른 언어의 단어들과 표현들이 상황 속에서 경험이 쌓이면서 그 의미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오늘 점심 뭐 먹을 거냐고 물어볼 때는

저런 소리를 내는구나'

조금씩 남들이 말하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Listening 단계이다.


다른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이 내는 소리를 흉내 내 본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쓰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문법과 실제로 저들이 쓰는 문법이 다른 것 같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이런 단어를 끼워서

써야 하나 본데? 스스로 문법을 고쳐가면서

말을 해보기 시작한다.

Speaking 단계이다.


이젠 말을 어느정도 할 수 있다.

그 말들을 글자로 보니 조금씩 이해가 가는 것 같다.

글만 읽었을 때는 뭔가 머릿속에 잘 안 들어온다.

소리 내어서 읽어본다. 이해가 조금 된다.

눈으로 읽으면서 입으로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긴다.

분명 이 문장에 모르는 단어는 없는데

문장의 뜻이 이해가 안 된다.

찾아보니 몰랐던 표현이 사용되어

전혀 다른 뜻을 의미한 것이었다.

단어와 표현들을 닥치는 대로 달달 외운다.

사람들에게 써보기 위해서.

Reading 단계이다.


이젠 말하기와 읽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다.

언어를 창작하는 말하기와

글로서 언어를 이해하는 읽기가 가능해지면서,

그 두 가지 능력을 엮어 글로써 써내면

그것이 Writing이다.

Speaking의 언어 구사능력과

Reading의 단어들이나 표현들의

사용범위에 따라서

글쓰기의 깊이가 달라지게 된다.

여기서 영어 실력은 노골적이게 판가름 나게 된다.

Writing 단계이다.


스페인어도 비슷한 방식으로 배웠었고

(영어와 흡사한 언어이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아이가 언어를 처음 습득하듯이

자연스럽게 배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계들을 거쳐서 언어를 배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역순이었다.

무엇이 중요한 부분인지를 잘 못 잡은 것인지,

아니면 성격이 급한건지.

리딩과 라이팅에만 깊은 중점을 두어

가르치지 않았던가.


2017년 EF EPI(English Proficiency Index)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80 국가 중,

대한민국은 홍콩 다음인 30위를 차지했다.

한국 다음은 나이지리아, 그 다음은 32위로 프랑스.

프랑스에서 지도만 가지고 여행을 다녔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보자면

프랑스에선 소통이 가능할 만큼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길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런 나라가 한국의 바로 다음다음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30위면 그리 나쁘지 않네. 리스트 보니까

나름 상위권 80위 나라를 추린 거 같구만'

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과연?


국가에서 영어교육에 이토록 목을 매달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매년 학원과 과외로 소비되는

영어 교육비는 천문학적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영어 교육에 이만큼의 노력과

시간과 재화를 쓰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나라의 English Proficiency가

고작 80 국가 중 중간 정도에 미치는 30위다?

30이란 숫자는 대한민국의 영어교육이

이제껏 방향성과 무엇이 중요한지 핀트를

잘 못 잡고 있었다는 것을

과감히 말해주고 있는 숫자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기지만,

적어도 영어공부에 대한 조언을 묻는 이들에게는 내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수백 번 해온 이야기다. 실제로 듣고 실천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미국 드라마, TV 쇼를 봐라.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를 떠나서, 자막과 함께 봐라.

당연히 영어 자막이지 한국어 자막은 그냥 공부가 아니라 그냥 시간을 버리겠단 거다.

보고, 듣고, 영어자막 보고, 이해 안 됐으면 돌려서 다시 보고 귀로 들릴 때까지 들어보고

모르는 표현, 이상한 단어 있으면 멈추고 찾아보고 기록하고 나중에 시간 날 때 외우고.

들으면서 이 문장을 어디다 써먹을지 미국인들과 대화하는 상상하면서 혼자 끼워 넣어 말해보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면서 입에 익혀보고."


이거만 하면 유학 갈 필요 없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유학 다녀온 사람이라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다

말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에서 10년 넘게 살고 영어로 두 문장도

제대로 뱉지 못하는 한국 학생들

수두룩하게 봐왔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환경? 중요하다.

그런데 환경은 당신이 만들 수 있다.

아니, 당신이 만드는 거다.


난 처음 미국 땅에 발을 밟은 후,

친구도 없고 할 게 없어서

하루에 멍하니 TV만 12시간을 봤다.

SpongeBob Squarepants를 논스톱으로 틀어주는 채널이 었었는데 그거만 주구장창 본 것 같다.

다른 채널들은 너무 빨리 말해서 뭐라는 지도

모르겠고, 재미도 없었으며,

표정이나 상황이 다이나믹하게 바뀌지 않아서

상황에 따라 의미를 유추하기 힘들었으니까.

