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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Feb 18. 2024

멀리서도 함께 있기

제주가 가르쳐 준 것들

 눈이 내리던 날, 집 근처 키즈카페에서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제주에 내려와 일해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어.”


  지난봄, 하와이에서 대자연에 대한 경의를 마음에 심은 후였다. 눈부신 하늘, 시간이 조각한 절벽, 수백의 초록빛이 부서지는 바다. 내 유전자가 부유하던 먼 과거를 그대로 간직한 자연 속에서 기억나지 않는 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뿌리내렸고, 이제 나무가 되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나 제주에 가게 될 것 같아,”


 막 두 돌이 된 둘째 딸, 동갑내기 여자 친구, 그리고 그녀의 엄마 J 곁에서 플라스틱 바구니에 채소 모형을 담으며 소꿉 놀잇감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몸으로 부딪히고 마음이 뒹굴던 20대, J와 나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살펴주고, 가지라고 용기를 북돋다가, 때론 놓으라고 꾸짖어 주었다. 그렇게 나다운 것, 내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비추며 서로의 거울이 되어 준 우리, 이제 나이가 같은 딸아이를 함께 키우며 나누는 손길이 든든하리라 기대했었다.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알기 때문일까. J는 제주로 떠날까 한다는 나를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제 시시콜콜 살피고 북돋고 꾸짖지 않아도 잘 지낼 서로임을 믿기도 했을 테고.


 연고도 없는 섬에 흔쾌히 이사 온 우리 가족을 신기해하며, 살아보니 어떤지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하곤 했다.


 “타고난 성향이 혼자 노는 걸 좋아하고, 전부터 이곳을 참 좋아했어요. 소원대로 제주에서 신나게 놀다 보니, 그동안 얼마나 긴장하며 살았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몇몇 다정한 사람들은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보고 싶지 않은지 조심히 물어왔다. 보고 싶지, 보고 싶은데, 보고 싶어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데, 여전히 마음 가까이 머물러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매일 안부를 묻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을 먹다 생각나고, 달력을 보다 궁금하고, 언젠가 만날 날을 그리며 충실히 살아가는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성기면서도 단단한 관계를 믿고 서로에게 더 씩씩한 사람이 되어 하루를 채우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빠듯한 일상 속, 소중한 휴가의 일부를 서로에게 내어 주고, 눈을 마주 보는 특별한 시간을 밀도 있게 누리는 우리. 먼 곳에서 왔는데도 항상 곁에 머물던 사람이 된다. 울퉁불퉁해서 더 재미난 안녕함을 나누다, 어느새 요즘 마음속에 자라는 것들을 서로 비추고, 상대의 아름다운 새싹에 애정을 듬뿍 끼얹기도 하는.


 헤어지는 순간의 아쉬움까지 빛나는 구슬에 담아 볕이 잘 드는 마음의 선반에 놓아둔다. 그 따스함을 자주 쓰다듬으며, 너의 존재로 나를 응원하기도 하는 제주의 일상.  제주에 와서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할 수 있게 된 또 한 가지,


 ‘멀리서도 함께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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