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의 다원주의(20)
“사랑은 상처와 결함의 인간이 지닌 무한의 에너지이자 능력이다. 사랑은 영역과 한계를 알지 못한다. 사랑을 배우는 동안 인간은 성장하고, 사회와 역사는 향상하며, 현재는 지금-여기에서 다른 시간과 공간을 관통한다.”
“소음은 한국의 후진적인 현실만이 아닌, 문학과 자연과 존재 등 삶의 모든 차원에 있다. 김수영은 갖가지 소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배운다. 그는 소음을 사랑으로 듣고, 자신이 직접 사랑의 소음을 발성한다. 사랑을 배우는 일이란 곧 새로운 시를 쓰는 일이며,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일이다.”
“라디오 소리에서 출발한 사랑의 변주곡은 침묵의 속삭임이 되어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퍼져나가고, 어느새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다시 밀려닥친다. 사랑의 주파수에 맞추어진 세상은 지금 같은 에너지의 흐름 속에 있다. 흐르는 사랑의 에너지는 강, 산, 기차, 숲, 방, 할머니, 심부름하는 놈, 봄베이, 뉴욕, 먼 날 등을 사랑의 장(場)으로 연결한다. 끊어짐을 뜻하는 ‘간단’(間斷)도 빠뜨리지 않는다. 다양한 존재와 공간, 시간을 차별 없이 연결하는 ‘사랑의 운동’의 현장이 여기에 있다.”
“시 ‘사랑의 변주곡’에서 사랑의 음악은 혼란의 소음과 흡사하며, 깊은 고요를 품고 있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시의 처음을 압도하는 것은 단호한 명령과 선언이다. 이 목소리는 욕망의 입에서 쏟아진 삶의 생음(生音)을 사랑의 음악으로 변주하려는 강렬한 결의를 전달한다. 인간의 본능인 ‘욕망’을, 타자를 향한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사랑’으로 고양하는 비법은 ‘발견’의 행위다. 그런데 발견은 무한히 갱신되는 것이기에, 욕망을 사랑으로 변주하는 작업은 끝없이 계속되어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다. 욕망의 어두운 현실에서 사랑의 빛나는 현재를 계속 발견하고 재창조하는 기술. “눈을 떴다 감는 기술”. 부패한 현실과 타락한 문명에 굴복했던 우리가 욕망에서 사랑으로 끊임없이 도약할 때, 그 사랑의 아슬아슬한 절도를 열렬히 유지할 때,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은 “소음과 광증(狂症)과 속도와 허위”(‘시골 선물’)의 도시에서 “사랑의 위대한 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다.
“‘나의 가족’에서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사랑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은 집안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 시에서 김수영이 가족들이 밖에서 묻혀온 사랑의 기운을 누리는 수혜자의 위치에 있는 반면, ‘사랑의 변주곡’에서 그는 자신이 만든 사랑의 에너지를 세상에 퍼뜨리는 적극적인 존재로 성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