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차 Mar 07. 2024

마음대로

 ‘3월 5일: 임원선거, 희망 학생은 소견발표 연습해 오기’     


 3학년이 된 첫날을 보내고 돌아온 인이의 알림장에 임원선거 예고가 적혀있다. 1학년 때부터 가벼운 도전과 잠시 간의 좌절이 반복되는 것을 보아 왔기에 큰 기대 없이, 원하면 스스로 준비하겠거니 하다 잊었다.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인이와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다 문득 생각이 나, 임원선거가 어땠는지 물어보니, 미간을 찌푸린다.     

 “어제 잊고 있다가 아침에 생각나서 준비가 좀 급하긴 했지만 씩씩하게 발표했는데 나를 뽑아준 친구가 너무 적었어요. 부반장 선거 때에는 다른 친구 썼는데 그 친구도 안 됐어. 다 내 마음대로 안 됐어!” 잔뜩 실망한 표정이 안쓰럽다가도 속상해하며 마구 뱉어낸 말이 투명하게 자기중심적이라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아랫입술이 삐죽 나와버렸다. ‘안 뽑힌 이유는, 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게 반장감이 아니라서?’라고 놀리고 싶은 걸 꾹 참고 말한다.

 “인아, 이 세상에 사람 마음만큼 얻기 어려운 게 없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큰일이 아니야.” 돈이 되게 많은 사람이 했을 법한 말 같지만 어린 시절, 슈퍼마켓에서 천 원짜리 배 하나를 선뜻 못 집던 우리 엄마가 한 말이다.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많은 문제가 결국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것임을 알게 될 때마다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그 시절 엄마가 배 한 알 못 사고 절약했던 까닭은, 나중에 돈으로 해결 안 되는-사람 문제가 나타났을 때, 얽힌 마음들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였구나.     

 

 배울 것이 많아 보이는 친구를 곁에 두고 싶은데 그 앞의 내가 초라할 때, 먼저 마음을 주었다가 준 만큼 못 돌려받게 될까 겁이 날 때, 우선 남들이 마음을 주고 싶은 내가 되어야지 마음먹었다. 남의 마음이 욕심나,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 말을 꾸며서 하다 보니, 사기 위해선 모으고, 말하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실하고 알찬 하루의 일과 안에 그렇게 남의 마음에 대한 욕심이 가득 찬 것을 느낄 때면 괴롭고 부끄러웠다. 남의 마음을 얻고 싶은 마음에 내 마음을 모두 빼앗겨 버렸다. 흔쾌히 마음을 건네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선뜻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내가 되어버렸다.     

 

 나에게도 겁 없이 마음을 건네던 시절이 있었다. 화수분처럼 퍼주다 기대치 않게 돌려받은 어느 날, 순간의 감사와 행복을 온전히 누렸다. ‘너는 지금 사랑이 아닌 공부에 집중할 때’라고 걱정하는 시선들의 틈으로 기쁨은 찬란히 빛났다. 나의 삶에서 공부할 기회보다 온전히 사랑할 기회가 귀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자격이 있거나 준비가 되어 받게 된 선물이 아니었기에 불안했지만 그것을 연료 삼아 서로의 마음에 더욱 파고들었다.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치며 나를 어른으로 키워 준 그 마음. 함께 보던 영화와 권해 주던 음악, 서로의 손에 깍지를 끼우며 새로운 세계에서 마음껏 미숙할 용기를 주고받았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지금은 온통 내가 가진 것 같은 어린 딸의 마음도 언젠가 멀어질 때가 오겠지. 그때 네 마음을 얻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지 알기 위해, 지금의 너는 얻기 힘든 마음들을 겪고 있다.     

 

 네 마음의 역사. 그 길에 상처가 두려워 팔짱 낀 인색함이 오래 머물지 않기를, 조건 없이 네게 온 마음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으로 이미 받을 자격이 충분함을 단단하게 믿을 수 있기를. 무엇보다 네 마음의 귀함을 알고 마음속 높은 꼭대기뿐 아니라 골짜기 또한 구석구석 살펴 헤아리고 다독이는 네가 되길.     

 

 마음속 가장 깊고 못난 부분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지는 어느 날에 네가 떠올릴 수 있는 내가 되길. 너의 마음을 온통 나에게 주었던 어린 날,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더 진한 향기와 완벽한 온도의 품으로 나를 기억하는 어린 너에게 감사하며 마구 퍼서 돌려줄 마음 밭을 가꾸는 내가 되길. 너에게 편지 쓰는 마음으로 시작한 글을 미래의 나에게 읽어 주며 당부한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딸의 안목을 믿고 아이가 주고받을 마음을 그저 바라보며 응원하자고. 아이가 제 마음껏 살아내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을 믿고 살피자고. 그렇게 마음대로 살며 남의 마음과도 어울리는 우리가 되자고.



작가의 이전글 벚꽃을 기다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