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만남은 쉬웠는데 이별이 어려운지는 모르겠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던 건 ‘책’이었다. 수능 언어 지문을 풀 때마다 문학 영역이 나오면 그 몇 문단 안 되는 글을 읽는 순간이 제일 좋았다. 수능 준비 하면서 알게 된 소설을 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기엔 시간이 부족했으니, 대신 해설지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줄거리 요약본을 통해 소설 전체를 상상하곤 했다. 시험 걱정 없이 책을 쭈욱 읽으면서 이걸 공부로 삼으면 참 재미있겠다- 라는 투명한(?) 컬러의 마음 하나 가지고, 정시 가나다 학군에 모두 ‘국문학과’를 지원했고 당연히, 그리고 기쁘게 국문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1학년 때부터 전공으로 가득 채워 수업을 들었다. ‘현대소설 텍스트 읽기’ 수업은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수업이다. 대학 교재 특유의, 어설픈 복사지 종이를 엮은 단편소설 꾸러미. 그 소설들은 평소 쉽게 접하는 소설들과 좀 달랐다. 내용이 길고 복잡한 건 아닌데 뭘 말하는 건지? 작가가 도대체 어떤 얘길 한 건지? 좀 헷갈리는 소설이었다. 한 강의에 30명 즈음 됐나. 수업이 시작되면 그날 수업할 소설에 대해 다들 미리 읽고 온 감상을 짧게 얘기한다(잼썼어요~ 말고 이 주인공은 이런 감정에,, 이 작가는 이런 의도로,, 라는 식으로). 1개 소설에 대해 전원이 말하긴 어렵고, 몇 명 얘기하다보면 교수님이 끊고 본인이 해석한 논평에 대해 들려주신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하셨다.
“무조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쓴 책만이 좋은 책은 아니에요. 책을 통해 삶을 보여줘야지, 삶에 대해 설명해주는 게 작가의 역할은 아니거든. 마치 수학 문제 같은 책들도 있어요. 읽고 읽고 또 읽어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은 책들.”
술술 읽히는 문장, 누가 봐도 감동 받을 것 같은 스토리를 전달해야 좋은 책- 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학 동아리에 가입해 일주일마다 책을 읽고 다같이 대화하기도 했다. 내가 원하던 대학생활이었다.
전공 수업을 누구보다 열심히 듣고 꽉꽉 채워들은 총 4학기가 지나고 잠시 휴학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이 문학 공부로 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공부를 하는 내내 알고 있었다. 내겐 문학과 관련된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난 문학을 좋아했지, 문학에 대해 남들보다 잘할 수 있다거나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 같은 게 있진 않다는 거. 좋아하는 건 맞는데 이 길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좌절스러웠다. 물론 엉엉 울거나 슬퍼한 건 아니었다. 주변에 시나 소설, 또는 짧은 글을 써도 너무 잘 쓰는 학생들을 발견했을 때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다시 복학했을 때 얼른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했고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2년 전, 회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로 팀을 이동했다. 문학을 사랑한 것만큼 이 브랜드를 사랑한 건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내가 이 브랜드를 너어어무 좋아하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뭐 하나 좋아하면 온힘을 다해 좋아하고 관심 없으면 1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나이기에, 내가 뭔가를 좋아하면 주위에서 다 금세 알았다. 럭셔리 브랜드도 아니었고 성장이 눈에 보이는 브랜드도 아니었기에 왜 그 브랜드를 좋아하고 굳이 그 브랜드팀으로 가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좋아하는 브랜드에 2년 있어본 소감: 어느 순간,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때보다 더 별로라는 깨달음이 내게 달려든다. 이 정도로 표현하기엔 굉장히 과하다는 건 알고 있는데 정말 오바 3만 배 보태자면, 내가 한때 좋아했던 마음에 더 괘씸해서 맘에 안 들고 싫어지고 지치는 기분? 내가 멀리서 볼 땐 분명히 좋았는데 이 안에 들어오니 실상을 알면 알수록 별로인 것 같고 동기 부여 안 되는 기분- 회사 생활이란 게 어쩌면 이런 기분을 매일 느끼며 출퇴근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여튼.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국문학 전공도 내게 비슷한 기분을 주었을까? 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도 가고 쭉 공부를 이어갔으면 어느 순간, ‘아.. 해보니까 영 아니네. 그냥 독자로서 책을 좋아한 순간이 좋았나?’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실망)은 사실 ‘기대(expectation)’에서 왔다는 걸 떠올리니 금방 이해가 간다. 애초에 내가 좋아했고 기대했기 때문에 그만큼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더 미워지니까. 그럭저럭 괜찮겠거니, 나쁘지 않겠거니 하고 시작한 일에 대해서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은 적을 테니까.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첫날 만난 소개팅에서 비로소 내 인연을 만났다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다음에 만나니 별로였다면, 아무 기대 없이 두번 만난 사람보다 내게 더 큰 실망감을 주지 않는가.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만큼 성취감이 높잖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축복이야?” 라고 외칠 사람들도 세상에 많겠지?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상황에 처할 수는 없는 거니까 나는 그 행복의 성취에서 조금 반대편에 놓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세상 일은 그냥 그런가보다 싶을 것 같다.
무얼 하고 살면 행복할까? 난 뭘 하고 싶은 사람일까? 고민이 많아지는 요즈음..! 코로나 이후로 진짜 늘어난 습관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나 스스로랑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거. 내가 진짜 무얼 하고 싶은지 어떤 생각에 동의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려고 노력하는데 이번 질문엔 도저히 답을 못 찾겠다.자꾸 마음속으로 ‘신점 봐야돼.. 신점 봐야돼.. 신점이 무서우면 용한 사주라도 찾아볼까. 누가 만 30살 넘으면 신점 봐도 된다는데 볼까..’ 빙빙 읊조리는 중.
어렵다-! 시끌벅적 요란한 20대를 보내고 나니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30대가 왔나보다.
어서와, 30대는 처음이지? 이제 더욱 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네가 선택해야 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어- 라고 인생이 내게 말 거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용기가 없어서 셀프로 미안해진다. 실패는 하지 않으면서 도전은 해보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찾아보라고만 얘기해서 미안. 마치 광고주가 대행사 담당자에게 “우아하면서 신박하고 모던하면서 클래식한 면이 있고 새로우면서 우리 브랜드스러운 거.”라는 피드백을 하는 것처럼 내 스스로에게도 답이 없는 답정너를 하고 있네~ (-.-)
아까 저녁에 맥주 한잔 하길 잘했다. 아니면 이 밤 열두시에 그냥 자는 게 억울할 뻔했어. 아까 마신 맥주를 회상하며 맘속 나 자신과 짠~하면서 오늘은 일단 자야지. 오늘의 고민은 내일의 내가 마저 해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