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간 동안의 긴장과 공포-보이스피싱
무심코 받은 전화 한 통에, 그녀는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생지옥에 갇히고 말았다.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숨 쉴 틈조차 없었다. 물 마시고 화장실 가는 것만 허용한다는데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데도 물조차 마실 수 없을 만큼 사건은 토네이도처럼 거칠게 휘물아쳤다.
그날(25.09.15.) 아침 9시 32분, 우체부라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그는 카드를 배송해야 된다고 언제쯤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카드 발급 한 적 없다고 말하자, 그는 카드사에 확인해 보라며 겉봉투에 적혔다는 1551- 0795(카드사 대표전화 번호 아님. 이 번호로 낚인 것임)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단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 건지..
“롯데 카드 담당 김*수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차분하고 정돈 된 목소리. 그녀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는
“명의 도용이 의심됩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폰에 악성 앱이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면서 잠시 원격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녹취되고 있다면서 안심시키는 그의 말에, 그녀는 그 남자가 지시하는 대로 휴대폰 자판을 하나씩 눌렀다. 카드사가 그녀에게 해를 끼칠 리 없다는 믿음 아래, 그녀는 순순히 응했다. 남자는 마치 수술을 집도하듯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해 내었다. 63분 동안 그녀를 위해 친절을 베풀며 문제를 해결해 낸 그에게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카드로 피해 볼 일 없도록 모든 조치를 취했습니다. 누가 명의를 도용했는지는 금감원에서 알 수 있으니 거기로 연락하십시오.”
금감원 박*환 과장이라는 사람이 온기를 더한 리액션을 곁들여 가며 그녀의 사연을 들어주었다.
“아, 그러셨군요. 명의 도용을 당하셨다니 무척 놀라셨겠어요.”
그는 마치 심리 상담사처럼 경청과 공감, 위로를 순차적으로 해 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 혹시 해외 여행을 한 적이 있느냐고도 묻고, 해외 송금 한 일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통화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잠시도 딴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원격조정을 요청해 왔다. 명의 도용한 이가 누구인지 확인 해 주겠다면서.
금감원은 주소지가 나와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명의로 통장(국민은행)을 개설해서 거래를 하고 있다는, 증빙 자료를 보내왔다. 8명이 연루 돼 있는 통장 거래 내역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건 접수가 돼 있는 상태라면서 사건 번호(1858)를 알려주었다. 금감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서울 지검에 전화를 해 보라는 것이었다.
금감원에도 네이버 검색 창(원격 조정으로 네이버 검색창에 뜨는 전화 번호를 그들이 조작해 놓음)을 통해서 대표 번호로 전화를 했듯이, 서울 지검이라는 곳에도 대표 전화로 통화를 하였다. 검사하고 통화가 되었는데 다짜고짜
“당신 통장에서 해외 송금 기록이 이렇게나 많은데, 발뺌할 겁니까?”
“피해자들이 다 죽어 나가는데 당신 같은 사람이 발뺌을 하다니 당신은 피의자가 아니라 이미 '혐의자'입니다. 02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당신이 안 받아서 사건 내용을 모르는 것입니다.”
검사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송곳처럼 고막을 찔렀다. 명의 도용 당해서 피해를 입은 자들이 있다더니, 실제로 그녀에게도 일어난 엄청난 일에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검사는 도주의 우려가 있다면서 법원 차량을 보낼 테니 지금 당장 서울지검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검사받아서 혐의점 나오면 바로 구속이라면서 최소 3일은 조사를 받아야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약이며 갈아입을 옷들도 챙겨 와야 될 거라면서 숨통까지 조여왔다. 사건 내용은 금기이거늘 금감원 직원이 그녀에게 발설하였으니, 둘이 서울 지검으로 출두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전화를 거칠게 끊어 버렸다.
몸이 의자에 붙박인 듯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작년에 회사 서류 관련 일이 떠올랐다. 서류 담당을 맡았던 이가 혹시 내 정보를 넘겼을까?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꺼지고, 대신 웅크린 두려움만이 자리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금감원 과장한테 구원 요청을 하였다.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검사가 어찌나 겁박을 하는지, 둘이 같이 출두하라던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목소리는 물에 빠진 듯 허우적거렸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만이 절절하였다. 그때 금감원 직원이 넌지시 던진 말 한마디가 수호신처럼 다가왔다.
