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전환, 생각의 가치
4월의 강릉은 아침과 한낮의 일교차가 15도 이상이고,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강릉의 유명한 해변가 근처 카페들은 만석이다. 숨은 맛집들은 오픈하기 전부터 긴줄이 이어지는 것들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누군가는 이 시간에 주말 국내 여행지로 강릉을 검색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루에 한번은 매장에서 30초 거리에 있는 해변에 다녀온다. 아무말이 없이 바다 앞에서 깊은 숨을 들이 마신다. 저 멀리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바닷가의 송림을 거쳐 여름 냄새를 잔뜩 머금고 폐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 바다바람이 소나무 향기과 뒤섞여 진한 여름의 냄새를 만들어 낸다. 서울에서는 맡을수 없는 내가 좋아하는 냄새다. 누군가에게는 은은한 커피향과 언제나 탁 트인 바다와 일출명소들을 간직한 한국의 명실상부한 관광지이겠지만, 내가 매일 마주치는 그들에게 강릉은 날마다 찾아오는 평범한 일상이고, 삶이며, 일부분이자 전부였다.
프랑스 출국을 몇달 앞두고, 책 한권을 들고 바다가 좋아 무작정 도착했던 강문해변. 그리고 4년 뒤, 그렇게 또 강릉에 왔다. 일출 무렵 소리없는 여느날의 바다처럼 고요하게 강릉은 그렇게 내 삶에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던 우리의 만남을 뒤로 한채, 나도 한명의 여행객이 아닌, 그들의 일부가 되어가는 중이다. 성난 파도에 휩쓸려 가듯, 밀려들어오는 것들에 애써 힘쓰지 않기로 했다. 늘 그랬듯이.
4년만의 강릉
지금으로 부터 42일전 저녁, 회사 부장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불길한 예감에 커피를 마시려다 이내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과장님, 내일 강릉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이미 상호 회사간에 컨설팅이 결정되어 있던 상황이었지만, 하루 전날 파견 통보는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캐리어를 열어 주섬주섬 필요한 것들 몇가지만 챙겼다. 타지에서의 새롭고 색다른 경험 또는 현실 도피처, 휴식공간이라고 애써 뒤숭숭한 마음을 가라 앉혀 보지만, 많은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오피스텔 10층에서 바라보는 밤 야경이 이렇게 아쉬울줄 몰랐다. 캐리어를 열어둔채 일찍 잠에 들었다.
모 회사에서 운영하는 강릉의 베이커리 매장에서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고, 우리 회사에서 몇가지 계약사항을 이행하는 목적으로 베이커리 인원이 파견가기로 했다는 것은 작년 겨울쯤 나온 이야기였다. 세부적인 문제들로 조금 지연되면서 우리는 내부적으로 누가 먼저 파견을 가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낯설고, 해야할 업무가 많기때문에 직급을 핑계로 마냥 꽁무니 뺄수 있는 상황은 아니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먼저 가고 싶어했고, 상황에 따라서는 안가고 싶기도, 또는 상황에 따라 파견가길 원하지 않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입맛에 맞게 행동하려는 이기적인 내 자신은 아직도 존재했다.
