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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Jan 11. 2023

다원주의자 김수영 : 토끼

김수영은 1950년에 탈고한 「토끼」 에서 개인과 전체, 가족과 민족 사이의 갈등을 제시한다. 화자는 “토끼는 입으로 새끼를 뱉으다”라는 이상한 말을 던진다. 그리고 토끼가 태어날 때부터 뛰는 훈련을 받는 운명에 있었다고 하면서, “어미의 입에서 탄생과 동시에 추락을 선고받는” 존재라고 덧붙인다. 그가 토끼의 긴 “앞발”이나 큰 “귀”, 붉은 “눈”보다 “입”을 강조하는 것은 입이 음식을 먹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먹고살기 위해 힘들게 뛰어다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있다.


그가 “이태백이 놀던 달 속에서 방아”를 찧던 것보다 입에서 탄생되었다는 것이 토끼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말하는 것도 입으로 먹어야 살 수 있는 물질적 생활난을 해결하는 일이 “이태백이 놀던 달”로 상징되는 초월적인 정신을 추구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인간은 한편으로 초월적인 정신을 추구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진 존재이면서, 한편으로 입으로 먹어야 살 수 있는 육체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가 자연이 “몇 사람의 독특한 벗들”과 함께 “이덕(異德)”을 주고 갔다고 말하는 것도 초월적 정신만이 아니라 개인적 생활 능력도 자연이 부여한 덕의 하나로 긍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여기서 ‘독특한 벗’은 1954년의 산문 「나와 가극단 여배우와의 사랑」에서 쓰고 있듯이 해방 직후에 함께 “간판쟁이”가 되려고 했다던 초현실주의 화가 P(박일영)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에 “시는 조선은행 금고 속에 있는 거야!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살리기 위하여 최소한도의 돈이 필요해!”(65)라고 외쳤던 P처럼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초월적인 정신만 추구하지 말고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일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집 뜰앞”에서 “하얀 털을 비비며 달빛에 서서” 있는 토끼, 즉 초월적인 정신만 추구하면서 가족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너의 새끼를” 보여 달라고 주문한다. 이것은 가장으로서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재조(才操)”를 보여줌으로써 자연이 부여해 준 또 하나의 덕을 실천하라고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생활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2부에서 그는 “토끼가 살기 위해서는 / 전쟁이나 혹은 나의 진실성 모양으로 서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기 위해 뛰어다니다가도 잠시 멈춰 서서 전쟁과 죽음이나 진실성 같은 정신적 가치도 추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토끼는 “캥거루의 일족”처럼 잘 뛰어다니지 못하고, “수우(水牛)나 생어(生漁)”처럼 넓은 바다에서 “음정을 맞추며 사는 법”을 습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고개”를 들고 서서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우리 민족은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종족들보다 더욱 진실한 민족정신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는 특히 “몽매”와 “연령”으로 인해 먹고사는 생활에만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활의 무게가 무거워지면 정신적 가치를 잃어버리고 물질적 가치만 추구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우주를 상징하는 “별”과 “또 하나의 것”을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것”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곡선” 같은 것, “초부의 일하는 소리”, “바람이 생기는 곳”으로 흘러가는 새소리와 갈대소리로 구체화되기 때문에 면면히 이어온 민족의 전통과 정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물질적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뛰어다니기만 하지 말고, 고개를 들고 멈춰 서서 우주적이고 민족적인 정신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올해 겨울에는 돈을 상징하는 “눈”이 없어 먹고살기가 어렵다 보니 민족적인 정신을 추구하면서 “은거”하기가 어렵다고 한탄한다. 지금은 생활난이 너무 심해서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는 “하아얀 것”을 보면서 “불이다 산화(山火)다”라고 외치면서, 백의(白衣)로 상징되는 우리의 민족정신이 산불처럼 일어나가기를 소망한다.


김수영은 1부에서 개인적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녀야 하는 육체적 인간의 운명을 제시하더니, 2부에서는 진실성 있게 살기 위해서 민족정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영혼을 가진 인간의 또다른 운명과 사명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토끼는 육체와 영혼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인간 존재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토끼=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질과 정신, 가족과 민족을 모두 긍정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해야 하는 다원적 존재라는 것이다. 김수영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려는 자유주의와 민족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려는 민족주의 사이에서 긴장을 추구했던 다원주의자이다. 



「토끼」(1950)


   1


  토끼는 입으로 새끼를 뱉으다


  토끼는 태어날 때부터

  뛰는 훈련을 받는 그러한 운명에 있었다

  그는 어미의 입에서 탄생과 동시에 추락을 선고받는 것이다


  토끼는 앞발이 길고

  귀가 크고

  눈이 붉고

  또는 ‘이태백이 놀던 달 속에서 방아를 찧고’……

  모두 재미있는 현상이지만

  그가 입에서 탄생되었다는 것은 또 한번 토끼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은 나의 몇 사람의 독특한 벗들과 함께

  토끼의 탄생의 방식에 대하여

  하나의 이덕(異德)을 주고 갔다

  우리집 뜰 앞 토끼는 지금 하얀 털을 비비며 달빛에 서서 있다

  토끼야

  봄 달 속에서 나에게만 너의 재조(才操)를 보여라

  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너의 새끼를


   2


  생후의 토끼가 살기 위하여서는

  전쟁이나 혹은 나의 진실성 모양으로 서서 있어야 하였다

  누가 서 있는 게 아니라

  토끼가 서서 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캥거루의 일족은 아니다

  수우(水牛)나 생어(生漁)같이

  음정을 맞추어 우는 법도

  습득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고개를 들고 서서 있어야 하였다


  몽매와 연령이 언제 그에게

  나타날는지 모르는 까닭에

  잠시 그는 별과 또 하나의 것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것이란 우리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 곡선 같은 것일까


  초부(樵夫)의 일하는 소리

  바람이 생기는 곳으로

  흘러가는 흘러가는 새 소리

  갈대 소리


  ‘올 겨울은 눈이 적어서 토끼가 은거할 곳이 없겠네’


  ‘저기 저 하-얀 것이 무엇입니까’

  ‘불이다 산화(山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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