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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Jan 16. 2021

'여적여'에 관한 흥미로운 고찰

여자의 적은 여자?

브런치에만 해도 고부갈등에 관한 글이 끊임없이 게재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한다는 고부갈등..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수많은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었다. 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고리는 쉽사리 끊어지지 않아 2021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직장 생활 내 따돌림이나 갈등도 여자 vs 여자 구도인 경우가 많다. 꽉 찬 나이에 시집도 안 가고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과장님... 내 옆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도 왠지 익숙한 타이틀 아닌가? 여자 사원끼리의 기싸움과 험담에 시달리는 남자 직원들, 그 사이에서 눈치 보는 게 업무 보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하는 남직원의 한숨 섞인 한탄.. 이것도 왠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볼 법한 이야기 아닌가?


내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도 이 '여적여'가 지배하는 상황이 많이 존재하는데... 한 남자애를 두고 두 여자가 싸운다거나, 편을 이루어 여자들 vs 여자들 구도로 각종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트리며 상대 쪽 대빵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등. 여자들의 질투와 시기는 시대와 나이를 초월해 DNA 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만 같다.




당연히 일반화할 수는 없다. 모든 여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감히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도대체 왜 이런 특성을 가지게 된 걸까? 나의 추측은 이렇다. 일단 사회적으로 여자들은 주체성이 결여된 존재로 성장할 확률이 크다. 남녀 간의 사랑 고백을 예로 들면 많은 TV 프로그램을 비롯한 미디어에서 고백을 하는 주체는 남성인 경우가 많다. 여자들은 멋지고 능력 있는 남자들의 눈에 띄도록 예쁘고 애교 있고 참하고 섹시해야 하고(이게 말이 되나?) 끊임없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서 그런 남자들에게 선택받는 것이 최상의 목표처럼 그려진다. 이 게임에서 이기려면 나보다 매력 있는 다른 여자 즉 그 경쟁자를 무찔러야 한다. 그리하여 많은 경우 자신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하기보다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전략을 쓰게 된다. 반면 남자들은 최고의 퀸가를 얻기 위해 서로를 깎아내릴 필요 없이 그냥 자기 자신이 능력 있고 멋진 사람이 되면 된다.


같은 맥락으로 여자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위한 선택권 자체가 남자에 비해 적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의 어린 시절을 예로 들면, 부모님은 도전과 모험을 하려는 나에게 항상 안된다고 하셨다. 20살 처음으로 해외 배낭여행을 계획한 나는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보다 부모님의 반대를 설득하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만 했다. 부모님이 반대한 이유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신체적으로 약하고 성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반면 오빠에겐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다.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아무도 찾지 않았다. 애초에 오빠에게는 '허락을 받는다'라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뭐든 원하는 것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인이 된 나는 남들에게 허락을 받고 동의를 받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나에게 동의해주지 않으면 또는 공감해주지 않으면 갈길을 잃은 것 같은 공허함마저 느꼈다. 무의식 중에 상대방의 공감을 갈구하는 이 성향이 여자들을 여자들의 적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남자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보인다. 하지만 같은 여자끼리는 훨씬 높은 잣대를 들이민다. 나는 가끔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눈빛을 자주 받는다.


 "너는 이해하지? 내가 무슨 말하는지?"


그러면 솔직히 이해와 공감이 안 갈 때도 있고, 이해는 가지만 공감이 안 갈 때도 있다. 그런데 내가 공감의 표시를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실망할 것을 알기에 공허한 축하 또는 위로의 말을 날릴 때가 많다. 이 경우는 그나마 내가 애정 하는 친구들에게 보이는 노력이다.


반대로 어떤 경우는 나의 질투와 시기심이 올라와 이해와 공감을 둘 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토록 같은 대화를 하면서도 나의 반응은 그날의 나의 감정, 그 친구가 과거에 나에게 대했던 태도, 그 친구의 배경, 그간의 우리 대화 히스토리에 따라서 나의 대답은 달라진다. 이렇게 복잡한 변수 속에 서로를 오해할 일도 많아진다. 그래서 여자들은 사소한 일에 절친이 되기도 하고 절교를 하기도 한다.




나는 처음 '여적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정말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씌우는 프레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인간관계가 힘들었던 때는 연애 관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자들과의 관계였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화 상대는 여자 상사이다. 그리고 남자 친구의 부모님과 같이 지내고 있는 요즘은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가 제일 어렵다. 다른 분들은 이 '여적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그저 내 주변의 여자들과는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


"나는 당신의 질투 상대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부러우면 부럽다 예쁘면 예쁘다고 솔직히 이야기할게요. 저의 진심을 곡해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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