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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Jan 26. 2024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완전하길

애브리씽, 애브리웨어, 올 앳 원스

 딸들은 곤히 잠들고 나는 아직 깨어 있다.

고요한 밤, 나만의 시간이라는 선물 상자.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다 주연 작가가 강력 추천한 영화, ‘애브리씽, 애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찾아 열어 본다.


 미국, 도시의 빨래방 한 켠, 영수증 더미에 묻혀 남편이 건넨 말에 대꾸도 하지 않는 중년의 아시아 여성이 보인다. 이민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우주관람차를 탄 줄 알았는데, 곧 이것이 롤러코스터임을 깨닫게 된다. 엉뚱한 상상을 마구잡이로 구현해 낸 설정과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장면, 종잡을 수 없이 난잡하면서 또한 아득하게 아름다운 이야기. 겨울 방학을 하여 종일 나와 함께인 아이 곁에서 며칠간 되새김질한다. 이 영화는 ‘멀티버스(’멀티 유니버스‘의 줄임말, 다중 우주)를 종횡하며 서로를 발견해 내는 모녀의 러브스토리’다.


 잠시 떨어져 있을 때에도 늘 함께 있는 듯한, 우리 집 식구- 남편과 두 딸, 고양이들. 이들은 나의 삶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모르는 이들의 세계를 나는 얼마나 궁금해하는가. 보통으로 사랑할 때는 괜찮은데,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날엔 가만히 따져보다 서글퍼지고 만다. 곁에 있는 사람을 부지런히 살피고 더욱 사랑하는 일은 가끔 까마득하다. 너를 만나고 함께 하는 것이 나의 기꺼운 선택임을, 작은 존재들이 보잘것없는 서로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하는 일이 경이로운 일임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는가.


 서로가 없는 세계의 나를 상상해 본다. 다른 것들과 다른 곳에서 펼쳐질 내 삶은 어떨까.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함께 일어나는 다중 우주가 존재한다면 지금의 내가 이루지 못한 꿈 너머의 나, 혹은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낯설기 만한 또 다른 나도 너를 기꺼이 선택할 수 있을까? 서로의 대환장 멀티버스를 마주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나와 너를 만난 뒤에야 이 순간 곁에 있는 서로를 안아 줄 수 있는 마음. 모든 우주를 돌아서라도 너에게 잊히지 않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귀하고 안쓰럽기에 우스꽝스러운 이 영화를 보면서 그만 울컥해지고 만다.


 다른 우주 속 더욱 빛나는 나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오늘을 만드는 것은, 너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아끼는 맘으로 쓰다듬는 나라는 것을. 다른 우주 속 더욱 찬란한 네가 기꺼이 그리워할 나 자신임을 믿으며 소중한 내 몸과 맘을 다듬는다.


 머나먼 별의 구성성분을 알아내고, 인공지능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시대라지만, 세상은 오히려 의문과 골칫거리들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신선한 발상으로 가득한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사랑과 친절에서 인생의 해결법을 찾는 것이 진부하지만은 않다.  


 나는 여전히 믿고 싶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삶의 답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고.

 그래서 기대해 본다.

 오래된 믿음과 따뜻한 손길과 새삼스런 친절을 서로 나누며 모든 우주에 있는 나와 이웃들이 함께 안녕하기를.

 그리하여 다른 우주에서의 삶을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내 앞의 하루를 충만하게 채우기를.

 그렇게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완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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