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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May 10. 2022

은희경 작가 <장미의 이름은 장미 >

오랜만에 독서 감상문을 적어볼까나 

오랜만에 서점에 다녀왔다. 작년 8월부터 아크릴화 그리기 라는 새로운 취미를 얻고 나서 한동안 독서에 소홀했다. 오늘은 재택 근무 마치고 뭐할까 하다가 집 근처 영풍문고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2명의 작가 - 김영하, 최은영 - 의 신간이 나왔길래 바로 집어들고 앞부분을 읽어나갔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확 끌리지 않았다. 다시 도서 선반으로 갔는데 눈에 띈, 은희경 작가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이 작가의 <새의 선물> 책을 읽다가 우울의 늪에 빠져 끝내 다 읽지 못한 경험이 있어서 큰 기대 안 했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감정을 쏟아내거나 무언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려는 느낌의 소설은 싫다. 딱히 눈에 띄는 소설이 없는데 <장미의 이름은 장미> 한 번 읽어나 보자, 하고 서점 바닥에 털썩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다.

 총 4편의 단편 중 2편만 읽은 상태라 책 전체를 읽으면 내 서평이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딱 2편을 읽자마자의 느낌을 기록하고 싶어서 브런치 앱을 켰다.


 01.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내 상황을 먼저 이해해달라고 주장하지 않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가능할까? 내 식대로 남을 평가한 뒤 '난 이런 이유로 이런 행동을 했고 넌 내 행동을 정당하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게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 아닐까? 잡지사 2년 계약직을 마친 승아는 갑작스레 민영이 사는 뉴욕으로 비행기표를 끊는다. 인스타그램에서 봤을 땐 분명 멋지고 세련된 삶을 살고 있는 줄 알았던 민영. 실상은 달랐다. 몇 백년도 더 되어보이는 낡은 아파트, 커텐을 치지 않으면 건너편 빌딩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녀의 집, 거실에 에어컨이 없어 한낮엔 가스레인지 하나 작동시키기도 부담스러운 환경. 그런 민영이 안쓰러워 승아는 마트에서 채소를 잔뜩 사서 페트병에 일주일치 해독주스를 만들어준다. 뜨거운 한낮 내내 가스불로 채소를 익히고 삶고 했으니 집이 얼마나 뜨겁겠어. 퇴근하고 돌아온 민영은 집 꼬라지를 보더니 기겁을 하고 확 짜증을 낸다.

 "누가 먹을지도 안 먹을지도 모를 이 주스를 이만큼 만들어달래?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승아는 서운하다. 집이 뜨거운 것만 보이고, 이 뜨거운 집안에서 널 위해 해독주스를 만든 나의 노력은 보이지 않니? 하고. 서울에서의 생활이 고달파 도망치듯 미국으로 온 승아인데 어쩐지 더 서운해진다. 잠깐 여행으로 온 거니까 정 붙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는 미국 땅, 그리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친구라 기대를 하고 왔는데 현실은 차갑기 그지없다.

 민영 역시 사정은 있었다. 승아가 미국에 도착하기 직전, 자신이 혼자 좋아하던 미국인 친구 마이크와 사이가 쫑나버린 것. 그것도 찜찜한 방식으로 대차게 까였다. 취업도, 직장도 쉽지 않았던 민영은 마이크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단순한 친절이었는지 민영의 착각이었는지 마이크는 민영에게 큰 관심이 없다. 차이는 과정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도 듣고 서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의 차이까지 겪은 터라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스러운 상황에서 승아가 미국에 찾아온거지. 별로 기분 좋은 일도 없고 미국에서의 생활을 평가 받고 싶지도 않았기에 일부러 승아와의 시간을 피한다. 일찍 퇴근하고도 퇴근 안한 척하면서.

 둘 중 누구에게 잘못이 있냐고 하면 딱히 누구라고 말하기 어렵다. 단지 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토록 관대하고 타인에겐 냉정한가? 내 노력만 보이고 타인의 상황은 전혀 보이지 않는가? 의문이 들 뿐이다. 작가가 소설에서 보여주듯, 인간이 이기적인 속성을 유지한다면 관계는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다. 즉, 관계에 대한 노력 없이는 너와 나는 평생 만날 수 없다.


 02. 장미의 이름은 장미

 첫번째 단편 소설은 좀 쉽고 직관적이었다면 두번째 단편 소설이 더 의미를 곱씹어볼 만해서 좋았다. 

