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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Nov 24. 2021

넷째의 반전

희대의 골칫덩어리가 최고의 기대주가 되기까지

세 명을 다 다독가이자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웠다. 그런데 진짜 강적이 나타났다. 나 요즘 막둥이만을 위해 하루에 책을 2시간 정도 읽어 주는 것 같다. 그런데도 계속 책을 가져온다. 몇 시간씩 책을 읽어주니 입이 마르고 단내가 난다. 설거지하다가도 멈춰서 가서 책을 읽어준다. 그래서 우리 집엔 늘 설거지가 쌓여 있다. 책을 읽는 남매들 사이에서 자란 아이다 보니 그 영향이 적지 않다. 도서관 가기를 즐거워하는 아이. 주말에 교회 갔다 도서관 안 들렸다고 우는 아이.

이 두꺼운 책을 날마다 몇 시간씩 읽어주고 있다.


악기를 연습하고 음악을 듣는 남매들 사이에서 자라다 보니 다섯 살인데도 연주회에 가고 싶어 한다. 보통 '8살 이상'이라고 단정짓는 연주회에 남매들만 나서는 게 사뭇 부러웠나보다. 다음 달 '8살 이상'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은 연주회에 아이 표까지 예매했다. 다섯 살 넷째, 공연까지 며칠 남았냐고 계속 묻는다. 유치원에서는 일렉기타에 대해서 친구들 앞에서 곧잘 설명했다고 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두 형들의 영향으로 한국 시리즈 열 팀이 넘는 팀명도 정확히 알고 있다. 야구 규칙까지도.


넷째를 임신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가졌던 2016년 한 해가 떠오른다. 임신하고서도 넷을 어찌 키울까 가슴이 답답하여 출산 전 날까지도 하루에 한 시간씩 밖을 걸었다. 현실 도피성 산책이었다.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만 4년 동안 그 아이를 키워놓고 나니 이 아이는 위의 세 아이보다 더 기대감이 드는 아이로 변모해 있다. 큰 형을 쫓아 생물에 대한 지식을 섭렵해가고 있는 아이이자, 둘째 형과 셋째 누나의 영향으로 음악가의 소양을 키우고 있는 아이이다. 철저히 과학자 - 절대로 문과와는 거리가 먼 - 인 첫째와 감성적인 둘째, 셋째, 이 세 남매들의 총체적인 영향 속에 자라나 우뇌와 좌뇌 발달을 모두 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최고로 인기 좋은 유치원 - 큰 애 둘도 너무나 신나게 다녔던 유치원 - 도 재미없다는 이 아이, 엄마가 날마다 2시간씩 책을 읽어주고 세 남매가 가장 좋은 선생님이니 유치원은 시시할 수밖에 없다.  


대반전이다. 내 인생 최대의 골칫덩어리가 최고의 기대주가 돼있다. 넷째의 스케일이다. 인생,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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