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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Oct 24. 2020

아일랜드와 한국의 문화 차이에 관한 사적인 보고서

출처: 내 경험


나는 문화의 다양성을 마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었다. 색다른 것을 경험하는 건 지루한 삶에 자극이 되니까. 그래서 여행도 열심히 다녔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 위해 언어교환, 밋업 등 다양한 소셜 모임에도 꾸준히 참여하곤 했다. 그런데 이건 내가 서울에 있었을 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아일랜드에서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다른 문화를 마주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문화의 다양성'을 마치 뷔페에 가서 이국적인 음식을 골라먹는 것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하루쯤 시간을 내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만 취할 수 있는 이벤트 같은 것. 내 삶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일랜드에 와보니 나는 이방인이었고, 내가 향유하던 문화와 삶의 방식은 소위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였다. 문화의 다양성을 마주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의 삶에 적응을 위해서는 필수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더 이상 새로운 것, 다른 것을 경험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할 때 어떤 것이 옳은 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 흐려지면서 혼란을 느낀 적도 있다.


이제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상 속 한국(인)과 아일랜드(인)의 차이점을 말해보려고 한다. 참고로 지금 나는 아이리쉬 남자 친구와 더블린에서 지내는 중이다. 지난 10개월 한국생활에서 잊고 지냈던 사소하지만 큰 차이들을 매일매일 마주하고 있다. 더블린에 온 후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이 우울했다. 그 이유를 몰랐었는데, 아마도 이런 변화들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1. 물보다 차를 더 많이 마시는 그들.

생각해보니 그렇다. 여기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걸 본 적이 없다. 대신 티(Tea)를 달고 산다. 여기서 말하는 티는 블랙티(Black tea)이다. 홍차의 한 종류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얼그레이나 다즐링처럼 특별한 향이 있지는 않다. 조금은 밋밋한 맛인데 여기에 우유를 넣어서 우리가 아는 밀크티 형태로 마신다. 아일랜드에서 지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마도 이거일 거다.


"Would you like a cup of tea?"

(차 마실래?)


하루의 시작과 끝은 함께하는 티. 내 남자 친구는 하루에 적어도 5잔은 마시는 듯하다. 티와 관련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티를 탈 때 절대 자신의 것만 타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조금 섭섭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다. 이렇게 물음을 당해서? 억지로 마시게 된 티만 해도 벌써 수십 잔이다ㅎㅎㅎ

또 사람마다 티를 즐기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그걸 기억해주는 것이 애정의 척도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내 남자 친구는 물과 우유가 거의 반반이 되도록 타는 걸 좋아한다. 내 입장에선 그냥 뜨거운 우유랑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우유를 엄청 많이 넣는다. 남자 친구의 기호를 몰랐을 땐 내가 마시는 방식(물 가득에 우유 조금)으로 타 주곤 했는데 추후 그의 기호를 알게 되고 그렇게 타 주니 엄청 고마워하고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2. 아이리쉬는 추위를 안 탄다?

솔직히 아일랜드에 여름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겪은 아일랜드의 1년은 항상 추웠다. 추움과 매우 추움 두 가지만 존재한다. 한 번은 친구의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난 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그 친구가 "오늘 날씨 너무 덥지 않아?"라며 재킷을 벗는 게 아닌가. 나는 정말 궁금했다. 이 사람들이 추위에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특별한 유전자가 있어서 추위를 덜 타는 건지...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는 스웨터, 카디건에 수면양말까지 신고 있는데 역시나 남자 친구는 반팔 차림이다. 이거 정말 미스터리다. (참고로 지금 실내온도는 9도이다. 보일러 없이 라디에이터만 돌리는 집이라 그런지 너무 춥다...)



3. 아무나와 음식을 나눠먹지 않는다.

우리는 하다못해 사무실에서 간식을 먹을 때도 옆자리 동료를 챙기지 않는가?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혼자만 뭔가를 먹는 것에 일종의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식당에 가면 어떤가? 친한 친구들과는 사전 협의(?) 없이도 음식을 골고루 시켜서 나눠먹는 게 일종의 룰 아닌가? 여기서는 그런 거 없다. 일단 음식은 무조건 1인 1 접시 원칙이다. 그리고 각자의 접시를 탐내지 않는다. 만약 아이가 메뉴를 잘못 골라 음식을 입에 대고 있지 못할 때도 부모님은 자신의 음식과 바꿔주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식탁 위에서는 내건 내거, 네건 네것이 확실하다. 그러니 만약 당신의 아이리쉬 또는 외국인 친구가 음식을 나눠주지 않아도 너무 섭섭해 마시라.



4. 경계가 명확한 사람들. 가족이라 할지라도....

바로 어제의 일이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튀어나올뻔한 사건이 있었다. 2주간의 자가격리가 끝난 나는 남자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더블린은 현재 코로나 관련 최상위 조치인 5단계가 시행 중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한다. 남친네 집에는 남친과 남친 아버지가 재택근무 중이었는데 내가 마침 놀러 갔을 때가 점심시간이었다. 배가 고팠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드는 김에 당연히 남친의 아버지 것 까지 만들었다. 이미 폴(남친 아빠)하고는 안면이 있고 가끔 문자메시지도 주고받는 사이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큰 파장을 몰고 올지는 몰랐다. 샌드위치가 완성되어 남친과 남친 아버지를 불렀다. 남친 아버지가 먼저 부엌에 오셨고 나는 역시 차를 타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남친이 내려와 이 상황을 목격하고 불같이 화를 내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나에게는 왜 자신의 아버지 점심까지 만들었냐고 화를 냈고, 아버지에게는 자기 여친에게 점심을 만들게 시켰냐면서 화를 내고 위층으로 올라가버렸다. 나는 남친이 그렇게 화를 내는 걸 처음 봤다. 그리고 이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싶었다.


아버지에게 샌드위치와 차를 드리고 남친이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남친은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왜 이렇게 화가 났냐고 물었다. 그러니 돌아온 대답.


"He is a fully grown man. He can cook by himself. And you are not his slave."

(아버지는 다 큰 성인이야. 스스로 점심을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넌 그의 노예가 아니잖아.)


정말 충격적이었다. 노예? 도대체 이 단어는 여기서 왜 나오는 거지? 난 평소 한국에서도 집에 엄마가 안 계실 때면 아빠나 오빠의 식사를 챙기곤 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내가 노예라서 그런 게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가족이니깐 아니면 내가 아끼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한 거다.


난 그에게 한국에서는 서로의 식사를 챙겨주는 게 당연한 거고 특히 가족 간에는 그것이 애정의 표현이자 예의 같은 거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아 그렇냐"라고 했고 우리는 포옹으로 이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한편으로는 나를 아껴주는 것 같아 고마웠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다음번엔 우리들의 샌드위치만 만들게 될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적으려고 한다. 앞으로 이곳에 지내면서 목격하게 되는 소소한 차이점들을 모아서 올리겠다. (재밌게 읽어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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