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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Y Feb 13. 2019

환구단에서 만난, 미스터 션샤인의 시대

시청역 6번 출구로 나가면 서울광장을 지나 기와를 얹은 고풍스러운 문 하나가 보인다. 언뜻 봐서는 어떤 공간인지 추측하기 어렵기만 하다. 호텔이 즐비한 주변 경관과 다소 어울리지 않게 나무와 기와를 소재로 해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이곳이 바로 ‘환구단 정문’이다. 


버스정류장에서 고개만 돌리면 환구단 정문이 보인다. 


잠자던 ‘환구단 정문’ 다시 눈 뜨다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일부만 남았던 환구단은 2007년 재발견되었다. 바로 환구단의 정문이 발견된 것이다. 2007년 그린파크호텔 재개발이 단행됐는데. 당시 호텔 정문으로 사용했던 문이 ‘환구단 정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환구단 정문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9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되었다. 

‘환구단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삼문(정면으로 보아 3칸의 문)으로, 가운데는 넓고, 양 옆은 그보다 좁은 것이 특징이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맑은 마음으로 정안수를 놓고 빈다거나 서낭당 앞에서 정성스럽게 돌무더기를 쌓아 올렸다.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신성시 여기는 매개물을 가지고 하늘을 향해 비는 행위를 했고, 그 마음이 닿아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랐다. 

천하를 다 가진 듯 보이는 한 나라의 황제 역시 그랬다. 조선이라는 땅에서 ‘대한제국’이라는 새 출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황제는 ‘독립’이라는 간절한 염원을 하늘에 닿게 해야 하는 숙명을 지녀야 했다.  그렇게 도심 속 유적 '환구단'은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시대에서 왔다. 


현재 환구단은 환구단 정문, 황궁우, 석고, 삼문, 협문 등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다. 위의 사진은 황궁우.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두 시대 속 주권의 태평성대를 기원한 ‘환구단’ 


사적 제157호 ‘환구단(圜丘壇)’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황단, 원구단, 원단이라고도 한다. 

보통 하늘에 지사를 지내는 장소는 시대와 상관없이 늘 존재했으며, 비가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기우제를 지내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서울 중구의 ‘환구단’은 여느 시대와는 그 의미가 조금 남다르다. 이는 환구단의 위치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환구단은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남별궁이 있던 자리에 지어진 것으로, 덕수궁과 마주 보는 곳이다. 조선 제26대 왕 고종은 연호를 바꾸고 대한제국 제1대 황제로 즉위할 때 ‘환구단’에서 제사를 올렸다. 이때 독립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한다. 기존 환구단이 농사와 관련된 염원을 하늘에 닿게 하는 역할을 한 것과는 달리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다.      


일제강점기 일부 건축물 소실, 일부만 남아 

도편수(건축 기술자) 심의석이 설계를 맡아 1897년 건축된 환구단은 당시 여러 개의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를 올리는 지붕이 있는 원형 제단인 ‘환구단 본단’과 ‘황궁우’, 주변 시설인 ‘어재실’, ‘향대청’ ‘석고각’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경정철도호텔을 지으면서 철거가 이뤄졌다. 결국 건설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환구단 정문, 황궁우, 석고, 삼문, 협문 등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다. 

‘황궁우’는 하늘신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팔각 건물이다. 1층과 2층은 하나로 트여 있는 ‘통층’ 형식이며, 3층은 각 면에 하나씩 총 3개의 창이 있다. 

‘석고’는 돌북으로,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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