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다원주의(21)
이러한 풀과 바람, 그리고 여러 동사들의 반복과 대구와 점층은 이 작품으로 하여금 단순하지만 여러 겹을 두른 한 편의 음악으로 태어나게끔 해준다. 이때 풀이 바람보다 늦게 눕고 울어도 먼저 일어나고 웃는다는 표현은 움직임의 선후 관계일 수도 있고 속도와 관련된 비교 관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리듬을 육체화하면서 풀은 눕고 일어서고 울고 웃는다.
거대한 생명의 자율적 운동이 마지막에 이르러 “풀뿌리가 눕는” 것으로 표현된 것은, 천지인의 기운이 무수한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조화와 초월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지를 자유자재로 보여준 최종 형식일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되고[自由], 스스로가 스스로를 존재케 하는[自在], 말하자면 우주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혼란의 반복을 수습하면서 시인은 고도의 질서를 구축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