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차 Mar 01. 2024

벚꽃을 기다리며

나를 쓰게 하는 것

 재작년 겨울, 글쓰기 모임에 초대 받았다. 평대리에서 달책빵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였다.


 미리 책을 읽거나, 글을 써 올 필요 없이 당일 주어진 주제에 맞는(혹은 주제와 상관없이 내 머리에 떠오르는!) 글을 한시간 가량 써서 읽고 나누면 된단다.


 편도 한 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라 망설이자, 매주 평일과 주말에 한번씩 하는데 토요일에만 슬쩍 껴도 된다고 울타리를 낮춰주는 친구. 고마운 맘에, '그럼 살짝 발 담가보지 뭐', 가볍게 참여해보기로 하였다.


 다음 토요일, 남편, 아이 둘에게 세끼 밥을 해먹이고홀몸으로 나와 시동을 걸었다. 평대리로 향하는 길은 가로등도 없이 캄캄하고 고요했다. 음악을 틀어 차안을 가득 채운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 창문을 열어 밤바다가 몰고 오는 해방감과 창작에 대한 설렘을 맘껏 들이켰다. 오늘 어떤 소재로 글을 쓸까, 고민할 틈도 없이 한 주간 학교와 가정에서 있었던 일들, 그 속의 내 모습, 그것을 만든 나의 마음. 생각 조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영업을 종료한 밤의 까페. 책방과 연결된 뒷 문만은 빼꼼히 열려있었고, 그곳에서 주연, 미조, 바다와 마영. 훗날 달책빵 독립출판 2기가 될 이웃을 만났다.


 글쓰기를 흠모하며 몇십 년을 사는 동안, 쓰는 시간의 나는 너무나 정중하고 성실하여, 쓰는 손보다 먼저 어깨가 무거워지고 말았다. 오랫동안 짝사랑한 상대를 마주한 것 마냥 망설이며 골똘하다 자신감을 잃곤 했다. 나 답게 쓰고 싶어 나다운 것을 찾아 미로에 들어갔다 그만 출구를 잃길 반복했다.


 달책빵에서 마주친 이웃들의 환한 표정과 환하고 가벼운 손 끝은 가벼웠다. 편하게 써도 되는 구나!


  백 미터 달리기 시합을 하던 운동장에 알록달록 울타리가 둘러지고 비트와 위트가 어우러진 음악 속에 가볍게 몸을 흔드는 밤의 시간이 찾아온 듯. 고개를 들어 서로를 향해 미소짓다 뭔가 떠오른 듯 적어나가는 이웃들 속에 느긋해져 창가 너머 평대 바다 풍경을 바라보았다.


 주말 저녁 집안일과 육아에서 벗어나 바닷가 까페에 와 있구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순간을 즐기려 맘을 가벼이 먹으니, 남편과 딸과 고양이와 나의 이야기가 굼뜨지만 힘차게 손 끝으로 흘러나왔다. 어느새 10년 된 구형 아이패드 창은 한 편의 글로 가득찼다.


그렇게 여섯 번의 회기를 마친 날, 나의 글쓰기 동지들은 함덕의 술집에 모여 이대로 잊혀지는 우리가 되지 않도록 서로를 단도리 했다. 매주 한 편씩의 글 혹은 책 기획 성과를 공유하고, 최종적으로 4월 첫째주에 열리는 제주 북페어에서 각자가 제작한 독립출판물을 판매하기로 약속하고야 만다.


 5천원이라는 귀여운 벌칙금을 두려워하며 우리는 약간의 긴장과 큰 설렘을 안고 매주 나의 삶을 적어 나갔다. 3월 첫 주에는 책만들기를 시작해야 하니, 2월까지 3개월간 매주 1-2편의 글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썼다. 그리고 미로를 헤맬때엔 알지 못했던 다섯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다.

 

1. (성실하나 부지런하지 않은 남편과 아롱이 다롱이인 딸 둘, 새콤달콤 털 복숭 냥이 둘을 키우며 워킹맘으로 사는)삶에는 사건이 넘쳐나며 소재의 고갈로 글을 못 쓰게 되는 일은 없다.


2. 글쓰기는 태도이자 습관이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엉덩이를 누르고 앉아서 끄적이는 순간 글세계를 열고 닫는 문이 생긴다. 문 여는 연습이 충분해지면, 아름답고 개성있는 모양새의 방에 들어가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된다.


3. 만들어 내는 사람의 눈으로 본 세상은 놀랍도록 새롭고 아득하게 슬프며 알차게 즐겁다.


4. 내가 쓰는 글이 대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토록 좋은 글과 훌륭한 책들을 읽고도 기죽지 않고 무엇이든 써내는 나는 이미 대단한 사람이다.


5. 인생의 파도는 먼 곳에서 주어지고 나는 그저 부유한다. 둥둥 떠다니는 동안 무엇을 살피고 어떻게 느끼고 얼마나 얻을지에 대한 삶의 자세만은 내 몫이다.  


 그렇게 첫번째 북페어에서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고 미래의 작가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내 삶의 파도가 시작 된 먼 곳의 바다 또한 궁금해졌다.


 쓰면 쓸수록 쓸 것이 더 많아지는 나의 세계. 나는 글쓰는 내가 좋아, 매년 벚꽃이 피는 계절에 책을 만든다.


 한 해동안 뿌려져 어느새 고개를 내민 새싹을 펼쳐본다.


  

작가의 이전글 멀리서도 함께 있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