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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Oct 13. 2018

[로마의 평일 11] 식재료에서 느끼는 친근함

먹는 문화가 비슷한 두 나라 


이탈리아에서 일상을 살며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거나 현지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간간히 우리나라의 먹는 문화와 공통점을 발견하곤 한다. 


여기 생활이 이제 만 1년 반에 가까워지는데 사실 내가 작정하고 이탈리아 食을 먹을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출근하며 애들 도시락까지 싸줄 정성은 부족한지라 두 아이들은 학교 급식을 신청해서 먹는다. 식어빠진 샌드위치보다는 따뜻한 파스타 한 그릇이 훨씬 나을 것 같아 그리 했는데 덕분에 일주일에 닷새간 점심을 파스타로 먹고 오는 아이들은 평일 점심 이외에 파스타를 먹는 건 일체 거부한다. 그러니 가족이 다같이 먹는 식사 시간에는 피자, 파스타, 빵 등의 양식은 안될말이거니와 오히려 로마에 와서 매끼 밥이나 국, 국수 등의 한식을 고수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식단을 유지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서울서도 안먹던 김치를 여기서 더 가열차게 찾으며 맛을 알아가고 있다. 왜 김치 만들기도, 사기도 어려운 곳에서 김치 맛을 깨닫는 건지는 조금 의문이다만, 그래도 매운 음식을 더 잘먹게 되니 한결 요리하기가 편하긴 하다. 


어찌됐든 줄기찬 한식 식단을 위해서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보면, 그리고 가끔 이탈리아 식당에 나가서 먹다보면 의외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식재료나 취향이 보여 신기하게 느낀 것들이 있다.


고기 중에는 삼겹살이 단연 돋보인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에서는 베이컨처럼 얇게 썰어놓은 돼지고기는 많지만 딱 우리나라 삼겹살구이용으로 미리 재단되서 나오는 고기는 많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서는 일부러 삼겹살 부위를 사려고 한인슈퍼 가서 더 비싼 냉동 돼지고기를 사오기도 했었다. 근데 여긴 정말 너무 우리 입맛에 맞게 삼겹살 부위가 Pancetta 라는 이름으로 정육 코너마다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래서 집에서 삼겹살을 자주 구워먹는 행복한 일상을 영위 중이다. 기름 좀 튀는건 닦으면 되니까. 


특수부위인 양, 곱창, 도가니, 꼬리. 
동네 슈퍼에 널려있는게 양과 곱창이요, 곱창으로 만든 요리가 생각보다 일반 식당에 보편적이다. Trippa alla romana 는 로마식 양곱창 요리인데 궁금증에 한 두번 시켜보았으나 양곱창의 느끼함을 가려줄 매운 맛이 부족하여 입맛에 아주 잘 맞진 않았지만, 그래도 괜히 반가운 느낌. 



우리랑 또 비슷하게 먹는 부위는 긴긴 시간에 걸쳐 오래오래 찌거나 익혀서 먹는 꼬리찜이 있다. 꼬리찜 내는 식당은 많지 않다는데 어딘가에서 꼬리찜 스페샬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이틀 전 삼일 전부터 예약하고 줄서서 먹으러 가는 사람도 많댄다.


고기에 곁들여 나물 종류 많이 먹는 것도 비슷한데 우리랑 완전히 같진 않아도 길쭉한 야채를 데쳐 익혀서 양념해 반찬처럼 주식에 곁들여 먹는 것도 은근히 유사한 식습관이다. 샐러드만 주로 먹는 다른 양식에 비해서 일단 비주얼부터가 비슷하다. 치코리아부터 푼타렐라, 브로콜레띠까지, 뭔가 길죽길죽한 야채를 살짝 볶아 나물처럼 먹는 습성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과일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감이다. 감 먹는 나라 생각보다 많지 않고, 먹어도 우리처럼 생으로, 묵히고, 얼리고, 말리고 등등 다양하게 먹는 곳 많지 않다. 게다가 사실 우리나라는 예술문화, 생활문화의 큰 자락을 차지할 정도로 감이 중요하다. 감물염색, 감 문양 단청 장식, 호랑이와 곶감, 감 많이 먹으면 변비 걸린다는 둥 문화재나 생활습관 설명하다 보면 의외로 감을 설명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럴때마다 다양한 외국 사람들은 감 Persimmon? 아... 감... 하고 알아듣는 표시를 내곤 했지만 사실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로마와서 가을을 나보니 여기 사람들 감을 많이 먹고 시장에서 너무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 세상 반가웠다. 여름 내내 비가 많이 온 올해는 복숭아, 자두, 살구 등 온갖 과일이 다 참 맛이 없었는데 드디어 가을이 되어 나온 감은 마치 추석 때 먹는 것마냥 달고 부드러워서 오랜만에 과일 먹으면서 행복함을 느꼈다. 


기후 비슷하고 수확하는 식재료가 비슷하기에 빚어지는 현상이고 어찌보면 사람 사는거 다 비슷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생활 중 예기치 않았던 데에서 발견하는 비슷함에 괜히 웃게 되고 정 붙이게 된다. 비록 내가 가장 행복했던 금요일 저녁 식단은 돼지고기 김치찜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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