강릉에 처음 답사를 갔을때만 해도 막막했다.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 도착해서 당면한 새로운 과제들, 무엇보다 그것들을 이겨낼수 있다는 자신감의 부재에 과도한 책임감은 순간의 공기를 앗아가는 느낌이였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라는 생각을 안한것은 아니다. 비단 우리쪽의 불안함만 있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맞이해야 하는 매장의 상황, 정보가 없는 타지인의 존재도 그들에게는 불안감이였다. 서로의 불안감과 초면에 서로 이야기 하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답사 미팅은 무언가 발전성있게 끝나지 않았다. 강릉에 답사가는 차량에서는 기대감과 달리 조금은 무겁고 돌아오는 길처럼 분위기는 어두웠다.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천국이 될수도 있고, 천국도 지옥이 될수 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생각들로 의견이 대립하고, 생각의 차이는 때로는 발전과 성공을 때로는 퇴보와 실패를 만들어 낸다. 결정하는 주체는 생각의 차이를 좁히고 결정을 내린다. 회사에서 이뤄지는 순간의 결정이 많은 것들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퇴보시킨다고 생각한다. 4년만에 다시 온 강릉은 나에게 많은 리스크가 있었고, 쉽지 않은 가시밭길이었다. 자신감보다 책임감이 더 커졌을때 그 불안감과 내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많이 놓칠것 같다는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새로운 것들이 모두 핑크빛 설레임으로 가득할수 있는 사람은 그것또한 축복이고 재능이다.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여행객으로 왔던 강릉은 푸른빛 바다, 초록빛 무성했던 송림, 잘 정리되어 있던 호텔의 객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고 책 한권의 한 문장에게 무한한 영감을 받을수 있는 여유가 있던 다채로운 색을 가진 도시였다. 그러나 그날은 칼라 잉크가 다 떨여저 마치 무미 건조하게 출력되버린 흑백사진을 한장 받은 느낌이라면 조금 더 와닿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 그때의 강릉은 그랬다.
감사할 것들을 발견할수 있는 여유
매장에서 30초거리에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가 있는 것, 다른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과장이라고 불러주며 나의 업무에 협조적인 직원들, 소속된 회사가 있다는 것, 숙소와 차량의 지원, 잠시 하던 업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업무들과 새로운 사람들과 새벽을 보내는 것, 남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오는 도시에 나는 언제든 여행객이 될수 있는 것. 나열할수 없지만 모두 감사한 일이다.
치열하고 뒤쳐지기 싫은 마음에 바쁘게 살아온 20대의 나에게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항상 여유 있는 삶을 꿈꿨다. 정확히 말하면 미뤘다. '조금만 더 지나면 나에게도 여유가 있겠지, 조금만 더 지나면 나에게도 이런 시간들이 생기겠지' 스스로를 격려하며 보내온 20대를 뒤로하고 30대가 되었다. 20대보다는 여유 있지만, 더 풍족한 여유를 찾는다. 돈으로 시간을 살수 없고,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는 여유는 없지만, 이제는 그 여유를 만들어간다. 시간이 흘렀고, 더 나이를 먹고, 환경과 사람을 여전히 탓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항상 내 안에서 문제를 찾아나간다. 여유는 누군가 만들어 주는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염색을 주기적으로 해야하는 나이의 엄마와의 대화에서 항상 감사하며 살자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습관처럼 한다. 좋은생각과 남을 위하는 마음, 개선 가능한 방향성, 후배들을 위한 마음, 제품의 아이디어, 좋은 마케팅, 사람을 보는 안목,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라 불리는 모든 긍정적인 것들은 전부 여유에서 나온다.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은 베푸는 방법을 모른다. 주변에서 문제를 찾고, 불평으로 가득하다. 항상 불만이 많고, 화가 가득하다. 남탓으로 인생이 점철되어 있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조금 더 고상한 여유가 언제쯤 완벽히 만들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여유는 특별할게 없다. 고단하고 힘든 삶속에서 형편에 맞게 친구 경조사를 챙기고, 한여름 퇴근길에 맥주한잔 마시고, 쉬는날에 생각을 내려놓고 편히 쉬어보고, 하고 싶은 일을 시간을 투자해서 해보는것, 직원들에게 한여름에 아이스크림 한개씩 사줄수 있는 것들 모두가 여유인데, 왜 그렇게 미뤄왔는지 모르겠다. 인생을 짧게 단면에서 바라보니 천국도 흑백이었고, 여유도 없을뿐더러 무소처럼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
강릉이 나를 심적으로 조금 더 풍성하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만들어 줄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흑백에 4년전 그날처럼 색이 입혀졌다. 세상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아니 예전에도 감사할 것들로 가득차 있었고, 나도 항상 여유로울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 더 멋있게 나이들어가기 위해.
