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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씀 Nov 20. 2022

조나 힐의 영화, 스터츠(Stutz)를 보고.

'강함'이란 '나약함'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

인생에 힘든 시기가 찾아올 때 마다

나는 입부터 굳게 닫았다.

마치 내 인생에서 모든 색채를 빼내어

흑백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 처럼,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무채색인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고,

생명의 소음이 전혀없는 환경에

스스로를 놓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스마트 기기가 생기기 아주 훨씬 전 부터,

나는 이미 ‘방해 금지 모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아니라,

내게는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터 나는 감정이 요동칠 때 마다

방에서 조용히 노트를 꺼내 글을 써내려 가고는 했다.

무작정 글이 써질 때도 있었지만

때로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왜 느끼고 있는 것인지부터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작은 아이였을 때도 가족이나 친구보다

노트장에 시인지 수필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썼던 이유는,

어렸을 때의 내가 이미,

남에게 내 감정을 털어놓는 행위가

내게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속의 필처럼, 나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희한하게도 형 누나 친구 동생할 것 없이

정신의 절벽에 내몰린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내게 많은 것들을 털어놓았고,

나는 그 때 마다 온 맘을 다해

그들이 제대로 설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


정신적으로 나를 돕기 보다

남을 더 돕는 일에 더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남에게 기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꽤나 많이 빼앗아가는 행위라고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는 그래서 힘든 일이 생기면

홀로 방에서 글을 써왔을 것이라 추측한다.

내 힘듦이 남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인생에 커다란 실패, 상실감,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감정을 느낄 때도,

이성적인 나의 자아는 내가 이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스스로가 불구에 가깝게 된 상태라는 것 또한

그 누구보다 잘 인지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너무 아프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내가 그대로 절망의 늪에

가라앉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 번 그 늪에

가라앉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공포의 깊이를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썼다.


가장 연약하고 나약했던 순간에,

아무리 글을 써도 마음이 나아지지 않던 시간에,

모두에게 내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때에,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던 시절에,

나는 매일매일 스스로를 위해 감사일기를 썼다.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 속에 슬픔과 끝없는 질문과

자책만이 남아있던 때에,

매일매일 오늘 하루 감사한 것 5가지를

생각해내어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는 어떻게든 살려고 했었던 것 같다.




내 고등학교 유학 시절

많은 추억이 담겨있는 배우 조나 힐은

어느새 15년이 지나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코미디 영화 속의 재밌는 캐릭터를 맡았던 그는

어느새 얼굴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품은,

그래서 더 스토리가 풍부한

멋진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15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도

그리고 나도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좀 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는 한 평생,

그 과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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