영어를 공부하려고 본 게 아니었다.

그냥 할 게 없었고 심심했었다 나는.

3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른쪽 귀에서 왼쪽 귀로 언어가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모든 말이 갑자기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방금 전까지 '얄리얄리얄라셩'이라고 말하는 듯하던 선생님의 말들이 갑자기 또렷하게,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을 '귀가 뚫렸다'라고 표현한다.

그 이후로 나는 들리는 대로 몰랐던 표현들을

틈틈이 받아 적었다.

나도 저런 말들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밤마다 잠에 들기 전에 침대에서 나는 가상의 인물들을 만들고, 주제를 하나 정한 후에 토론을 열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토론,

성소수자 결혼에 대한 찬반론 등등.

학교나 뉴스에서 봤던 기사거리들을

떠올리며 틀린 문법으로

혼자 이 쪽 편을 들어 주장을 펼쳐보았다가 반대편 쪽으로 돌변해 주장을 펼쳤다.

열렬하게 주장을 펼치다가 속으로

버벅거리며 말문이 막히면

자다가 일어나서 불을 켜고 전자사전을 뒤져보았고,

막힘없이 다시 말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사회자로 돌변해 토론을 마칠 때까지 나는 잠에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미친놈같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친구 하나없이

밥을 혼자 먹던 소수인종 학생이,

축구와 마라톤, 스페인어, 수학 클럽들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들었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락밴드를 만들어

전교생 앞에서 공연도 해보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3학년 담임 영어 선생님께

'20년 교사 생활하면서 지금껏 보았던 최고의 시'였다고 극찬을 받았으며,

졸업할 때 즈음에는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학생으로서 정식 체스 클럽 팀을 창단하고,

회장을 역임했다.

운이 좋게도 졸업할 때는

2000명이 넘는 학교 전체에서

'The Best Analytical Writer'로

수상을 하기도 했으며

대학 지원을 할 때 써냈던

고등학교 성적과 에세이로,

외국인에게는 매우 인색하다는

거의 4년간의 전액 장학금을

지원했던 몇몇 큰 학교에서 받아내기도 했다.


재수없는 자랑처럼 보일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내가 유학을 해서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 말을 직접 들으면 나는 참 화가 많이 날 것 같다.

아니다. 결코 쉽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학교에는 2000명이 넘는

'원어민'들이 득실 거렸지만,

활발한 성격을 가졌었던 내게 그 누구도 먼저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그것이 미국의 문화였다.

나는 유학 첫 1년동안 인생 처음으로

우울증을 경험했었다.

나는 살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고, 매우 간절했다.

나는 SpongeBob으로 영어를 터득했고, 홀로 TV를 보면서 모르는 단어와 표현들을 적어두고 화장실을 갈 때나 점심시간에도 혼자 습관처럼 끊임없이 되뇌었으며, 잘 때는 다중인격이 되어 스스로 만든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토론을 열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내가 혼자 한 일들이었다.

사실상 한국에서 혼자 다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공부해도 써먹기가 힘들지 않느냐?

앞에서 말했듯이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다중인격이 되어 토론을 해도 영어는 성장한다.

외국인이 하는 올바른 표현을 그대로 TV쇼에서 사용해서 습득하고,

그것을 상황에 맞게 써보면서 뇌에 각인시키는 이 프로세스에,

당신 건너편에는 반드시 외국인이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정말 실전을 경험하고 싶으면, 외국인들과 언어 교환하는 어플들과 베뉴들이 넘쳐난다.

가서 웃으며 먼저 말을 걸면 그들의 문화상, 당신에게 꺼지라고 말할 외국인은 결코 없다.


언어는 쓰지 않으면 녹이 슬게 된다.

녹을 제거 하는데도 참 많은 노력이 드는데,

자신만의 언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간절하면 할 수 있다. 하긴. 간절하면

하지 못할게 무엇이 있겠냐만은.

이제는 기술의 발달로 손 끝으로 전 세계의 미디어를 손에 쥘 수 있는 세상이 왔다.

당신이 화장실을 가건, 지하철이나 버스로 통학을 하건, 차로 출퇴근을 하건

당신에겐 끊임없이 스스로를 영어에 노출시킬 방법들이 무한대로 존재한다.

굳이 노출의 환경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 큰돈을 들여가며 유학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고리타분한 세상은 끝났다.

바다건너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것은

낭비인 시대가 왔다.


당신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 환경을 build 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완벽한' 영어공부 방법을 찾기위해 사람들에게 수소문하고 있는가.

정작 실제로 공부에 매진하고

그를 실천할 '간절함'조차 없이,

괜히 허공을 맴돌며 남들에겐 귀중하게 쓰여질 수 있는 당신의 값비싼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하고 있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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