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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르찌르 Dec 31. 2018

7. 당신이 외로운 이유는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나타난 또 다른 20대 트렌드가 있다. '관계의 가심비'가 바로 그것이다. 가심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價性比)에 '마음 심(心)'을 더한 것으로,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행태를 말한다.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 '지금 나의 행복'이란 20대의 삶의 태도가 합해지면서 올해 소비시장의 트렌드가 됐다. 그런데 이러한 소비행태가 이제 인간관계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20대들은 "나를 혼자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대면으로 만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하고 연락하는 것조차 꺼려한다. 직접 만나고 연락하는 시간에 SNS에서 다른 사람의 일상을 관찰하거나 유튜브를 본다. 본인을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부르며 인간관계에서 스스로 소외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아싸들의 혼술과 혼밥은 이제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문화가 됐다.

  

인간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을 소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감정노동으로 여기는 20대들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지금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관계에 치중한다. 팍팍한 생활 탓에 관계에서도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사고가 확산된 것이다.


'관계의 가심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는 반려동물 시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보유 가구의 비율은 28.1%이다.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유로 1인 가구를 꼽는다. 혼자 사는 이들이 감정노동할 필요 없이 외로움을 해소해줄 수 있는 존재가 반려동물이라는 설명이다. 반려동물 중에서는 반려견이 24.1%, 반려묘가 6.3%로 아직 개를 키우는 가구가 훨씬 많다.



그러나 최근 SNS나 온라인 인기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면 특히 젊은 층에서 고양이의 인기가 두드러진다. 냥집사들의 일상은 온라인 인기 콘텐츠 중 하나이다. 실제 성장세로 따져보면 반려견은 5년 만에 1.5배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반려묘는 두 배를 넘어섰다. 고양이의 인기는 개보다 사람의 손길이 덜 필요한 데서 기인한다.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지내고 깨끗한 성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가심비 면에서 혼자 있으면 외로워하고 관리의 손길이 더 필요한 개보다 고양이가 낫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보다 더 나아가서 반려묘보다 가심비가 높은 반려식물이 인기라고 한다.

     

반려동물이 해줄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인간은 타인을 만나서 공감하고 위로받아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감정의 자양분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은 성숙해진다. 감정노동을 해서 힘든 인연들까지 껴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수가 적어도 서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주변에 있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관계를 피해서 남는 것은 스스로 온전히 견뎌야 할 외로움이다.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도 놓치게 된다. 내 일상의 감정이 풍부해지고 외롭지 않으려면 먼저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를 피하는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사회에서는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도 있다.



퇴직 이후의 삶을 취재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퇴직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는 세 가지가 '돈'과 '건강', 그리고 '친구'라는 것이다. 평생 직장생활을 해오던 사람들은 퇴직 이후 단절된 인간관계와 무료한 생활 탓에 외로움과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한다. 심할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친구를 찾지만, 곁에 남아 있는 친구는 적거나 없다. 아재들이 골프모임, 등산동호회 등에 몰려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을 말한다.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OECD가 2015년 발표한 '더 나은 삶 지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적 연계 부문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 또는 이웃이 있냐고 물었는데, 한국인은 72%만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OECD 평균 88%보다 16%포인트 낮은 수치다. 그리고 올해 또다시 OECD는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가 거의 꼴찌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순위가 낮았던 항목은 관계를 형성하고 지지해주는 공동체 의식이었다.

  

슬프게도 경제상황은 인간관계를 흔들어 놓는다. 혼밥하며 반려동물을 통해 외로움을 해소하는 가심비의 관계는 20대의 생활을 바꿔놓고 있다. 경제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20대들이 관계에 대한 생각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한국인의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한국인의 삶이 더 외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잠깐 고양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실 개보다 덜해서 그렇지 고양이도 혼자 두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특히 주인에게 정서적으로 밀착한 고양이는 주인과 떨어져 있을 때 불안증세를 보인다고. 나홀로 움직이며 사냥감을 노리는 고양이도 '혼자'라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나. 하필 이 글을 쓰는 날이 크리스마스여서 더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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