모든 생각은 경험에서 나온다
강릉에 와서 보니, 하루에도 수십가지 업무에 부딪힌다. 새로운 기계,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정해가야하는 것들과 새로운 업무지시들과 직원 교육들이 그런것이다. 새로운 것들은 여전히 낯설고, 나는 매일 아침 그날의 업무의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정한다. 제품개발이 오늘의 가장 중요한 우선 업무일지라도 내일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업무로 순위가 밀려날때도 있다. 황당하지만 매일이 새롭고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모든 상황의 판단은 판단자의 경험에서 대부분 비롯된다. '일전에 이런 유사한 일이 있었는지'를 검토하고 이런 사례에서 어떤 결정이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었는지를 생각하는것에서 판단이 시작된다. 더 다양한 사례를 경험해보고, 더 많은 상황에 따라 대처를 하거나 해결해본 경험, 실패도 해본 사람이 더 잘 알고 실수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자신이 경험해본 것들에서 대부분의 답을 찾는다.
왜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하는지의 목적은 좋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이다. 좋은 경험은 조금 더 덜 실패할수 있게 인도하고 조금 더 후회없는 선택을 만든다. 지금의 강릉 컨설팅 파견이 미래의 어느날 나의 선택과 판단에 영향을 줄거라 생각한다. 내가 출근하고 퇴근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가며 보는 모든 것들, 생각한 것들, 결과물들, 일련의 모든 시간은 나에게 중요한 경험이 된다. 어떤 사건과 상황은 무궁무진하지만, 내가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면 누군가의 경험에서, 나의 경험에서 유사한 사례가 분명히 있을것이다. 생각을 만들어 가는 순간의 경험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내 자전거는 달린다.
조금 부족해도 모든것이 평범한 것이 낫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게임의 캐릭터처럼 누군가는 어떤 능력이 특화되어 있기도 하고 반면 누군가는 어떤 능력이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중에는 약한 모습을 일부러 감추려고 스스로 특화된 능력을 더 차별화 시켜가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약화된 능력에 투자하여 그 부분을 보안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주방의 구성원들도 이와 다를바 없다. 제과나 제빵의 한쪽 기술만 집중적으로 특화 시키는 사람, 유명한 제과점들에서 업무하며 이력서 관리하는 사람, 이직을 많이 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 분위기 메이커처럼 주방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등 가지각색이다. 책임자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마치 여러색깔의 사람들을 필요한 곳에 투입시켜 다채로운 색을 연주하는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해야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그만큼 모든 능력이 일정수준에 도달해 있어야 하며, 한 부분이 특별하게 모나지 않아야 한다.
모난 곳이 없다는 것은 모든 부분의 능력이 비슷하고, 순탄하게 잘 굴러간다는 소리와 같다. 한쪽으로만 특화 되어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은 한쪽 부분이 상식 이하거나, 비정상적일정도로 약화되어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할때도 있다. 누군가를 만나 상황과 노력에 의해 충분히 능력 조율이 가능하고, 때론 더 강화되고 약화 되기도 한다. 서로 상극인 능력들도 있다. 나는 이 부분이 선천적으로 어느정도 타고 난다고 생각한다.
잘 굴러가기 위해 어느 한쪽이 돌출되지 않도록 모든 능력을 고루 분산시키고 유지하는것에 집중하기만 해도, 그런 사람들은 그 모든 부족한 부분들을 주변인을 통해 보안할수 있다. 굳이 누구와 인생을 더 함께 하고 싶냐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모든 부분이 원만한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평범하고 원만하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때로는 포기할줄도 알고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굽힐줄도 알고, 알면서 모르는채 해야 할때도 있으며, 올바른 것에 대해 눈높이 맞춰 이해시키고 전달하기 위해 여전히 지금도 노력하는 사람이다.
