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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자스타니 Jul 05. 2024

꽃 한 송이로 기억되는 시어머니

사람이 꽃으로도 기억된다.

혼불의 강실이가 살구꽃으로, 오래전 먼 곳으로 떠난 친구가 연꽃봉오리로 기억되 듯, 누군가는 그 사람이 꽃으로 기억된다.


작년에 20년간 나의 시어머니셨던 분을 보내고 장례식 때 많이 울었다. 


어머니는 나와  잘 맞는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뭘 특별히 살갑게  잘해주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속상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뭔가 해드리면 사양하지 않고 고맙게 받으시고, 무슨 요리를 해드려도 맛있게 드셔 주셨다. 시댁 형제나 가족들을 챙기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우리 집에 오셔서도 내 살림살이에 잔소리한 적도 없으셨다. 한마디로 무심하지만 날 힘들게 하지 않는 분이셨다. 물론 나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고, 다 커서 만난 새 가족이라서 그런지 나의 원가족과는 달리 서로 선을 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생일을 따로 챙기거나 하지 않으셨지만  내게 용돈을 주셨다. 한 번은 어디서 생겼는지 내게 5만 원을 주셨다. 돈 버는 사람에겐 약소할 수도 있지만  80대 시골 할머니에겐  큰돈이었다.

"너 사고 싶은 거 사라."

말 잘 듣는 철없는 이 며느리는 살림에 그 돈을 보태는 대신 냉큼 갖고 싶었던 난초인 카틀레야 하와이언송을 샀다.

평소 난초를 살 때, 큰 건 비싸니까 대개 어린 개체를 사서 키우는 편인데, 이때는 아예 용돈 받은 거 다 여서 꽃피는 개화주로 샀다.

카틀레야 하와이언송

대륜종으로 꽃 한 송이 직경이 무려 10cm가 넘고 향도 너무 고급스럽, 개화기간도 3~4주나 되고, 색깔도 마음에 쏙 든다. 무엇보다 큰 개체로 사니까 해마다 건강하게 여러 송이를 피워주어 기분이 좋았다.


반려동물은 애교도 많고 너무 예쁘지만 그만큼 챙길 것도 많고, 사고도 많이 치고, 에너지도 많이 쓰인다. 그에 비해 반려식물은 매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적당히 물 주고 약간의 관심만 보여주면 예쁜 꽃을 피워준다.

적당한 거리두기, 이게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나에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은 시어머니와 내 난초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와이언송이 피면 제삿날보다 더 어머니 생각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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