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파이브가 달려온 10년을 돌아보며 리더 3인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패파의 성장을 회고하며 앞으로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공유 경제 신드롬이 일던 2010년대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오피스 시장에도 공유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공유오피스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공유오피스가 처음 등장합니다. 뜻밖에도 글로벌 기업이 아닌 토종 브랜드 ‘패스트파이브’였죠. 패스트파이브의 등장 이후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은 성장을 거듭하는데요. 2024년 1분기 기준, 국내 공유오피스 BIG 3 브랜드의 수도권 내 전체 지점 수는 92개*에 달할 정도입니다.
*패스트파이브 44개, S사 31개, W사 17개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을 개척한 박지웅 패스트파이브 의장을 만나 컴퍼니빌더로서 패파의 지난 10년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향후 10년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백년기업 패스트파이브를 기대한다”는 박지웅 의장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주목해 주세요.
공유오피스를 국내에 처음 도입하기도 했지만, 이에 앞서 ‘컴퍼니빌딩’이라는 독특한 창업 모델도 국내에 처음 선보이셨어요.
스타트업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컴퍼니빌더(Company builder) ‘패스트트랙아시아’를 2012년 설립하고, 패스트파이브를 2015년 창업했습니다. 지난 10년은 컴퍼니빌더 모델과 공유오피스 사업이 국내 시장에서도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솔직히 컴퍼니빌더로서 첫걸음을 뗐을 때는 ‘이게 될까?’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패스트트랙아시아도, 패스트파이브도 ‘시장에서 통한다’는 걸 어느 정도 보여준 것 같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굿닥, 헬로네이처, 데이원컴퍼니(패스트캠퍼스)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을 컴퍼니빌딩 하셨는데요. 공유오피스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어서 패스트파이브를 컴퍼니빌딩 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보통 창업할 때 객관적인 조사 후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사업 아이템을 결정하기도 하고, 창업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관심도에 따라 결정하기도 하는데요. 패파는 후자에 가까워요. 당시 김대일 대표와 제가 관심을 가졌던 영역이 부동산 시장이었습니다. 모바일 앱을 통한 중개 서비스가 아닌, 순수한 실물 부동산을 다루는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부동산 업계에는 ‘결국 입지가 부동산 가치를 결정한다’는 오래된 편견이 있는데요. 당시 해외에서 각광받던 셰어하우스는 역세권이 아니더라도 공간에 콘텐츠가 있다면 수요가 따라온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를테면 한옥을 예쁘게 리모델링하거나 커뮤니티를 강화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주거 공간을 제안하는 거죠. 그런데 셰어하우스는 월세 단위가 작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운영할 게 아니라면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였어요. 셰어하우스와 유사한 구조를 오피스 시장에 접목한 비즈니스가 공유오피스였습니다. 공유오피스라면 실물 부동산을 직접 다루면서도 업계의 오래된 편견을 깨는 비즈니스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고정관념을 깨면서 성장한
패스트파이브의 10년
직접 뛰어들어보니 이전에 컴퍼니빌딩 했던 의료, 유통, 교육 분야와 오피스 시장은 무엇이 달랐나요?
창업 초반, 사업 모델에 대해 많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 패파와 다른 회사의 큰 차이점이었어요. 당시 위워크와 같은 기업이 글로벌에서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에 패파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저희 생각에는 패파가 아직 20점밖에 안 되는 듯한데도 사람들은 60~70점으로 평가해 줬죠. 어떻게 보면 이 사업 모델의 본질이나 정체성을 깊게 고민하지 않고 선발 주자를 잘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에서 패파가 글로벌 선발 주자들보다 더 잘하고, 1위로 안착하게 되면서 그제야 비로소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죠. 이 업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디를 향해야 할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의장님이 생각하는 패스트파이브 업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인프라업과 서비스업, 이렇게 두 가지 축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무실을 구할 때, 건물주에게 유형의 공간 외에 특별한 무언가를 바라지는 않아요. 반면 패파는 업무에 필요한 다양한 인프라를 제공하고, 이용하는 분들도 훌륭한 인프라를 기대합니다. 사소하게는 복합기나 인터넷을 연결하는 것부터 세미나룸, 스튜디오 대관까지 여러 인프라를 패파를 통해 쉽고 편하게 누릴 수 있죠.
