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찌르찌르 Dec 31. 2018

5. 너는 관대하다,
고로 지금만 행복하다

20대는 불투명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단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추구한다. 우리 사회에 저성장 기조가 뿌리내리면서 성장이 기대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곧 20대가 앞을 내다보고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는 의미다. 실제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올해 주식, 회사채, 국채 등 대부분의 금융상품 수익이 뒷걸음질쳤다고 전했다. 올초 한국 젊은 층 사이에서 투자 붐이 일었던 암호화폐까지도 말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어려운 20대는 지금을 위한 소비로 방향을 틀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투자해봤자 마이너스 수익률이니 예쁜 거 사고 맛있는 거 먹으며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어록 제조기'로 불리는 개그맨 박명수는 이러한 상황에 딱 맞는 어록을 추가해 20대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라고 했다.

 


신한은행 빅데이터 센터에 따르면 서울시 사회초년생 평균 월급은 203만 원이고, 월평균 소비수준은 150만원이다. 월급에서 소비 후 남은 금액은 53만원. 이 돈을 모아서 집을 사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올 연말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처음으로 8억원을 넘어섰다. 8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사회초년생인 20대는 126년을 모아야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물론 20대가 사회에서 경력을 쌓아가면 그에 맞게 월급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서울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고, 다시 고성장의 시대를 맞이해 쌈짓돈을 팍팍 불려줄 수도 있다. 이런 앞으로의 가정은 다 무시하고 현재의 기준으로만 따져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126년은 너무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이 82세인데 죽을 때까지 모아도 어림없다는 이야기이다. '티끌 모아봤자'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빠져있다. 매월 53만원을 10년 모았다고 가정했을 때, '53만원 X 120'이라는 수식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모은다는 행위의 이면에는 '복리 효과'가 있다. 복리란 말 그대로 이자에 이자가 붙는다는 뜻이다.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A가 적금통장에 원금 50만원을 넣어서 이자가 5만원 붙었다고 치자. 이후에는 55만원(원금 50만원+이자 5만원)에 이자 5만5000원이 붙고, 그다음에는 60만5000원(원금 50만원+이자 5만원+이자 5만5000원)에 더 큰 이자가 쌓인다는 것이다. 이자가 재투자되기 때문에 복리 효과는 예치기간이 길수록 커진다.

  


복리 효과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1626년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들로부터 맨해튼을 24달러에 사들인 거래에 관한 것이다. 만약 인디언들이 당시에 받은 24달러를 8% 수익률로 복리상품에 투자했다면 현재 약 30조 달러가 됐을 것이라고. 단돈 24달러가 만수르도 못 쳐다볼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다니 사람들이 복리를 '마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다시 앞에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매월 53만원을 10년간 모았다고 가정했을 때, 복리 계산(현 기준금리 적용)과 '53만원 X 120' 단순 계산의 결과는 6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벌어진다. 물론 현재와 같이 금리 자체가 낮은 상황에서는 복리 효과도 8억원짜리 아파트를 사주진 않는다. 티끌이 태산으로 커지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티끌을 모은 결과가 티클은 아니다. 이렇게 모은 티끌, 그 이상은 앞으로의 20대 삶을 지지해줄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넘어지거나 벼랑에서 떨어질 때는 이들을 받쳐줄 매트리스가 된다. 모두 아는 사실이겠지만 매트리스는 두꺼울수록 덜 다치고, 맨바닥보다는 얇은 게 낫다. 시작이 빠를수록 후회는 적은 이유다.

  

경기 침체기를 맞은 우리는 투자가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 이는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투자처를 찾기가 힘들다는 말이지, 돈을 모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상황이 나빠졌다고 돈을 모으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니라 회피다. 



그리고 돈을 모으지 않는 것만큼 걱정되는 건 빚에 대한 관대함이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빚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한 20대는 4년 전보다 60% 넘게 증가했다.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건수가 늘어난 것은 전 연령대에서 20대가 유일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비가 늘었다는 것은 20대가 빚에 관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빚은 쓴 만큼 갚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빚에도 앞서 설명한 복리가 적용된다. 빚에도 이자가 붙는데, 복리로 시간이 지날수록 갚아야 할 액수가 불어난다는 말이다. 금리 연 12%의 마이너스 통장에서 100만원을 썼다고 치자. 첫 달 1%, 1만원의 이자가 붙고 두 번째 달에는 101만원(대출금 100만원+이자 1만원)에 1%의 이자가 붙는 식으로 몸집을 불린다. 돈을 모을 때는 복리가 '마법'이지만, 빚을 졌을 때는 '부담'이 된다.

       

종종 '빚부터 갚아야 하냐, 아니면 본격적으로 돈을 모아야 하냐'고 물어오는 사회초년생들이 있다. 나의 답은 항상 같았다. 빚부터 빨리 갚아라. 

매거진의 이전글 4. YOLO 하다 GOLO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