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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타이머 면접에서 마주한 현실

내겐 너무 유익한 팩트폭격

by 젊은 느티나무

드디어, 파트타이머 면접 제의 연락이 왔다.

정규직 입사 면접도 아니고 파트타이머, 그것도 면접 보러 오라는 건데 왜 이렇게 반가웠는지.


아르바이트는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뤘었다. 하루종일 일해도 월급 받다가 최저시급 받으려니 일할 맛도 안나고, 구직을 겸해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기도 어려워 주저했었는데, 만고의 고민 끝에 지원서를 넣어도 연락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통 나처럼 회사 경력이, 특히 오래 다닌 회사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알바용 이력서(아르바이트 이력만 넣거나 이력을 축소한)를 따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야 사장님들도 부담이 없을 거라고. 그땐 그 생각을 못했다.


평상시에 좋아하는 서점이 있었다. 가깝진 않지만 그 서점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가 멋진 곳이었다. 한 번쯤 서점에서 일해보고 싶었던 로망도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면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침, 머지않아 그곳에서 파트타이머 채용 공고가 났다. 나는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력서를 새로 제작하면서까지 몰두해서 이력서를 만들었고, 지원했다. 사실 근무일 조건이나 위치는 그다지 원하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바라던 곳에서 가볍게 일해볼 수 있다니 좋을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가볍게 생각했었는지 따로 자기소개서 작성도 없이 알바 채용 사이트에 저장해 둔 이력서만 보냈었는데 그래서 늘 탈락했던 건지.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보낸 이력서가 괜찮았는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 면접 제의가 온 곳이 내가 원하는 곳이라 너무 좋았다. 운명적이다 싶었다. 이왕이면 좋은 인상의 사람과 일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열심히 단장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한 번의 이탈 없이 항상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했었다. 아르바이트 시급이 얼마 하지도 않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가야 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였지 그 이상의 가치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는 늘 하던 동네 서비스직 알바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 경험을 위해 쉬고 있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새롭고 내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유익하거나 아님 정말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거나 재미있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그래서 동네가 아닌 곳들도 많이 지원했었다. 밤에 하는 아르바이트는 원하지 않았었는데 LP 바에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연락은 안 왔다..) 이곳도 대중교통으로 가야하는 꽤나 먼 곳에 있었다. 마지막 아르바이트 면접은 대학생 때라, 너무 오랜만에 아르바이트 면접이었다. 그리고 그간 동네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말이 면접이지, 이상한 사람만 아니면 뽑히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꽤나 긴장이 되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채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굉장히 동기부여가 되어서 그 이후로는 생각의 방향이 조금 바뀌었을 정도이다. 완전히 요즘 말로 '팩트폭격'이었는데 그 방식은 무척 젠틀하고 너무도 정확하고 부정할 수 없는 팩트폭격이었다. 우선, 면접 보는 두 분은 아르바이트 면접임에도 본인들의 성함을 이야기하며 본인들을 소개하며 면접을 시작했다. 사무실도 깔끔해서 내가 알고 있던 그 서점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그들은 크게 두 가지 팩트로 나를 찔리게 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이곳의 특성상 단기로 금방 제품의 특성을 외우고 손님들에게 안내할 수 있지 않아서 (외우고 알아야 할 것이 많음) 장기 근무가 가능한 사람을 뽑고 있다. 지원자분(나)의 경우 전 직장에서의 경력이 좋아서 특별히 손대지 않아도 알아서 잘해주실 것 같고 더할 나위 없지만, 사실 파트타이머 채용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의 응대 및 관리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되지 그 이상의 스펙은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오래 꾸준히 함께 일해줄 직원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취준생이나 휴학생 같이 잠깐 쉬고 있는 사람들 보다는 본인의 정기적인 업무가 있고 남는 시간에 부수입으로 일하려고 하는, 이를 테면 예술 분야 프리랜서들이라던지 그런 사람들이 잘 맞아서 이전 파트타이머들도 되게 오래 함께 했었다. 지원자 분은 이 분야(전 직장)에 이렇게 오래 일했으면 같은 분야 내에서 구직이 금방 될 것 같아서, 오래 일하실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 맞는 말이다. 나라도 해당 파트타이머 자리는 워낙 바쁜 시간대라 계산해 주고 응대해 주면 되는 건데 화려한 스펙이 장착된 불안정한 사람들보다는 그냥 성실하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거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정규직 구직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직장이 구해져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지 확실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분야를 바꿔서 지원 중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둘째는 서점이라는 특성, 그리고 이 서점의 경우 경험 삼아 일해보려고 지원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어느 영화사 대표님이 지원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재미있어 보이고 좋아보여서 지원하는 지원자들이 꽤나 많은데, 경험 삼아 지원했다가 금방 관두고 이런 것을 원치 않는다. 진지하게 자신들과 함께 오랫동안 합을 맞춰줄 사람을 원한다.

-> 이건 나한테 직접적으로 하는 팩트 폭격은 아니었지만 사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맞다. 나도 서점에서 일하는 경험이 재미있을 것 같고, 이곳에서 다루는 책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에 지원했다.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한 건 아니다. 일하면 최선을 다해 일하겠지만 어쨌든 마음가짐은 그러했다. 생각보다 이 분들은 진지하게 오래 일할 식구를 원하는 느낌이었고, 그건 현재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정말 나이스하고 젠틀하게, 본인들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거기에 내가 너무 찔려버려서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아 그렇죠.. 대답하면서 아, 나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아니라고, 오래 잘해보겠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면접장을 나왔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뭔가 정신을 차리게 되는 느낌이었다. 면접이 오전 시간이라 그 먼 곳에서 오전에 집에 돌아가려고 하니 나온 게 아깝기도 하고,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혼술을 하고 싶었다.


그날은 날씨가 정말 더웠고, 혼술을 할 곳을 찾아 헤매던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다 때려치우고 그냥 집이나 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꿀꿀한 기분을 집에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찾다 찾다 결국은 동네로 돌아와 작은 막걸릿집을 가기로 했다. 아직 열기 전이라 근처 양꼬치집에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요리와 맥주 한 병을 마셨다. 그곳엔 손님이 나밖에 없어 상념에 빠지기 좋았고, 나는 양꼬치집에서 내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래, 아르바이트는 소용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한 거라면 차라리 경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단기 계약직을 하면서 구직활동을 이어나가자. 딱 한번 본 아르바이트 면접이 내게는 굉장히 도움이 되었던 느낌이라 나는 참 운이 좋구나 생각했다. 막걸리는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아르바이트는 접어두고 다시 구직의 세계로 들어서보자고 생각했다.




2024년 6월 중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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