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일의 우정
응석을 부리려다 입을 다문다. 마담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의 진짜 문제는 그녀의 남편들이 아니었다. 밀려드는 권태와 자의식 과잉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안으로만 파고들며 불행의 길로 걸어들어간 그녀들. 그들의 삶에는 도서관과 체육관, 무엇보다 자기 안에 갇힌 마음을 세상으로 꺼내어 줄 친구가 없었다.
영화 ‘팬텀 스레드’의 외유내강형 여자 알마는 외강내유형 남자 레이놀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름다운 옷을 창조하는 오만한 예술가이자, 어릴 적 엄마를 떠나보낸 상처와 불안으로 약하고 예민하게 살아온 레이놀즈. 그를 신처럼 떠받드는 여자들로 가득한 의상실에서 오직 알마만은, 엄마 앞에 선 소년처럼 가득 응석 부릴 자유를 그에게 선물한다. 레이놀즈의 오만함, 그것의 뿌리인 무력함까지, 그녀는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프로이트 박사님이 ‘사랑과 일이 인생의 전부다’라고 하셨다는데, 알마는 일도 안하고 친구도 안 만나면서 이런 사랑의 지혜와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나. 그녀의 일이라 하면 레이놀즈가 만든 옷의 모델이 되어주고, 그의 보호자가 되는 것인데. 내 배 아파 낳은 자식 응석 받아주는 10년 차 엄마의 애정에도 한계가 있는 나로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나이 많고 무례한 파트너가 ‘진짜 원하는 것’을 정신분석전문가 수준으로 간파하여 현실로 만들어주는 그녀의 사랑의 기술은, 다만 사랑에 목마른 예민한 사람이 품은 판타지로 보이기도 한다.
이 판타지는 또한 나의 것이기도 하다. 우아한 예술가도 아니면서, 나는 레이놀즈에게 알마가 그러했듯, 남편이 나를 우상화하고 동시에 헌신하기를 절실히 바란다. 영화를 함께 보고 이런 속내를 드러내며 나조차도 직시하지 못한 그동안의 서러움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당황스러운 나의 응석과 예민함에 남편은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맘껏 약해져도 된다고, 너의 자의식 과잉과 허영심까지 모두 너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니 그것을 잘 지킬 수 있게 돕겠다고 말했다.
거울에 비친 내 마음 속 안나 카레니나와 마담보바리를 볼때마다 긴장하던 지난 몇 개월이 눈 녹듯 풀렸지만, 다음날 아침 내 마음은 여전히 개운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관계에서 느끼는 문제의 대부분은 내 안에서 내가 풀어야 하는 것이다.
휴직 중인 나의 일은 아이들이 행복한 현재, 꿈꾸는 미래를 갖도록 살피는 것, 그리고 집안 살림이다. 요즘은 주방 가전과 교육기관의 도움으로 내 개인 시간이 많아졌기에 계획적인 운동과 독서로 몸과 마음을 살펴 내 역할에 구멍이 나지 않게 하는 것까지가 나의 의무다. 필라테스도, 책 읽기도 게을리한 결과로 지금의 나는 권태라는 지긋지긋한 벌을 받고 있다. 역시 50년 이상 유명해 온 분들 말씀은 잘 들어야 한다. 일과 사랑 각각의 균형이 깨어지면 삶의 평안함도 흔들린다. 남을 통해 나를 배우지 않고 나만을 통해 나를 배우려 하면 탈이 난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2025년 대선 일, 대학 때부터 가까웠던 친구 둘이 서울에서 나를 만나러 온다고 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자, 두 아이 엄마에게 휴일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 지, 당일치기 제주행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알기에 그들의 상상력과 추진력에 감탄했고, 그리운 서로의 마음이 통한 것에 감격했다. 엄선된 식당에서 두 번의 식사와 쉴 새 없는 수다와 알찬 산책과 끊임없는 사진 촬영에 피로하고 목이 따가워도 우리는야, 불나방. 인생에 찾아 올 여러 번의 대선마다 그리울 이 꿈같은 현재에 끊임없이 불쏘시개를 넣어 활활 태우는 일은 다만 황홀했다.
서울 행 비행기를 타기 전, 저녁 식사를 하며 그녀들에게 ‘사랑밖에 난 몰라’인 처지의 어려움을 이야기 했다. 나의 이삼십 대를 온전히 지켜본 그녀들, ‘훗, 내가 언니를 좀 아는데’ 가 생략된 그녀들의 촌철살인.
“아우, 언니, 이건 부부의 관계 문제가 아냐. 막 내면으로 파고들면 점점 더 답이 없어지잖어. 그거 곁에서 보면 되게 피곤한 거 알지?”
“‘사랑 밖에 난 몰라’가 좋은 건 주는 걸로 충분할 때 만이야. 꽃 사주고, 사랑 고백하고 요리해주고. 주는 것 만으로 충만한 고 때까지가 딱 좋지! 막 하소연하고 그럼 인제 선 넘은 거야.”
“언니 지금 글 써야 할 때야, 노느라 바쁜 건 아는데. 안 돼, 안 돼. 승화시켜서 수시로 꺼내!”
그러면서 이래서 애들이 집에서 학습지 매일 두장 씩 풀면 되는 데 그게 안 되어 학원에 가는 거라는 둥 아줌마로서의 수다를 떨다가 가방에서 무심히 뭔가를 꺼낸다.
교사이자 작가로 살아간 ‘빨간머리 앤’이 그려진 상자 안에 ‘뉴저지에서 펼쳐질 차차 작가의 모험과 일탈과 낭만을 응원한다’는, ‘같은 달을 보며 서로 응원하고 그리워 하자’고 쓰여진 카드. 표지에 달이 그려진 양장 노트 한 권과 달러 소액권을 두툼히 담은 봉투. 그녀들은 자주 내면으로 파고들어 우울해하며, 때론 남친밖에 모르던, 약하고 예민한 대학 동기가 몇 개월 뒤 타국에서 펼칠 삶을 응원하러 온 것이다. 모처럼의 휴일에 짬을 내어 서울에서 제주까지. 그날이 대선일이라 미리 사전투표를 하고, 항공권을 예약할 때의 결심,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뒤로 한 홀로 제주행, 말하고 들어 준 그간의 경험과 마음들. 이 모든 것이 그녀들의 우정이었다. 그녀들을 배웅 갈 때의 설렘, 바다와 언덕과 메밀꽃이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가는 수고, 맛있는 제주 흑우를 먹기위해 식당에 세 자리를 예약하고 계산하는 모든 것들이 그녀들을 향한 내 사랑의 표현이었다. 요구하지 않는 마음, 그래서 곁에 있는 것이 더욱 기적 같은 마음.
낯선 지구별에 태어나 쉼 없이 걸어가는 삶의 길은 외롭고 불안하기에 우리는 자주 눈을 들어 주변을 봐야 한다. 시시때때 달라지는 풍경과, (때론 꽤 오랜 시간) 길에 함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내게 주는 것뿐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품는 관심과 건네는 사랑으로 나는 세상을 배우고 알아간다. 내 길에 그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는 길에 나 또한 머무는 것이라 생각하면, 뭍에 다다른 파도처럼 오만함과 권태가 쓸려 나간다. 소음과 변화와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라는 우주에서 무엇을 붙잡고 어떤 그림을 모래 밭에 그릴지 듣고 말하고 기억하며, 서로의 곁에 없을 때에도 같은 달을 바라 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고 싶다.
나를 수없이 깎아 먹으며 캄캄해져 간 월식을, 환한 그녀들이 끝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