강릉에 스며들다
3월 말쯤, 강릉에 도착했을때만 해도 바다바람에 제법 추웠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데 손이 시려울 정도였다. 마음도 그만큼 시려웠다. 비단 강릉의 문제가 아니였다. 모든 스트레스와 부적응의 문제를 강릉에 덮어씌울수록 내 자신만 초라해져갔다. 한달은 족히 걸렸다. 지하철이 없는 것과 배차간격이 멋대로인 강릉의 교통은 자차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주 골치아픈 일이다. 서울 동네에서 몇개씩 있던 편의시설들과 프렌차이즈 매장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만난 강릉사람들은 타지인에서 썩 친절하지 않았다. 익숙하지도 않은 숙소에 들어가는일이 곤욕이고 매장 직원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 생각해보니 프랑스 유학생활에 비하면 투덜거릴일도 아닌데, 자꾸 불평이 늘어났다. '피할수 없으면 즐겨보자,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분명 있을꺼야' 강릉도 나처럼 나를 받아드릴 준비가 필요했었을지 모른다.
고치고 싶지도 않고, 고칠수도 없는 습관은 강릉에서도 똑같았다. 직원들보다 30분가량은 일찍 가서 미리 업무준비를 한다. 인사를 먼저 건네고 한명씩 이야기를 하고 이름을 익혔다. 그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의 문제점을 경청하고 메모했다. 식사를 같이하고 먼저 웃어주고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칭찬과 낮아짐으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아 주방에 작지만 변화가 생겼다.
그들이 나를 도와주기 시작하고 나에게 의견을 묻고 제품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 입으로 지옥이라고 말했던 곳에서, 그 얼어붙은 공간에서 싹이 트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생각과 처해진 상황, 기술력을 논하지 않고 무작정 컨설팅이라는 명목하에 제품을 주입시켰다면 그들의 반감을 샀을것이다. 그것은 회사관계의 문제, 결론적으로는 나의 무능함이 되는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누구보다 가장 지혜롭게, 내가 가장 잘하는 것들로 그들과 동화되는 것이다. 그들의 변화로 나의 감정에도 봄이가고 여름이 오듯 선선한 바람 한줄기가 스며들었다. 모든 강릉의 단점들이 장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강릉도 나에게, 나도 강릉에서 서로 스며들고 있다.
제과사의 덕목 - 감정이입
강릉에 온 첫달은 휴무때마다 서울을 3번이나 다녀왔다. 특별한 약속이나 사정이 있던것은 아니였다. 첫번째 서울에 올라갈때 대표님께서 강릉에 오셔서 함께 서울에 올라갔다. 협업의 과정, 회사간의 관계적인 부분들에 대해 조금 더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이 실로 상당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것을 보고 받고 미팅하고 결정하는 대표라는 위치에서 이번 컨설팅은 의미가 크다고 하셨다. 배우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기 전에 완전히 그 캐릭터가 되기 위해 온전하게 그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한다고 나에게 이야기 하셨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것처럼 문제의 무게를 논할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도나 생각을 알기 위해, 실로 그 사람이 되보려고 했는지 생각해본다. 상대의 전략과 생각,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조차 모르고 전쟁을 이기기 바라는 무지를 범하다가 브레이크가 걸렸다.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라 대부분 자신의 상황에 자신의 생각으로 모든것을 판단하지만, 적어도 결정을 내려야하고 창의적이고 결과를 낼수 있는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왜 저 사람이 저런 생각을 할까?, 할수밖에 없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인정과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보는 감정이입. 신제품을 만들때도 내가 고객이 되어 그 제품을 먹는 상상을 해보는것. 내가 상상와 경험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문제와 숙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마치 내 인생에 새로운 파트에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야하는 배우 같은 느낌이다. 서울 올라가는 길이 짧고 유익했다.
