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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Jan 11. 2023

다원주의자 김수영

한국문학과 좌우 이념 대립


한국 사회에서는 시인이나 소설가 등의 문학예술인들이 현실 정치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 근대문학이 초기부터 좌우 이념 대결의 중심에 있었고, 특히 좌파 문학인들이 문학의 선동적인 힘을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는 것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국에서 좌파 계급문학은 일본 식민지 지배 상황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1919년 3·1 운동 이후 당시 러시아 혁명으로 구체화된 마르크스주의와 결합되면서 조직적으로 확대된 것이 바로 계급문학운동이다.


식민지 시대 계급문학운동은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의 결성과 함께 조직적으로 실천되기 시작했다. 카프의 이념적 노선과 그 실천 방법을 규정해 놓고 있는 <무산계급 예술운동에 대한 논강>(1927)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조선 민중의 민족적 정치 투쟁을 위해 문학을 비롯한 예술운동이 무기가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예술운동은 정치투쟁을 위한 투쟁예술의 무기로서 실행된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은 대중에게 이 투쟁 의식을 고양하며, 이것의 교화운동을 위하여 조직하며, 그리하여 우리는 무산계급예술운동의 역사적 임무를 다할 것이다."


당시 카프의 핵심이었던 박영희와 김기진의 내용 형식 논쟁에 대해 권영민 교수는 두 가지 차원에서 계급문학운동의 이념적 지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한 논쟁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계급문학의 기본적 성격 문제이다. 박영희는 이 논쟁의 방향을 소설의 형식이나 창작의 요건과는 전혀 상관 없이 계급문학의 이념적 성격에 대한 논의로 바꿔 놓고 있다. 그는 투쟁기의 계급문학은 그 형식적 완결성보다 의식과 이념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둘째로는 계급문학운동의 이념성에 대한 강조이다. 계급문학운동의 초창기에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투쟁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던 박영희는 내용 우위론(정치 우위론)을 통한 투쟁성의 강화를 우선적으로 중요시하고 있다. 그는 문학적 형상성이나 예술의 섬세함보다 계급적 투쟁 의식을 내세우기 위하여 극단적인 형태의 내용 우위론을 취하였다. 그의 내용 우위론은 집단적이고도 조직적인 성격이 중시되기 시작한 초창기 계급문학운동에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이념적인 지표를 제시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1, 318-419)


한국 근대문학은 초기부터 좌우 이념 대결의 중심에 있었다. 앞으로 신냉전시대 좌우 이념 대립이 심화될수록  문학예술운동을 정치투쟁을 위한 투쟁예술의 무기로서 실행하고자 하는 좌파 문학인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지금 한국의 정치공간을 지배하는 적대적인 좌우 진영전쟁을 합리적인 정책경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제안한 중대선거구제 개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문학예술계를 비롯해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좌우 이념투쟁을 벌이고 있는 각 분야에서 다원주의적 사유가 확산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좌파의 계급문학론에 대응한 우파의 순수문학론은 자본과 노동,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등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엄연한 현실을 부정하고 이로부터 도피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능했다.


김수영은 사회주의를 위한 정치투쟁의 선동 무기로 예술을 활용했던 좌파나 문학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려고 애썼던 우파가 아니라, 좌우 양극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했던 다원주의 중도파이다. 좌파 문학인들이 김수영을 내세우면서도 민중성이 부족하다느니 여성 혐오니 하면서 비판을 아끼지 않는  이유도 그가 극단적인 좌파가 아니라 다원주의 중도파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김수영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원주의 중도파 김수영


김수영은 리얼리스트인가. 김수영은 리얼리스트이면서 리얼리스트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김수영은 모더니스트이면서 모더니스트가 아니다. 김수영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경계를 넘나든 다원주의적 중도파이기 때문이다.


김수영을 리얼리스트의 테두리에 가두어 놓고 한계를 지적하는 일부 좌파의 평가나 반대로 김수영을 모더니스트의 테두리에 가두어 놓고 한계를 비판하는 일부 우파의 평가는 모두 아전인수식의 일면적인 해석이거나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방기 문단은 좌파의 민족문학과 우파의 순수문학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김수영은 1965년의 산문 「연극 하다가 시로 전향-나의 처녀작」에서 “나의 처녀작 얘기를 쓰려면 해방 후의 혼란기로 소급해야 하는데 그 시대는 더욱이나 나에게 있어선 텐더 포인트(Tender point, 압통점)다.”라고 쓰고 있다.