 마흔 여섯의 나이, 한국에서의 삶이 피곤하고 지겨워져 회피하듯 떠나버린 해외 연수. 그곳에서 세네갈 출신 흑인 청년 마마두를 만난다. 둘 다 별로 친구가 없고 내성적이라 수업에서도 몇 마디 안 나누고 헤어지기 일쑤였는데 카페테리아에서 우연히 몇 번 만난 뒤로는 가끔 점심도 함께 하며 친해진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마마두가 '나'를 피하고 결국 둘은 어색한 사이로 종강 수업을 마친다. 소설은 철저히 1인칭 - '나'의 시점으로 쓰였기에 처음에는 '마마두가 갑자기 왜 저래?'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가 카페테리아 테라스에 혼자 앉아있다가 어떤 거지의 구걸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그가 쟁반에 있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쏟아버린 적이 있는데 그곳 건너편에 있던 마마두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황급히 도망가버리는 순간도 있었다. 마마두 의리 없는 놈! 이라고 생각했다가 마마두가 왜 그럴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라는 사람이 했던 행동이 보였다.

 어차피 잠깐 떠나온 곳이니까, 평생 살 곳도 아니니까- 하는 마음에 8주 수업 내내 사람들에게 건성으로 대했던 '나'. 영어 실력이 서툴다는 좋은 핑계까지 있었으니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에 항상 거짓말로 대충 둘러댄다. 요리에 관심 없지만 내 취미는 요리라고. 주말에 뭐 했는지 란 질문엔 그냥 이래저래 보냈다고. 마마두랑 카페테리아에서 둘이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마두는 나름 자기 얘길 털어놨는데 '나'는 한국에서의 삶이라든가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한번도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와인이랑 요리 좋아한다고 했죠? 쿠킹클래스 초대권 있어요, 당신에게 선물할게요." 라고 마마두가 서윗하게 제안했는데 (물론 둘은 10살 넘게 차이 남. 로맨스 느낌의 대화는 전혀 아니었음) '나'는 '내가 요리와 와인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영어라 못 알아들을 때 대충 yes yes 했는데 그래서 오해했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쿠킹클래스엔 말도 없이 참석하지 않는다. 또 어느 날은 마마두랑 스쿨 카페테리아 말고 밖에 나가서 점심 먹자고 하더니 생각보다 비싼 빵집에 데려간다. 마마두가 본인이 계산하겠다고 지갑을 열었지만 그가 가진 현금으로는 모자랐고 '나'가 신용카드로 긁으며 사준다. 이 순간에도 마마두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까? 안그래도 흑인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차별의 시선도 많이 받고 위축되어있는데 '나'의 태도가 무례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충분히 마마두를 배려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 날부터 마마두가 '나'를 피하기 시작할 때도 '나'는 큰 관심 갖지 않는다. 그냥 멀어지나보다- 하고 냅둔다. 그런 사람에게 마마두는 더욱 마음을 주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겠지. 그리고 작문 수업 종강날, 짝꿍인 마마두와 '미래의 우리'에 대해 1편의 완결된 작문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나'는 그 과제 역시 대충 거짓말로 얼버무린다. 그리고 뒷부분을 마마두가 이어서 작문하는데 '나'가 미래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꼬집은 뒤 서로가 함께 하는 미래의 한 장면을 삽입하여 '나'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없이는 진정한 관계를 만들 수 없다. 내 시선은 어쩔 수 없이 나를 향하기 쉽기에 더욱 더 타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한국에서의 삶이 실패했다-는 판단을 안고 떠난 해외 연수였기에 쉽게 누군가에게 정 붙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가 성의 없게 대한 관계에 대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거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받은 상처는 어느 순간 나를 상처 입힌다, 그게 어떤 방식이든. 서로 완전히 배려하면서 절대 갈등을 일으키지 말자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 기만으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전혀 어려운 책도 아니었고 술술 읽히면서 이런 저런 생각할 거리를 줘서 좋았다. 한 2시간 반을 서점 바닥에 쭈그려 앉아있었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람도 선선하고 편안하게 가라앉은 기분이 참 좋았다. 요즘 그날 그날의 순간을 즐기느라 너무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살짝 했다 >< 존재 자체는 원래 한없이 가벼운 거니까 조금이라도 무게감을 더하기 위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암..그러치ㅎ.. 그리고 그런 시간과 생각을 주는 건 책인 것 같고. 또 재택 근무 끝나면 바람 쐴 겸 서점으로 놀러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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