서비스업은 그 연장선에 있는데요. 사무공간을 알아서 관리하고 운영해 주는 서비스가 공유오피스의 중요한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패파에 입주한 멤버사가 가장 많이 기대하는 부분도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공간만 보고 공유오피스를 이용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패파가 정수기 렌탈, 차량 리스, AWS 클라우드와 같다고 생각해요. 고객들이 직접 구축해야만 했던 오피스 이용 경험과 프로세스를 ‘클라우드화’했죠. 균일한 품질의 공간과 서비스를 고정비 부담 없이 멤버십 비용만 내면, 축소·확장·연장을 유연하게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공유’오피스라는 단어를 패파 내부에서는 쓰지 않습니다.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중개업’이 메인이라고 여겨지는데, 패파는 다른가요?
네, 패스트파이브는 중개 비즈니스를 해체하며 성장해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부동산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중개업은 정보 비대칭이 핵심인데요. 중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크게 차이 나는 점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수수료를 받는 구조예요.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정보 비대칭이 사라지면 더 편하죠.
오피스를 직접 구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저기 매물을 알아보고, 일일이 방문해 구경하고, 임차 조건을 협상하고, 인테리어부터 인터넷, 사무 가구, 복합기 등까지 세팅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어렵게 구한 사무실을 보통 2~3년만 쓰고 또 이사하죠. 그러고 이 복잡한 일들을 반복하고 돈, 시간, 노력을 낭비합니다.
패파는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대략 어떤 위치에 지점이 있고, 어떤 퀄리티의 공간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44개 지점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공간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힘들게 비교할 필요도 없죠. 고객들이 정보에 접근하기 편리하게 세팅해 둔 거예요. 즉, 패스트파이브가 중개 비즈니스를 해체했다는 말은 고객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정보 격차를 줄이면서 고객들은 불필요한 수수료를 내거나,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됐고요. 언제든지 일정한 퀄리티의 공간과 서비스를 쓸 수 있다는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됐죠. 패파의 10년은 고객들의 오피스 이용 행태를 바꾸는 10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업 중에 제일 어려운 게 고객들의 이용 행태를 바꾸는 비즈니스라고들 합니다. 고객 한 명 한 명의 인식과 행동을 바꿔나가고, 그 변화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 대세, 표준으로 자리 잡는 것은 무척 어렵죠. 그러나 어려워서 의미 있고, 힘드니까 재미있지 않나 싶습니다.
‘패파’답게 개척해 온
국내 오피스 시장의 새로운 길
미국을 중심으로 오피스 시장이 세계적 불황인데요. 그럼에도 패파가 여전히 매력적인 비즈니스라고 생각하시나요?
부동산 시장은 글로벌 경기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로컬리티가 강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금리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달라지는 현상은 세계적으로 비슷한데요. 그러나 모든 국가가 동시에 같은 문제를 겪지는 않습니다.
팬데믹 전후의 오피스 시장이 단적인 예인데요. 샌프란시스코는 공실이 어마어마하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지만 서울, 특히 강남의 오피스 공실률은 0.5%를 기록하기도 했죠. 오피스 시장은 일하는 방식이나 기업문화에 따라 나라마다 다른 양상을 띄는 거예요. 사람들의 생각보다 오피스 시장의 로컬리티는 더 강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이 어렵다고 해서 국내 시장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엇보다 패스트파이브는 한국 시장에 가장 잘 대응하며 국내 1위로 성장해 왔기도 하고요.