그는 “당시의 나의 자세는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닌 그야말로 완전 중립이었지만, 우정관계가 주로 작용해서, 그리고 그보다도 줏대가 약한 탓으로 본의 아닌 우경좌경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422)라고 고백하고 있다.


당시 문학계에는 극단적인 좌우 대립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모더니스트들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박인환과 김경린, 김병욱 등 “새로운 도시파, 2세대 모더니스트, 중간파 계열 등의 정체성”을 보여 주었던 「신시론(新詩論)」 동인들은 외래 문명의 수용을 통해 새로운 시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김수영은 앞의 산문에서 신시론 동인들 간에도 치열한 좌우 대립이 있었음을 회고하고 있다. 당시에 박인환과 김경린 등은 “정치도 현실인 이상 그리고 시인이 현실 위에 서 있는 이상 새삼스러이 정치를 말함은 위선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정치 현실을 외면하고 현대 문명의 ‘세계적 동시성’을 강조했다.


이에 반해 김병욱은 “이게 민족의 현실을 뚫어지게 보고, 그에 대응하려는 새로운 시운동 잡지냐, 모더니즘 플러스 예술지상주의가 아니냐?”라고 비판하면서, 「신시론」 의 두 번째 동인지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서 김경희와 함께 탈퇴했다.


김수영은 동인지에는 참여하면서도 “그러지 않아도 인환의 모더니즘을 벌써부터 불신하고 있던 나는 병욱이까지 빠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그만둘까 하다가 겨우 두 편을 내주었다.”(424)라고 밝히고 있다.


김수영이 박인환의 모더니즘에 대해 불신한 이유는 김병욱과 마찬가지로 신시론 동인들이 당면한 민족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가 박인환의 우파적 세계주의와 김병욱의 좌파적 민족주의 사이에서 다원주의적 중도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김재용도 “이 무렵에 김수영은 박인환이 행하는 문학적 경향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 김병욱에 대해서는 강한 신뢰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면서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던 김병욱과 달리 여기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수영이 박인환에 대해서 가지는 거리와는 다르지만 김병욱에 대해서도 어떤 거리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해방 직후 김수영의 초기 시에서는 민족과 세계, 물질과 정신, 서양과 동양 등 대립하는 양극단을 모두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적 긴장이 주로 제시된다.


해방 이후 민족의 통일이 핵심적인 과제로 대두된 시대에 김수영은 민족의 분단을 강요하는 외세에 맞서기 위해 민족의 전통적 정신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적 생활난 해결을 위해 서양의 자본주의 물질문명도 수용해야 한다는 다원주의적 정치의식을 제시했다.


김수영은 민족정신만을 추구하는 극단적 민족주의나 서양의 물질문명만을 추종하는 극단적 세계주의에서 벗어나, 한편으로 민족의 통일을 위해 민족의 전통적 정신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 해결을 위해 서양의 자본주의 물질문명도 수용해야 한다는 다원주의 중도파의 길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김수영은 「반시론」(1968)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다원주의적 긴장의 시론을 집약적으로 제시한다. “귀납과 연역, 내포와 외연, 비호(庇護)와 무비호, 유심론과 유물론, 과거와 미래, 남과 북, 시와 반시의 대극의 긴장. 무한한 순환. 원주(圓周)의 확대, 곡예와 곡예의 혈투. 뮤리얼 스파크와 스푸트니크의 싸움. 릴케와 브레히트의 싸움. 앨비와 보즈네센스키의 싸움. 더 큰 싸움, 더 큰 싸움, 더, 더, 더, 큰 싸움…… 반시론의 반어.”(516)


그는‘유심론=과거=뮤리얼 스파크=릴케’로 연결되는 전통적인 정신과 ‘유물론=미래=스푸트니크=브레히트’ 등으로 연결되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모두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무한한 순환. 원주(圓周)의 확대”, “더 큰 싸움, 더 큰 싸움, 더, 더, 더, 큰 싸움……”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이 양극 사이의 종합과 통일이 아니라, 무한한 긴장과 순환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자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김수영은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는 전통과 문명,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 생활과 예술의 가치를 모두 긍정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무한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창작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다원주의자이다.


특히 김수영은 민족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긍정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긴장을 추구했던 다원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발전시켜야 하는 반면에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민족의 전통적인 정신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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