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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Jul 10. 2023

나를 지킨 건 팔할이 검지

손가락 연민설


일곱 살이 다 되어 밤기저귀를 뗀 둘째 온이가 요즘 들어 이불에 실례하는 일이 잦다. 더운 날씨에 물 섭취량도 많고, 수박이나 멜론처럼 수분이 많은 여름 과일을 잠자리 독서 시간에 자주 먹은 탓이리라. 습한 날의 이불 빨래가 며칠 째 이어지니 세탁기와 건조기가 위 아래로 놓인 다용도실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게 되었다.

 

다용도실로 들어가는 문은 단열을 고려한 두껍고 무거운 여닫이이다. 10년 째 같은 곳에서 묵묵히 일해 온 문짝은 중력으로 조금 내려앉은 듯, 열거나 닫을 때 힘을 주어야 한다. 열 때는 어깨에 몸무게를 실어 힘껏 밀지만, 닫을 때는 손가락 끝에 긴장을 더하며 마음에 힘을 주어 지긋이 당긴다. 문을 닫는 사소한 일에 이렇게 조심하며 신중을 기하게 된 것은 작년 여름, 그 일이 생긴 이후부터다.


 1학년이던 큰 아이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셔틀을 타고 영어 학원에 갔다. 그동안 나는 빠듯하게 일을 마치고 학원 앞으로 부랴부랴 아이를 데리러 가곤 했다. 그날은 퇴근 후,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하원한 유치원생 둘째까지 데리고 큰 아이를 데리러 갔다. 몇 분 늦은 것이 화근이 되어 학원 앞은 아이를 데리러 온 차들로 붐볐고, 나는 학원 옆 상가의 주차장에 엉거주춤 임시 주차를 했다. 평소 데리러 가던 자리가 아니라, 아이가 차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밖에 나가 기다리려 차 문을 열었다. 학원생들을 데리러 온 차들로 예민한 옆 상가 주인에게 틀킬까 싶고, 차 안에서 언니를 기다리는 것이 편하다는 둘째를 두고 내리려니 맘이 급했다. 얼른 다녀와야지 라는 맘으로 허둥지둥 차에서 내렸다. 그러다 문을 열어 잡고 있는 오른손이 미처 빠지기도 전에 왼손이 차문을 세게 밀어 버렸다.


 한 사람의 두 손이 어찌 이리 박자가 안 맞는지 나조차도 당황스러운 찰나, 차문에 끼인 오른손 검지가 화끈거리며 퉁퉁 부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두려운 맘이 컸지만, 정신을 붙들고 큰 아이를 데리고 와 차 안에 태웠다. 출혈과 통증으로 운전을 하기 어려웠지만, 더 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심호흡을 하며 멀지 않은 우리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 지 간단히 설명을 하고 집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검지에 붓기와 열감이 계속 되는 걸 보니,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 것 같은데 검사와 치료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 아이들만 두고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남편에게 간단히 상황을 알리고 그가 오길 기다리는 30분 동안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내 손가락을 이래 놓은 게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 스스로가 원망스럽고 한심한 맘이 아픔보다 더 크게 밀려왔다. 눈물이 나왔다.


 다행히 문을 닫기 전 정형외과에 도착해 검사를 할 수 있었다. 손가락 끝이 여러 조각으로 골절되었다고 했다. 손가락을 고정하는 반 깁스를 하고 한 달을 지내야 한다고. 그 후 매주 손가락 상태를 살피러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는 내 손가락 뼈가 조금씩 움직였다며 핀잔을 주었고, 나는 아이 둘에 바깥일과 집안일을 모두 해야 하는 처지에 오른손 검지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한 달이 조금 지난 뒤, 그럭저럭 뼈가 붙어 깁스를 뺄 수 있었다. 그러나 검지는 깁스한 모양대로 굳어 마치 남의 손가락을 끼운 듯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수시로, 손가락을 구부리는 재활 훈련을 거듭하며 나는 또다시 찰나의 방심으로 이 고생을 하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되새김질 했다.


 몇 달이 지나, 검지 끝이 약간 휘어진 모양이지만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생활의 불편은 잊혀졌다. 그러나 차 문을 닫는 순간이면 늘, 골절되었던 그 때를 만회하려는 듯 손가락은 온 신경을 기울여 긴장을 하였다. 자동차를 타고 내릴 때 외에도, 무겁고 이음새가 단단한 문을 조작할 때에는 순식간에 손바닥에 땀이 났다. 이러한 불안은 딸들에게도 옮겨가 아이들이 차문을 닫을 때, 혹은 현관문을 닫을 때면 나는 손을 움츠렸다. 철문의 이음새들을 꼼꼼히 살피며, 혹여나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끼이지 않았는지 여러번 확인하고, 그러다 불현 듯 문 틈에 끼인 손가락을 상상해버리는 것이었다. 생활 속에서 세 여자가 두꺼운 문을 조작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고 언젠가부터 나는 문을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픔과 후회가 함께 하는 그 순간을 반복적으로 떠올렸다.


 이제 일 년이 다 되어 가니까, 그동안 조심하며 잘 지내왔으니까, 맘을 내려놓으려는 나에게 긴장과 조심을 그만 둘까 두려워하는 손가락이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는 듯 했다.

 “나 강박이 생긴 것 같아.”

 사고 후에 주의하는 마음이라기에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문득 내 걱정이 맘에서 오는 것 이라기보다는 손가락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는 비논리적인 이야기도 했다. 요즘 마음 챙김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마음 잘 돌보는 방법을 배우고 알리는데 몰두해 있는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가락 자기 연민설’을 비웃지 않고, 손가락이 스스로를 걱정하여 제 주인을 단도리 시키지 않아도 되도록 안심 시켜주자고 하였다. 손을 씻고 거울을 보고 로션을 바르는 틈틈이 손을 살피고 어루만지며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너를 잘 살피고 보호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많이 놀라고 아팠지? 이제 내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천천히 움직여 너를 지킬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 아이들까지 염려해 주는 마음도 정말 고마워. 모두가 안전하도록 세심하게 살펴볼게. 너를 보호하는 일을 잊지 않을게.”


자신의 신체부위에 말을 걸어 안심시키는 이 기이한 방법을 행동에 옮긴지 며칠이 되지 않아 내 손가락의 경고는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문을 닫을 때나 딸들이 문 닫는 것을 볼 때 주변을 살핀다. 그러나 손가락이 소스라치게 놀라 움츠러들거나, 극단적인 상황을 떠올려 버리는 것들은 모두 지난 일이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내 무심함과 서두름과 부주의가 내 딸들이나 나를 더 크게 다치게 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 때 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영감을 줄 견본 미술 작품을 만들고, 먼지를 치우고, 화장을 하고, 온 가족이 먹을 음식 재료를 다듬는 나의 손가락. 예전처럼 곧고 유연하지 않은 나의 오른쪽 검지는, 불편하고 못난 손가락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경고를 해 주고, 가족의 안전을 살피며 우리를 돌보고 먹여주는 엄마 손가락이라고.


궂은 일을 마다 않을 뿐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었던 오른손 엄마 손가락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효도하는 내가 될게요. 언젠가 예쁜 반지를 사게 되면, 그때는 언니 손가락이 아니라 엄마 손가락, 당신에게 선물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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