그렇게 패파가 성장해 온 지난 10년 동안 패파에서 의장님의 역할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패스트파이브라는 콘셉트를 시장에 증명하는 일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5~10명 사이의 모든 직원이 역할 분담 없이 모든 일을 같이했죠. 각자 1인분의 몫을 하며 계단식으로 패파를 성장시켰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러다가 지점 수가 20개를 넘어가면서부터 제 역할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마도 2020년도쯤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제가 맡은 역할은 일종의 ‘자기 부정’이었습니다. 우리가 해왔던 방식이 아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성장 그래프의 기울기를 바꾸기 위해 조직의 방향성을 한 번 비틀었죠. 그때부터 패파는 공유오피스를 넘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피스 플랫폼으로 도약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즈니스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면서 내비게이션 없이 항해하는 배처럼 이렇게도 갔다가 저렇게도 가보면서 길을 만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그동안 해왔던 대로 쭉 했다면 당연히 더 편했겠지만, 성장의 임계점을 넘어서지 못했을 겁니다.
치열했던 10년
앞으로의 10년은 할 일이 더 많을 것
패파를 성장시키고, 또 방향성을 바꾸면서 임직원과는 어떻게 소통하고 함께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직접 관여하고 책임지는 영역 안에 있는 구성원과는 다 같이 회의하는 걸 선호해요. 팀장과 같은 특정 직급만 모아놓고 회의하면 제가 A라고 얘기해도 한두 다리를 건너면 A’가 되고 때로는 B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제 생각이 모두 정답이어서 정확히 전달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생각으로 A라는 결괏값이 도출됐는지 그 맥락과 배경을 최대한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일하는 게 훨씬 도움 된다고 봐요.
그리고 한 가지 원칙이 또 있는데, 시간이 허용하는 한 저도 함께 아이디어를 내려고 합니다. 임직원들만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저는 채점만 하지 않아요. 함께 답안지를 내고 그중에 제일 괜찮아 보이는 것을 선택해서 하나씩 시도해 보죠. 이 두 가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지금보다 패파가 더 커지면 불가능해질 수도 있겠죠.
그동안 함께 만들어온 패파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 중 몇 점을 주실 건가요?
경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패스트파이브가 10년, 20년을 넘어 제가 죽은 후에도 건재하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듯한데요. 제 자식과 손주들도 어디에서나 패파 로고를 보게 되고 또 패파 로고가 걸린 건물에서 일한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 우리가 코카콜라, IBM처럼 100년이 넘어 한 사람의 인생보다도 긴 역사를 가진 기업을 ‘백년기업’이라 부르잖아요? 만약 패파가 백년기업이 된다면, 100년 중에 이제 10년 온 만큼 딱 10점을 주고 싶어요.
훗날 100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컴퍼니빌더로서 패파의 향후 10년, 어떻게 내다보시나요?
서울시 안에 있는 오피스 전체를 따져보면 천만 평 정도 된다고 하는데, 패스트파이브 44개 지점 전체를 계산하면 3만 평 규모예요. 서울시 오피스 시장의 0.3%를 차지하고 있는 거죠. 적다고 볼 수 있고 아직 갈 길이 무척 멀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지난 10년이 꽤 치열했는데, 앞으로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여겨져서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패파의 잠재고객을 저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 보는데요. 1인 프리랜서로 상징되는 고객군과 2~50명 규모의 스타트업, 그리고 100명 이상의 대규모 기업으로 나눌 수 있어요. 지난 10년 동안 패파가 주력해 온 파트는 두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나머지 두 파트를 제대로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더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셈이죠. 물론 그동안 잘 해온 2~50인 규모 기업 파트도 조금 더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
이렇게 발전하다 보면 10년 뒤, 20년 뒤에는 일하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멀티 프로덕트를 갖춘 회사로 패파가 자리매김할 테고, 패스트파이브를 쓰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아질 겁니다. 그러면 패파는 또 다음 단계로 나아갈 무한한 기회를 만들 수 있겠죠. 아직 100%가 되려면 멀었지만 그동안 패파를 이용해 주신 수많은 멤버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음 10년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오피스 시장의 표준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더 많은 관심과 채찍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패스트파이브와 함께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