“검사에게 약식기소를 요청하세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그 안에 해결책을 찾아봅시다.”
금융권을 지켜 주겠다고 하는 그에게 뭐든 다하겠다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맹세를 하였다.
검사는 그녀 입에서 '약식기소'라는 말이 나올 때 포효하듯 반응했다.
“무슨 개소리야! 내가 혐의자를 어떻게 믿고 약식기소를 허용해 줄 수 있겠어? 왜 내가 당신을 믿어야 돼? 다들 그렇게 말하지. 나는 결백하다고들! 당신이 갚아야 되는 금액이 1억 7천만원 잡혀 있으니 참고하시고. ”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는 통곡하듯 애걸복걸하였다. 그 순간 지검에 팩스가 한 통 도착했다. 금감원 직원이 그녀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검사는 둘 사이가 의심스럽다면서 호통을 치면서 이실직고하라면서 괴성을 질러댔다. 금감원 과장과 언제부터 알고 지낸 사이냐고 다짜고짜 몰아붙였다. 후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처음 통화 한 거라면서 그녀는 휴대폰을 제출하여 포렌식해서 다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제야 검사라는 작자가 못 이기는 척하고 태도를 바꿨다.
“금감원 직원이 당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입증해 줄 수 있다고 선처를 요구하니 들어줍니다. 검사 생활 20년 만에 이렇게 착한 사람은 처음 봅니다.” 라면서. 어불성설인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에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연거푸 하고 말았다.
금감원 과장은 그녀에게 속삭이 듯이 차근차근 다음 지시를 내렸다. 금융권에 있는 돈을 지켜 준다고 하면서
"신* 적금은 위험하니 당장 해약해서, 농* 통장으로 옮기세요. 농*이 안전합니다."(입출금 계좌라서 이곳으로 돈을 옮겨서 한 몫에 출금하려고 작정한 것임)
행여나 누군가가 출금을 해 갈지도 모른다는 초특급 불안이 그녀를 덮쳐 왔다. *협 통장에 동창회비 천만원 가량도 들어 있었다. 그녀는 '금융권을 지켜준다'는 그 말 한마디에 승용차에 후다닥 올랐다. 목이 타들어가는데도 물을 마실 여력조차 없었다. 그때 마침 112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금감원에서 보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위치 추적이 되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얽혀 든 줄 모르는 그녀는 경찰이 그녀를 지켜준다는 전화에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이제는 안전하다는 확신이 차올랐다.
정신줄을 놓고 은행을 향해 달리는 그녀, *협을 1킬로미터쯤 앞에 두고 신호등에 딱 걸렸다. 빨리 가야 되는 데 신호등에 걸린 상황도 그녀의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기 10초 전쯤, 그때 불현듯이 섬광 같은 깨달음이 스쳤다. ‘앗, 지금 보이스피싱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급작스레 마음이 다급해져 2차선에서 3차선으로 급히, 핸들을 꺾었다. 그리고 집을 향해 손살처럼 내달렸다. 그녀의 폰은 추적을 당하고 있으니 얼른 집으로 가서 남편 폰으로 아들한테 전화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얼마나 심장이 요동을 치든지 쿵쾅쿵쾅 펌프질 하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얼굴에도 마치 술에 취한 듯 열감이 올라왔다.
남편 폰으로 허겁지겁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 설명도 하기 전에 아들은 이미 감을 잡았는지
“엄마, 그거 보이스피싱이야.”
아들의 단호한 목소리에 설마 했던 것이 현실이었다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들이 집으로 오는 동안 112에 신고를 하여 경찰관 두 명이 집 앞으로 출동하였다. 피해를 입지 않아 큰 다행이라면서 금전적으로 피해를 입어도 범인들을 찾을 길이 요원하다고 하였다. 대포폰을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경찰서에 다녀오라고 해서 강력 4팀으로 찾아갔더니 범인들이 휴대폰에 새로 깔아 놓은 앱들을 다 삭제해 주고 이제 마음 놓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래도 불안하시거든. 휴대폰 새로 바꾸십시오. 돈이 많으시다면.” 라는 위트 있는 강력팀 수사관(매우 강렬한 인상을 지녔음에도 그녀가 피해자였기에 든든함이 느껴짐)의 말 한마디에 꽁꽁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들었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수많은 순간에 멈출 수 있었다. 맨 처음에 우체부라고 했던 이가 알려 준 카드 회사에 전화 걸기 전에 네이버에 검색을 해 보았어야 했다. 원격조정을 요구할 때, 의심했어야 했다. 금감원이라면서 끝도 없이 내 사정을 캐묻고, 연인처럼 다정하게 위로할 때, ‘공무원이 이렇게까지 사적인 감정을 실을까’에 대해 의문을 가졌어야 했다. 서울지검의 이*성 검사가 고성을 지르며 겁박할 때, ‘검사가 일반 사람과 통화를 하지 않는다'는 상식 정도는 그때 떠올렸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의심하기를 멈춰버렸다. 그 이유는 단순하였다.