내가 한달 남짓 그들과 함께 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어쩌면 원하는 것들이었고 답답한 부분들이었다. 많은 것을 바꾸고 대단한 것을 해줄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같은 존재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마음으로 먼저 손내밀고 부탁하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내 마음을 알아준다. 철옹성 같았던 사람들이 마음을 연다. 나의 시간을 분배하고 각자에 맞게 내가 눈높이로 다가가고 때로는 기다려준다. 주방에서 이제 제법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업무는 제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본질적인 가치와 사람의 도리, 스스로 자립할수 있는 능력을 알려주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조금만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3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면 이만한 평화가 없다. 여전히 일교차가 있지만 이제 반바지를 입어도 될 정도로 강릉의 5월은 여름맞이로 한창이다. 서울에도 이제 한달에 한번정도만 갈 예정이다. 스며들었고 감정이입이 되었고 차근차근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적응하고 있다. 점심시간이면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따사로운 햇살을 피해 송림의 벤치에서 점심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시간이 날때면 저녁식사도 종종 같이 한다. 그럴때는 그들의 이야기도 더 심도 있게 들어보고 나도 선배로써 내 이야기도 해준다. 집에 가는 길에 곤욕이었는데 강릉의 일몰을 볼 여유도 생겼다. 직원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과장님 오셔서 확실히 분위기도 바뀌고 체계도 많이 잡혔어요" 모두가 잘해주고 잘 도와준 덕분이다. 많지는 않지만 제품들도 테스트하고 만들어 내고 새벽마다 그들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재미도 생겼다.
소용돌이 가까운 곳은 상황이 다르다. 컨설팅의 본분을 잊으면 안된다. 여전히 양쪽 회사간에 중요한 업무 이야기들과 업무속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하루 아침에 업무지시가 바뀌기도 하고 재촉하기도 하고 갑자기 잊어버리기도 한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니 전부 보고가 되어야 하고 어느 하나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진행할수 없다. 주변에서 문제를 삼고 핑계를 만들면 그것도 큰 문제가 된다. 하루에도 생각의 소용돌이 안에서 여러모습으로 감정이입을 하고 다시 내 모습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는중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도 여유를 만들고 나를 더 받아드릴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일터가 여전히 희극이었으면 한다. 결과론적으로 그들이 컨설팅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하고 진짜 주방이 무엇인지 경험하면 좋겠다. 주방업무가 고되고 회사 생활이 쉽지 않고 온몸이 녹초가 되어도 "이 맛에 빵일 하죠, 이 맛에 디저트 만들어요"라고 웃으면서 말할수 있는 작은 꿈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상교육
나를 스쳐간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회사 대표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아끼는 두 팀장님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기억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잊혀져도 괜찮다.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내가 남들과 비슷하지 않다는 것이고, 내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고 적어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불과 5년전쯤만 해도 어떤 제품을 만드느냐에 집착했다. 심지어 어떤 제품을 자주 만들고 어떤 제품이 주력이 되는 제과점에서 일했는지에 따라서도 사람을 평가할때도 있었다. 배합표에 목숨걸고 허세와 자만심으로 점철되어 있던 시절이였다.
사람의 머리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생각은 교육이나 일상생활에서 대부분 만들어 진다. 그래서 흔히 일상의 작은것들에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경험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그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의 빵을 만든다. 한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가를 프랑스에서 알게 되었다. '직원이면 시키는대로 하면 되지'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상처입은 병사는 온전한 싸움을 할수 없듯이, 마음에 상처 받은 제빵사들은 그런 제품을 만들수가 없다. 왜 같은 배합표로 같은 경력의 사람들이 모여 제품을 만들어도 똑같은 맛과 모양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기술이 아니다. 제품을 대하는 태도와 이해도, 그리고 풀어내려고 하는 각자의 생각의 차이인것이다. 올바른 주방의 문화와 잘못된 것들에 피해받아 모난 마음으로 제품을 대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상처받지 않도록 더 스스로를 격려하고 손내밀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강릉을 완전히 떠나는 날 기차에서 미련과 후회가 없었으면 한다. 현재의 시간에 스며들어 그들을 통해 나의 페이지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써나가는 중이다.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 된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과장님 같은 사람 보기 쉽지 않죠.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쉽게 바뀌지 않을것을 아니까 다 알고 있어도, 안하는 것뿐이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 있을뿐이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을 통해, 나도 그들도 모두가 좋은 경험을 했으면 한다. 아직도 이 일이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들에게 작게나마 격려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