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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Jan 16. 2023

자유주의자 김수영 : 공자의 생활난

김수영은 1945년에 탈고한 「공자의 생활난」에서 개인과 민족의 갈등을 제시한다. 화자는 해방 직후의 현실을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는 상황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꽃’은 공자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반면에, ‘열매’는 먹고사는 개인적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서양의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다는 말은 “최종 지점, 즉 한계를 돌파한 어떤 상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1947)에서의 “도립(倒立)”이라는 말처럼 꽃과 열매의 위치가 거꾸로 서 있는 “물구나무서기의 형상”이나 “정상적인 것이 거꾸로 된, 정상이 아닌 상태”, “전통적인 정신세계와 물질 중심의 서양의 물질문명 충돌로 인한 당대의 혼돈과 요동”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해방 직후 당면한 민중들의 생활난 해결을 위해서는 먹을 수 있는 ‘열매(사물=문명)’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과거의 아름다운 ‘꽃(공자=정신)’이 여전히 그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1945년 10월 5일 ‘미곡의 자유시장에 관한 일반고시’ 제1호를 발표해서 배급제를 폐지하고 미곡을 자유로이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쌀값이 폭등하여 일제 식민지 시대보다도 더 고통스럽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꽃이 열매의 상부 피어 있는 시대착오적인 상황에서 줄넘기 장난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무를 비판하면서, 자신은 “발산(發散)한 형상”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힌다. 여기서 “줄넘기 작란(作亂)”만 하고 있는 “동무”는 여전히 꽃처럼 아름다운 공자의 정신만을 강조하면서 서양의 자본주의 문명을 배척하고 있는 민족주의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있다.


그렇다면 그가 추구한다는 “발산한 형상”은 ‘발전된 형상’과 유사한 의미로서 개인적인 생활 향상과 발전을 위해 서양의 물질문명을 수용해야 한다는 시대적 발언으로 이해된다. 문제는 서양의 물질문명을 수용하는 ‘발산한 형상’의 추구가 공자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전통적 정신의 상실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군정과 함께 물밀듯이 밀려온 서양의 물질문명의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어려운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서양의 “마카로니”보다는 전통적인 “국수”가 먹기 쉽다고 느끼는 민족적인 “반란성”을 통해 이를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낯선 외래 문명을 거부하게 마련인 민족 내면의 반란성이 있기 때문에 서양의 물질문명을 수용해도 민족정신을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러한 민족적인 “반란성”은 당시 중국의 손문이 민족을 형성하는 다섯 가지 힘으로 제시했던 혈통, 생활, 언어, 종교, 풍속·습관 등과 관련이 있다. 손문은 민족을 형성하는 이런 힘들이 “자연히 진화되어 생긴 것”이라고 하면서 민족의 자연성을 강조한다.


김수영이 여기서 제시하는 ‘반란성’도 손문의 ‘생활’과 ‘풍속·습관’처럼 민족의 자연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있다. 이러한 해석은 이후 「아침의 유혹」에서 보다 분명하게 ‘습성’이라는 말로 변주되는 것으로 뒷받침된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마침내 그는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그는 “사물의 생리”, “사물과 수량의 한도”, “사물의 우매”, “사물의 명석성”, 즉 사물=물질에 대한 데카르트적인 명석판명한 이성에 기반을 둔 서양의 과학문명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김현은 “바로 본다는 것은 대상을 사람들이 그 대상에 부여한 의미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그 나름으로 본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도식적이고 관습적인 대상 인식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상식에 대한 반란을 뜻한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당시 사람들의 상식이 꽃(정신)을 열매(물질)의 위에 놓는 것이라면, 김수영은 당시의 이런 상식을 뒤집어 열매(물질)를 꽃(정신) 위에 놓아야 한다는 의식을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가 “사물의 명석성(明晰性)”과 함께 “사물의 우매(愚昧)”를 제시하는 것은 데카르트적인 명석판명한 과학문명을 수용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우매한 물질만능주의에 빠지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개인적인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문명을 수용하더라도 그 폐해를 함께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연에서 그가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비장하게 말하는 것은 죽음 이후에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생성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 것이다.(朝聞道夕死可矣,)”라는 말과 관련해서 생활난을 해결해 줌으로써 개인적 자유를 가져다 주는 서양의 과학문명이 당시에 요구되는 새로운 도(道)라는 강한 확신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있다.


김수영의 시작(詩作) 초기인 1945년의 시인 「묘정의 노래」와 「공자의 생활난 사이에 “레퍼토리의 분절”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민족의 분단에 맞서서 전통적인 관공의 얼을 추구하는 민족주의적인「묘정의 노래」와 달리 「공자의 생활난」은 개인적인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서양의 자본주의 문명을 수용하려는 자유주의적 의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극은 김수영이 시작 초기부터 물질과 정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다원주의적 긴장을 추구했다는 증거로 볼 수있다. 



「공자의 생활난」(1945)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과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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