첫째, 그녀는 권위를 맹신하였다. 네이버 검색창, 대표 번호, 금감원, 서울지검. 권력기관이 주는 무게감 앞에서 스스로의 판단을 내려놓았다.
둘째, 그녀는 두려움에 굴복했다. 정보가 얼마든지 유출될 수 있는 현실에서 그녀만 안전하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공포는 상상의 날개를 달고 부풀어 올라 그녀를 압도하였다.
셋째, 공무원의 겁박과 친절한 공감에 매료되었다.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어머니 같은 분이라서 최대한 제가 돕겠습니다.”
이 짧은 말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 그리하여 그녀는 한 걸음씩, 천천히 또는 다급하게 깊은 늪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녀는 모든 금융 정보를 털어놓으며, “이제는 안전하다”는 거짓된 안도감을 스스로 조립하고 있었다.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부끄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아들과 통화하면서 떨리던 목소리, “엄마, 그건 보이스피싱이야”라는 단언에 무려 다섯 시간 동안 귀신에 홀려 정신줄 놓았던 상황들이 너무나 허망하였다. 사람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 실감하였다. 보이스피싱의 본질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누구라도 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의사, 공무원, 교육을 받은 사람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지검’, ‘금감원’ 같은 이름이 주는 무게감, 두려움이 신체에 미치는 긴장감, 다정한 위로가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는 순간.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에, 논리보다 권위에 더 민감하다.
이번 사건은 그녀에게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들은 인간의 심리를 정밀하게 계산한다. 두려움에 빠진 자는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는 것, 권위 앞에서 인간은 쉽게 무릎 꿇는다는 것, 따뜻한 공감 한마디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고 방심을 열어젖힌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녀 안의 공포, 권위 앞에서 움츠러든 나약함, 친절에 기대려는 마음. 그 틈으로 스며든 친절과 협박하는 목소리들이 지옥이었다. 의심은 불신이 아니다. 의심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다. 의심 없는 믿음은 맹목이고, 맹목은 언제든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인간은 믿음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이제 의심 없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이 양가적 진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이번 사건이 그녀에게 남긴 가장 뼈아픈 자취였다.
이 글을 소설처럼 3인칭 시점으로 쓴 것은 그날의 상황을 더 자세하게
톺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수치를 드러내서 보여주고픈 대상이 있다. 우리 아들과 딸, 그리고 내 막냇동생이다. 감정이 다소 가라앉았을 즈음 막냇동생이랑 통화를 하였다. 잠시 후 문자 알림이 왔다. '보이스피싱위로금'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 유머하는 신통방통(남편)의 반응에서 빵 터졌다.
딸은 보이스피싱 당하지 않은 엄마에게 관심을 더 가져줘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동안 바빠서 못 읽었던 브런치 스토리에 있는 글들을 죄다 읽었고, 거금 10만 원을 응원금으로 쾌척하였다. 사위가 보낸 것이라 하는데 여하튼 고맙다. 바보 같은 장모에게 위로금도 보내주고.
아들은 무탈했음에 안도하더니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인 엄마가 가여웠는지 어떻게든 기분 전환을 해 주려 마음을 다하는 게 보였다. 두통에 시달리는 나에게 약을 사다 주었고, 옷을 한 벌 사면 기분전환이 될 거라면서 매장을 데리고 갔다.(옷이 눈에 들어 올리 없어 빈손으로 왔음) 새벽까지 내 방을 서너 번 들여다보곤 하였다. 잠을 제대로 자야 된다면서. 아들의 염려대로 나는 긴장이 풀리지 않아 새벽 네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복기해 볼수록 기가 막혀서 잠이 올리가 없었다.
수치에 가까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명징하다.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귀한 것을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고 배웠으니 기록으로 남겨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